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부를 열고 화들짝 놀랐다.
누적 저장된 번호만 3000개가 넘었다.
2000장 정도의 명함은 별도로 관리 중이니, 5000개 가까운 번호를 갖고 있다.
주로 연락하는 사람과 그룹은 다 합쳐도 500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인데,
스쳐간 인연들이 모두 고스란히 번호로 남았다.
전화번호부 다이어트, 전화번호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순간이다.
바지런히 정리를 시작했다. 꽉꽉 눌러담았더니 900명 정도가 남았다.
절반은 고스란히 지웠다. 명함도 정리했더니 1000개 가량 남았다. 이것도 많다는 것을 안다.
더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미니멀리즘이 화두다. 다들 비우라고 한다. 무엇을 비울 것인가.
너무 많이 가져서, 무엇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닐까.
"혹시 나중에 쓸 지 모르잖아" 하고 남겨둔 잡동사니가 얼마나 많은가.
"혹시 나중에 도움이 될 지 모르잖아" 하고 남겨둔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은가.
정리하고 나면 비로소 보인다. 내가 어떤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지, 어떤 사람과 깊어지고 싶은지,
아니면 어떤 물건과 시간을 오래 보냈는지, 어떤 사람과 애정을 나눠왔는지.
그러고 보니
미니멀리즘은 '러브풀니즘' 반대말이다. 버리고 나면 비로소 사랑하는 것만이 남는다.
비우고 나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보인다.
그 비운 공간에 비로소 내 몸이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내 생각이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나는 누구인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