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예초기를 짊어진 채 진흙 속에 박혀 있던 아버지를
어느 주일, 교회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목격했습니다.
일어나려 애쓰던 그 손,
다시 나뭇지게를 추스르듯 힘을 모으던 그 뒷모습이
문득, 아버지의 청춘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한 편의 시가 남았습니다.
홍주빛
일이 평생 낙이라며,
체중으로 못 견디는
예초기를 짊어지고,
오전 내내 논두렁을 누비다가―
쭈르르 미끄러져
벼 심어 놓은 논으로
쑤셔 박히고,
발을 옮겨 나오려 하나
자꾸만 빠져드네.
황우 같던 그 청년은 어디 가고,
수렁에 빠진 발조차도
옮길 힘도 없다 더냐.
멀리서 보이는 아버지는,
한나절이 지났는데
왜 그 자리일까?
차를 세우고 달려가니,
사람인가, 진흙 작품인가.
애처로워 손을 뻗어 잡으려니,
괜찮다 마다하며
나뭇지게 짐을 몇 번이나 추스르듯
겨우 힘을 내어
자리에서 일어서네.
지나가는 나그네는
그저, 멀뚱히 서 있을 뿐.
나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고,
아버지는 비척비척 길을 찾는다.
내 눈엔,
말 대신, 눈물만.
예초기도, 경운기도
다 내다 버리고 싶구나.
세월이 가져간
진흙 속에 박힌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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