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 따뜻한 여정
여러분은 언제 가장 행복을 느끼시나요?
서울대학교의 한 심리학 교수는, “사람들은 여행을 할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사실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질 수 있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할 때,
그 시간 속에야말로 진짜 행복이 자란다고 믿습니다.
대단한 걸 보고, 놀라운 걸 경험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을 함께 나누는 마음 때문에요.
오늘 저는 아주 짧은 여정 속에서
엄마와 나눈 작고 따뜻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이 여정에,
잠시 마음을 얹어 보시겠어요?
하지가 지나고,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기면서 대지는 뜨겁게 달궈졌다.
주일 오후, 조카가 살고 있는 청주로 가게 되었다. 전혀 예정에 없던 나들이다. 조카 녀석이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토요일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 추돌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아침부터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카가 입원 치료를 원하지만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은 어젯밤도 나이트 근무였고 내일도 출근이라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없으니, 대신 좀 다녀와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이었다.
오전엔 예배가 있어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막했다.
청주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의료인도 아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럴 때 나는 습관처럼 하늘 앞에 기도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조카가 한방병원에 입원해야 할 텐데요…’
기도하며 네이버에 ‘청주 한방병원’을 검색하니 대여섯 개 병원이 떴다.
이때가 중요한 순간이다.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하나?
다시 마음속으로 물었다.
‘성령님, 어디에 전화할까요? 조카가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쾌적하며 치료도 잘해주는 곳이면 좋겠어요. 조카 집에서도 멀지 않으면 더 좋고요.’
그 순간, ‘차차한방병원’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으니, ‘차차한방병원’이라면 교통사고 환자를 잘 봐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가 가고, 다행히 통화도 연결되었다. 입원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일요일이라 원장님께 먼저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래도 일단 길이 열렸다. 조카에게 전화해 입원 준비를 하라고 전했더니, “뭘 준비해요?” 하고 되묻는다.
그렇다. 나는 부모님을 수없이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 또한 자주 병원을 드나들었기에 익숙하지만, 조카에겐 아마 난생처음 해보는 입원일지도 모른다. 낯설고 당황스러울 테다.
칫솔부터 수건까지, 필요한 목록을 조심스럽게, 상처받지 않게 설명해 주었다.
이제 청주로 출발할 시간. 왕복 4시간 거리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으신 엄마가 함께 가시겠다고 하신다.
체력적으로 분명 무리가 될 텐데, 집에 남아 계시라 하면 노여워하실 게 뻔하다. 결국 함께 가기로 했다.
엄마는 여행 가는 소녀처럼 말씀하신다.
“할미가 외손자 다쳤다는데 가봐야지. 뭐라도 사 먹여야지.”
졸음운전을 피하려고 얼음과자 두 개, 쫀득이 하나, 허팽이 한 봉지를 샀다. 뭔가 씹으면 졸음이 덜 올 것 같아서다. 엄마는 조수석에서 얼음과자 포장을 뜯어 손에 쥐어주고, 과자 봉지도 먹기 편하게 펼쳐놓는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엄마와의 짧은 여행. 낯설기에 더 여행 같았다.
차 안에서 엄마는 또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신다.
“고모네 집은 창신동이었어. 정배란 애가 내 또래였지… 한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나서, 둘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지 뭐니…”
말꼬리가 흐려진다. 많이 보고 싶은 거다. 연락이 끊겨, 이제는 생각만 나는 이름이다.
“장거리 여행 괜찮겠어요?” 걱정스레 물었더니,
“내가 움직이고 싶어서 매일 산책 다니잖아. 괜찮아.” 하신다.
엄마의 정신력이 몸을 이긴다.
청주행 고속도로를 달려 세종 IC를 빠져 조카 집에 도착했다.
사고 차량은 겉보기엔 심하게 망가지지 않았지만, 조카는 많이 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약해 둔 차차한방병원까지는 10분 거리. 4층 입원실 간호사 데스크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조카는 도덕적인 성격이라, 3층 접수처에 들르지 않고 바로 올라오라는 지시에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 듯했다. 교과서 같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병원은 깨끗했고, 의료진도 친절했다. 안심할 수 있었다.
병원을 나오는 길, 엄마는 “청주까지 왔는데 뭐라도 좀 보고 가자”며 마트에 들렀다.
과자는 원하는 종류가 없어서, 결국 계란 한 판, 간장 한 병, 라면 한 묶음만 사서 나왔다.
날씨는 여전히 뜨겁다. 해가 지기 전,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엄마, 저녁은 먹고 가야죠.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국에 밥이면 되지.”
가는 길에 식당을 찾다 세종시 초입에서 ‘노송 추어탕’이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엄마, 추어탕 먹고 갈래요?”
“그러자.”
며칠 전 미꾸라지를 사 와 튀김 대신 추어탕을 끓여드렸더니 맛있게 드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맛있으면 한 그릇 포장도 해가신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곳은 도로 한복판. 세종의 아파트 숲 사이를 두 번이나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근처 전주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갔다. 북어콩나물국밥과 김치오징어콩나물국밥을 시켜 허기를 달랬다.
식사 후 고속도로를 타려는데,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시골 농로길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느낌이 이상해 후진하고 스마트폰으로 다시 검색해 겨우 고속도로 IC를 찾아 진입했다.
이제야 안심이다. 익숙한 길이다.
문득, 옆자리에 앉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엄마가 따라가겠다고 하셨을 때는, 괜히 힘드실 텐데 집에서 쉬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방금 같은 상황에서 나 혼자였으면 얼마나 무섭고 당황했을까?
엄마가 옆에 계셔서 무서움을 덜 수 있었다.
“엄마, 고마워요. 같이 있어서 안 무서웠어요.”
“아이고, 고생했어. 나도 네가 혼자 다니는 것보다 내가 옆에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아서 따라나선 거야.”
역시, 엄마의 사랑은 깊고 깊다. 그 사랑으로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다.
어느덧 창밖으로 우리 집 불빛이 보인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신다.
오랜만의 6시간 여행.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 따뜻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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