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 번밖에 만나지 않은 남자에게 이별을 고했더니, 폭언을 쏟아냈단다. 평생 노처녀로 늙어 죽을 팔자랬다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며 친구는 피를 토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이상한 인간들이 많아. 아직 네가 제대로 세상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그래"라고, 내뱉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사는 세계는 내 것보다 한없이 좁았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초등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딱 그만큼만 느끼는 환경에 몸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좀 더 솜털같이 약할 것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가 이렇게 답했다.
"나 너랑 동갑이야. 직장생활은 8년 차고. 너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만났어. 니가 다양한 세계의 사람을 만난다고 착각하나 본데, 난 그런 사람들을 학부모로 매 학기 서른 명은 만나. 직군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양한 사람들 수백 명은 만났을 거야. 만나보지 못한 형편없이 환경이 어려운 사람도 만났어. 그러니 알은체 하지 마."
날카로운 돌멩이가 가슴에 박혔다. 내 속의 꼰대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오판이었다. 얄팍한 '선민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소(小) 꼰대였다. 새삼스럽게 인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맞았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의 어깨 자랑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라고 착각했을까. 기자들은 대개 책임질 게 많은 위치의 사람들을 만난다. 주로 차장, 부장, 대표 직함을 단 이들이다. 특이한 직업인 것은 맞다.
나는 아마도 은연중에 특이한 직업이 아니라 특별한 직업을 가졌다고 여겼을 거다. 그래서 친구를 무시했을 거다. 사회생활은 먼저 시작했지만, 나보다 협소하다고 생각했을 터다.
그건 다 틀렸다.
주변인들이 바라보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듯, 내가 보는 현실의 단면이 현실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지극히 내 시선에서만 만들어진다. 그 시선 너머에서 얼마나 복작거리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루를 얼마나 치열하게 밀어 올리는지 가늠할 수도 없다. 그러니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늘 신중해야 한다. 강물 위에 퐁당거리면서 바다에서 첨벙거리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