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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기도, 시작의 응답

by 홍주빛

그동안은 시의 언어로 기도의 흔적을 담아왔습니다.
오늘은 시보다 조금 긴 이야기로, 한 편의 삶 속 기도를 나누고자 합니다.
끝이라고 믿었던 자리에,
하나님은 시작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의 기도 끝에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그분의 손길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의 기도, 시작의 응답

글/홍주빛


정년이라는 끝자락에서,
저는 다시 기도했고, 다시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기도의 끝에서 마주한 하나님의 시간—
그 신비롭고 따뜻한 여정을 조심스레 꺼내봅니다.


끝은 언제나 아쉬움과 쓸쓸함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끝은 동시에 완성이며, 전환이고, 변화이며,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며 살아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올해는 내게 특별한 해였다.
정년인 만 60세가 되는 해였기에, 8월 말일자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하나님께 기도드려 왔다.
“하나님, 정년이 연장되게 해 주세요.
그것이 안된다면, 62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영양교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그 기도는 수년간 이어졌고, 간절함과 함께 깊어져 갔다.


그러던 중,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드디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근로 인구의 감소가 현실로 다가왔다.


출산율은 0.75명—
믿기 어려울 만큼 낮은 수치다.


한때 시끌벅적하던 시골 학교는
이제 전교생이 한 반 인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웃 학교는 통폐합을 걱정하고 있고,

한 아기의 탄생은 온 마을이 현수막을 걸며 축하할 만큼 드문 일이 되었다.


예전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주일 교회마당에 모인 아이 여섯이 전부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허리가 굽어 고개를 숙이고,
구순을 넘긴 아버지는 깡마른 몸으로 비틀비틀 걸으신다.
그 분주했던 손길들이, 이제는 햇빛 아래서 천천히 움직인다.


그 곁에 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나는 날마다 감사한다.


요즘 어머니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고 잊어버리는 일도 잦다.
다행히 아버지의 인지능력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시작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끝에서 무엇을 남기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정년퇴직이라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뜻밖의 기회를 얻었다.
같은 학교에서 영양교사로 다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작은 변화일지 몰라도,
나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끝은 정말로,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
그 믿음을, 나는 내 삶으로 경험했다.


중학교 시절, 교회 부흥회에서
"말세가 다가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말세는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대학, 직장—
삶은 계속 이어졌고,
나는 영양사라는 직업의 끝자락에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끝이라는 건 때때로 새로운 이정표다.

진짜 끝은 어쩌면 부모님과의 작별,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끝에는, 영혼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이 짧은 생을 마치고도
영원히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마침내 영양교사 자격을 얻었다.
그 준비의 시간이 있었기에
끝처럼 느껴졌던 시점에서 새로운 문을 열 수 있었다.


삶은 짧다.
생각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영원한 세계가 있기에,
이 짧은 생도 빛날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

헛되이 흘러가는 날 없이,
의롭게, 아름답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겠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감사와 사랑하는 삶이 될 것이다.

기도는 평생의 언어입니다.JPG 삶이 기도가 되는 순간을 기억하며-홍주빛의 묵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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