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

by 홍주빛

성탄절에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

홍주빛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나님, 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위협 속에 시작된 구원자의 길(이미지:쳇 gpt)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위협 속에 계셨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종교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를 이해하지 못한 헤롯 왕은 불안해했고, 결국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피할 길을 예비해 주셨고,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려온 하나님의 강림은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도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말구유 한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반전인지요.


사실, 개미가 되지 않고서는 개미와 대화를 나눌 수 없듯,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사람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을까요. 창조주께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 앞에, 인간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을 반대해 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공격했고, 무지한 사람들을 이용해 예수님께 고통을 안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견디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 땅에 생명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겸손의 왕, 예수님(이미지:쳇 gpt)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성전세를 요구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왕이 세금을 자기 아들에게서 받느냐, 타인에게서 받느냐?" 하시며, 그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물고기 입 속의 한 세겔로 성전세를 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참 주인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받고 무지한 이들의 질문을 받으셨으며,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겸손히 대하셨습니다. 그 인격과 겸손 앞에 제 마음도 자연스레 낮아집니다.

겟세마네 동산(이미지:쳇 gpt)

최후의 만찬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는 나약함이 아닌, 더 나은 길을 인류에게 주고자 하신 사랑의 표현이라 믿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저들을 용서해 달라"라고 기도하시며,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죄인이 마땅한 심판을 받은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이가 죄인을 대신해 죗값을 치른 일로 보셨습니다. 그 은혜로 인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는 수치가 아닌, 구원의 문이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성경의 예언은 그렇게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닮고 싶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미워하거나 지적하는 사람까지 품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이들이 "예수는 나의 왕"이라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예수님을 믿은 지 4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일상 속에서 온전하지 못한 제 모습을 발견하며 자주 속상해집니다. 그러나 성탄절을 맞아 제 삶을 돌아보며, 예수님의 삶을 거울 삼아 그 가르침을 따라 살고자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기를, 그 사랑의 온기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 지금까지 함께해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동행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가 아닌,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시는 지금 이때, 모든 인류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홍주빛 드림

마음 성전에 켜지는 등불(이미지:쳇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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