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니겠지'의 함정이 있다.
딱 멘트 그대로다.
"나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내가 그 사람이 되겠어?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바로 그 사람이겠어?"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 걸려들기 직전에 하는 말들이다.
술을 거나하게 마셨는데, 꽤나 멀쩡하다고 느껴지는 경우 종종 쓰였다. "집이 코앞인데, 설마 음주 운전에 내가 걸리겠어? 나는 아니겠지"
담배를 맛깔나게 한모금하고, 꽁초를 툭 버릴 때도 쓰였다. "저 잔불이 뭐 일어나겠어?"
신호 위반같은 사소해보이는 불법을 저지를 때도 그렇다. "에이 사람도 없는데 괜찮겠지?"
설마 걸리겠어? 나는 괜찮겠지. 나는 아니겠지.
무심결에 하는 행동들 중에 좀 거리낌이 있는 일들을 할 때 쓰인다.
그런데 늘 내가 맞다. 내가 걸린다. 내가 아닐 것 같은 상황에 꼭 나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나는 꼭 그렇겠지'
로또를 샀을 때 늘 그런 마음이 든다. "나는 이번에 꼭 되겠지."
입사지원서를 썼을 때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는 꼭 이번에 되겠지. 꼭 그렇겠지"
저 썸녀의 마음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을거다. "우린 꼭 이뤄지겠지"
그런데 늘 되지 않는다. 나의 바람대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잘 안 된다.
삼십년 넘게 살다보니 세상은 내가 바라지 않는대로, 바라는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인생의 팔할은 운이고, 기회는 우연히 다가오고, 나의 노력이 쌓여서 터지기도, 나의 노력이 쌓여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참 세상살기가 팍팍하다. 녹록치 않다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 일이다. 충실하게 살고 결과는 깨끗하게 승복한다. 오히려 그짝이 낫다.
마음내키는 대로 살아도 내 삶이고, 마음내키지 않게 살아도 내 삶이다.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것.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