2021년 봄, 서울에 올라온 지 약 8개월쯤 되었던가. 그때의 나는 엄청난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아무것도 할 힘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까지 누워만 있었다. 밥도 거의 먹지 않아서 살이 쭉쭉 빠졌다. 매우 심각했지만 그때는 살이 빠지는 게 좋아서 더 안 먹기도 했다. 공연 일을 하겠다며 원대한 꿈을 품고 서울에 올라왔던 나는 삶이 내 멋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굉장히 좌절했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됐고 공연계는 완전히 닫혀버렸다. 일하는 사람들도 줄줄이 퇴사하는 와중에 신입을 뽑을 리 만무했다. 열정이 가득했던 나는 시동만 걸면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동을 걸 수 있는 자동차가 없었다.
코로나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스펙이 모자란다거나, 체력이 약하다거나 하는 것쯤은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지만 이 거대한 질병은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의 취업을 준비하기엔 그때의 나는 공연을 너무나도 사랑했다.(지금은 아님) 이도저도 할 수가 없었던 내게 더욱 압박이 되었던 건 자기계발이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자기계발이 매우 유행하고 있을 때였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에는 미라클 모닝에 대한 후기들이 속속들이 올라왔고, 베스트셀러에는 자기계발서가 가득했다. ‘성장’, ‘성공’, ‘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단어들이 얼마나 숨통을 막던지.
당시 무기력했던 나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열심히 성장하는 남들과 비교하며 무기력한 나를 증오했다. 남들은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난 왜 이렇게 생겨 먹은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그러면 ‘너도 자기계발을 하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진짜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이런 상태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스스로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오랜 내 친구에게는 내 상태를 말하고 싶어졌다. 큰 계기는 없다. 그냥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전화해 딱 한 마디를 던졌다.
“야, 나 요새 아무것도 할 힘이 없어. 사실 그냥 맨날 누워있어.”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내게 물었다.
“너 밥은 먹었어?”
그 물음이 뭐라고, 양쪽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올랐다. “어, 밥은 잘 먹지. 이 와중에도 밥은 잘 들어간다.” 실없는 내 대답에 친구는 “야, 거짓말 하지마. 너 밥도 안 먹은 거 다 알아. 빨리 밥 먹어.”라고 나를 재촉했다. 역시 20년의 세월은 무시할 수가 없다. 한 번에 나를 파악하다니. 그리고 조곤조곤 친구가 내게 말했다. 자기도 그런 적이 있었으며,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 내 마음에 지금 휴식이 필요한 거고, 내가 내 상태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멋지다는 것. 그 말 몇 마디가 뭐라고. 그 날 나는 약 일주일만에 밖으로 나섰다. 나가서 동네를 산책하고 나를 위한 일기장을 구매했다. 그리고 내 상태를 온전히 일기장에 기록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작은 행동이 엄청난 힘이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살다보면 그런 일이 참 많다. 나의 노력 여부와는 관계없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그것은 사실 나의 잘못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본인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어쩌면 모두 자기계발로 중독된 사회가 만들어 낸 현상이지 않을까. 인스타그램만 눌러도 30대에 10억을 모은 사람과 20대에 포르쉐를 타는 사람들이 수없이 스쳐 지나간다. 이런 사회에서 나는 마음 편히 쉴 수도 없고, 단 하루라도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끊임없이 나도 잘해야 할 것 같고, 더 스스로를 채찍질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이 아득해 진다.
나는 선언하고 싶다. “나 이제 성장 그만할래, 나 좀 쉴래!” 좀 쉬는 게 뭐 대수인가? 앞으로 살 날이 80년이나 남았는데 그 중에 몇 달, 혹은 몇 년을 쉬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인의 목적만 분명하다면 말이다. 주변에 나같은 사람이 아마 많을 것 같다. 무기력하고 우울하지만 그런 자신이 한없이 증오스럽고 미운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밥은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