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번호 하나에 막혀버린 나의 일상
휴대전화 하나 잠긴 일로, 나는 그날 완전히 고립되었다.
모든 연결이 끊긴 어느 토요일, 나는 ‘디지털 미아’가 되었다.
글/홍주빛
새로 산 휴대전화는 생각보다 예민했다.
터치감도 좋고, 속도도 빠르고, 심지어 새벽하늘의 별빛까지도 선명하게 담아내는 카메라를 보며 감탄했던 며칠.
그런데, 그 반짝이는 감동은 너무도 쉽게 굳어졌다.
4일쯤 지난 저녁, 갑작스럽게 뜬 알림 창 하나.
'72시간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합니다.'
별일 아니겠거니, 무심코 눌렀던 손가락이 작은 실수를 불렀다.
분명히 알고 있던 비밀번호인데…
한두 번 틀리다 보니, 어느새 기기는 완전히 잠겨버렸다.
기억해 보면, 그날부터 모든 일이 엉키기 시작했다.
모닝콜부터 막혔고,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카카오톡이 잠긴 것도 모자라,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일조차 번거롭고 낯설었다.
서비스센터로 달려갔다.
토요일 오전 근무 시간이 끝나기 전, 부랴부랴.
하지만, 신분증 하나로는 부족했다.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어, 해당 통신사 대리점에서 '내가 이 전화기의 주인이라는 증명서'를 받아와야 한다는 말.
평소 자주 보던 대리점은 눈에 익었지만,
통신사를 바꾼 후라 어느 매장을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긴장된 마음에,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갔다.
어렵사리 전화기를 산 사장님을 찾아 연락했고,
그를 기다리던 대리점 문 앞에서
나는 휴대폰 두 대를 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카카오톡 알림음만 듣고 있었다.
그때 옆 미용실에서 전화를 빌려준 사장님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르는 사람의 작은 호의에 마음이 풀렸다.
그날 이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아직 따뜻함이 남아 있다는 걸 기억하게 되었다.
증명서를 받고, 겨우 서비스센터에 도착했을 땐
점심시간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그래도 토요일이라 업무가 계속 진행 중이라는 말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예전 폰 메모장에 시 한 편을 적었다.
먹지 못한 점심도, 멈춰버린 대화들도,
그 시간에선 모두 글감이 되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휴대전화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해 주는 '열쇠'가 되어버렸다.
은행 업무도, 친구와의 연락도, 각종 인증도,
손 안의 기기 하나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었다.
비밀번호 문제를 간신히 해결했을 즈음,
또 다른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카오톡 계정이 꼬여버린 것.
대화를 복원하려 애써봤지만,
결국 새로 설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모든 기록이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인터넷 미아’가 되었다.
어떤 대화방에도 소속되지 않고,
사람들이 내가 여전히 그 방에 있는 줄로만 아는
이상한 투명 상태.
어쩐지 외로웠다.
기계가 사람을 연결해 주던 시대에,
그 기계 하나로부터 밀려났을 때의 그 고립감.
게다가 업데이트된 앱은
개인 정보를 너무 쉽게 노출시키고 있었다.
타지에 사는 조카의 연인과 찍은 프로필 사진이
불쑥 내 눈앞에 뜨는 그 순간,
사생활의 경계는 너무도 얇아졌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브런치스토리에 들어가려다 보니,
카카오 계정 로그인 문제로 접속 자체가 막혔다.
그간 연재해 온 글, 기다려주던 독자들,
그 모든 정성이 끊긴 듯한 마음에 속이 답답했다.
새 계정으로 다시 작가 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
문의 글을 남겼지만 답은 오지 않았고,
나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불편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탓일지도 모른다.
비밀번호를 잊고,
다시 설정하고,
또 잊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나는 문득,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남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기술은 매일 쏟아지고,
그 기술은 인간의 속도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나는 기도한다.
이 어지러운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잊지 않게 되기를.
고립되지 않게 되기를.
나 자신으로 증명될 수 있기를.
모래사막을 헤매던 며칠,
그 메마른 시간 위에 이렇게 글을 남긴다.
삶은 그렇게, 때로 불편함을 지나 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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