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30시간인 이곳 하늘에서 태양이 대지를 맹렬히 내리쬐고 있다. 마치 아직도 자기 안에 영원한 에너지가 담겨있다는 듯이, 늙은 태양은 맹렬히 자신을 불태운다. 행성 위에 사는 사람들은 대지의 오래된 기억을 알지 못한다. 생명체의 시간으로 별의 시간을 알 수는 없다. 단지 엿보고 짐작할 수 있을 뿐, 행성의 오래된 기억들은 긴 시간 속에 잠겨있다. 수 천 만년 동안 행성을 얼음으로 뒤덮는 빙하기의 시간은 인간의 기억에 담길 수 없다. 대지가 끓어올라 바다와 대륙이 뒤바뀌는 긴 역동의 시간은 오직 ‘신’만이 관상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광대한 세월 속에서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DNA에 생존의 흔적이 담겨있을 뿐이다.
새로울 것도 없이, 작은 마을 한 귀퉁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했다. 그는 보는 사람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사나이가 만난 눈들은 서로 제각각 달랐다. 초점이 맞지 않고 흔들리는 눈, 힘이 느껴지는 강렬한 눈빛, 의혹이 가득한 눈초리,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눈망울, 그를 사랑하는 눈과 경멸하는 눈이 있다. 흔적 하나 없는 깨끗한 아이의 눈, 노인의 충혈되고 눈곱 끼인 눈, 간장이 나쁜 사람의 노란 공막과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의 탁한 회색빛 수정체도 있다. 그중에서도 돌보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버려진 자의 공허한 눈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힘들다. 그 눈에 담긴 것은 말라비틀어진 사막 같은 건조함이다. 그것은 살면서 포기하고 도망친 시간을 뒤로 남긴 버려진 자의 눈이었으며 지키지 못한 자의 후회가 말라버린 눈이었다. 그 건조한 외로움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사나이는 보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고 만지고 느껴야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발적 반응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명이다.
아침에 눈을 떠 밤새 휴식을 취한 등 근육을 좌우로 돌려가며 풀어준다. 침상에 앉아서 아침 햇살에 비친 힘줄이 불거진 발등을 바라본다. 오늘 하루도 만 보 이상 걸으며 자신의 몸을 이동시켜 줄 고마운 발이다. 사나이는 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묵은내가 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전체를 지탱해 주는 것이 발이다. 나무의 뿌리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발의 뿌리는 생명의 물을 머리 꼭대기로 밀어 올린다.
침상에는 사나이의 여인이 잠들어 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주고 일어나 아침을 맞이한다. 날이 갈수록 돈벌이가 어려워져 식사량이 많이 줄었다. 부쩍 마른 몸을 꼿꼿이 세워 자신만의 방식으로 몸을 늘이고 조인 후에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다. 이것이 명상인지 요가인지 아니면 기도인지 명확하게 구별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수면과 깨어있음, 휴식과 운동 사이의 율동이며 파동인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매일 자신과 세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상태에 잠시 머문다.
사나이는 매일 사람의 물결 속으로 들어간다. 낯익은 얼굴들, 그보다 더 많은 낯선 얼굴들 사이에 그가 서 있다. 그는 그들 가운데 둘러싸여 그들의 눈을 하나씩 바라보며 대화를 한다.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에 관하여, 인간의 유한성과 신과 우주의 무한함에 관하여, 고통받는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 얘기한다. 그가 과거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한 적은 많지 않다. 마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고 지난 과거와 화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거참, 겉은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되도 않는 소릴 하네. 사랑 같은 소리 말고 배운 양반이면 돈 버는 법이나 좀 알려 주시오.” 누군가 말하자 사람들이 맞는 말이라고 동의하며 깔깔 웃는다. 어린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사나이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당황할 법도 한데 사나이도 같이 웃는다. 사람들과 가축들의 소리와 냄새가 어우러진 장날 시장에 그가 사람들 곁에 서있다.
군중들 사이에 한눈에 보기에도 좋은 옷을 입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사나이의 발 앞으로 바나나 껍질을 던지고 킥킥대고 웃었다. 사나이는 발바닥 앞에 떨어진 바나나 껍질을 보고 그것을 던진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본능적으로 약한 짐승을 알아보고 여럿이 달려들어 발톱을 박아 뜯어먹으려는 하이에나의 그것과도 같다.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부자들의 왜곡된 삶이 만들어낸 괴물, 바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부재와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한 경멸이다. 사나이는 웃지도, 화내지도 않고 잠시 그들을 마주 보았다. 본다는 것은 공감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나의 자리를 지켜낸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능동적 행위이다. 그리고 그는 군중들에게 자비심과 용서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