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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성의 고리 - 두 번째 이야기 (3)

03. 계속 실패하다

by 청랑

03. 계속 실패하다


당시에 나는 깊은 열등감에 빠져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회색 구름으로 덮인 비 내리는 풍경 같은 나날들 같았다. 한번 닫힌 의사면허 실기시험의 문은 1년 뒤에 다시 열린다. 이 문 앞에 도달하기까지 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인간에게 십 년이란 시간은 책의 한 챕터와 같은 것이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무리까지 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보다 어렸을 때 과학의 경이로움에 빠진 나는 이학박사과정을 밟았고, 또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으로 의대를 졸업했다.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나에게 십 년이 넘는 학위과정을 견딜 사명감이나 각오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마치 대항해 시대에 항구에 정박해 있는 거대하고 멋진 선박들을 보며 나도 언젠간 저 배를 타고 먼바다 너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거라고 외치는 애송이의 단순한 열정과도 같았다.


1 : 29: 300 법칙으로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하인리히 (1886~1962)는 미국 트래블러스 보험회사의 직원이었는데,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통계적으로 분석했고 큰 재해가 발생하기 이전에 작은 재해가 평균 29번 발생하고 그보다 사소한 사고가 평균 300회 발생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내가 넓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운이 없었다거나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큰 실패가 발생하기까지 내 인생에서 수많은 사소한 잘못들이 쌓였던 것이다. 그것은 성실한 습관의 결여 라든가 매끄럽지 못한 대인관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큰 실패에는 이유가 있고 또한 배움이 있다.


이후에 나의 인생에 변화가 생겼다. 나는 가족들과의 불화를 겪었고 거기엔 선명하고 날카로운 금이 생겼다. 나는 몸이 아팠고 점막에 다발성 염증이 빈발하고 관절에도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자기 색을 벗어가며 희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34세, 60세, 그리고 78세에 걸쳐서 노화의 버튼이 눌러진다는 연구 결과(Nature medicine 25.12 (2019): 1843-1850.)가 있는데 나 역시 이때 첫 번째 노화 버튼이 눌러진 것 같다. 몸의 노화는 자연의 섭리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의 영혼이 아직 내 몸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신념에는 변화가 없었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어딘가로 떠나기도 했으나 그곳이 눈앞이 탁 트인 바다이건, 산 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 중의 절이건 상관없이,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에 묘사된 것처럼, 나는 내 영혼의 깊은 우울감과 병들고 침잠하는 무심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힐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명상을 어설프게 흉내 내어도, 요가를 열심히 따라 해도, 자기 계발 서적을 읽어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어도 나는 치유받지 못하였다. 오히려 자꾸 가까운 가족에게 가시 돋친 말을 뱉어내고 불화를 만들 뿐이었다. 다만, 고전과 시를 읽을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자각이 서서히 나의 영혼을 덮어주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인들은 상처 입은 치료사 (Wounded Healer)였고,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나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살아있거나 혹은 이미 죽어서 세상에 없는 시인 같은 작가의 언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계절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자기의 시간을 나타내 주었다. 어느새 한번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으나 나는 여전히 미숙한 감정에 휘둘려 경솔하게 감정을 낭비하였고 결국 또다시 시험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였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힘들거나 어렵거나 무서운 일 앞에서 누군가 나 대신 해결해 주겠지 라는 의존적 성향이 나타났고 나는 두 눈 부릅뜨고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였다.


<OOO님은 제 OO회 의사실기시험에 불합격하셨습니다>

문자를 받은 것은 점심을 먹고 광주 문화예술의 전당 근처를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날이 합격자 발표일임을 알고 있었고, 그날은 공교롭게 하늘도 흐렸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공황에 빠진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감정이 정상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십 년 넘게 쌓인 학자금 빚더미를 안고서, 시간을 계속 잃어버린 나는 더 이상 실패를 극복할 힘이 없었다. 이제는 그냥 어디든 취직해서 먹고살아야겠다. 그런데 내가 어디에 취직할 수 있을까? 아내에게는 뭐라고 말하지? 이대로 멀리 떠나버릴까? 그럼 내 아이들은 누가 지켜주지? 나는 피곤했고, 그냥 어두운 내 방에 웅크리고 잠들고 싶었다.


또다시 음울한 나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내게 학위를 주신 은사님을 만났고 그는 내 앞에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버지의 눈을 닮아있었고 어쩌면 어떤 사나이의 눈을 닮아있기도 했다. 그 눈에 들어있던 것은 따뜻한 위로도 아니었고 거듭된 실패에 대한 실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아직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의가 담긴 눈이었다.


생의 어느 순간에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작은 기적의 순간들은 동시성의 형태로 드러난다. 링 위에서 이미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두 팔은 납덩어리처럼 무거워 아래로 쳐질 때 누군가 나의 등을 강하게 떠받혀 다시 나를 링 위로 밀어 올렸다. 손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어난다. 언젠간 그들의 손이 나의 손이 되어 나 또한 무너지는 누군가를 떠받칠 것이라고, 내 안의 이타성의 밭에 다시 단비가 내렸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며 연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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