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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Sep 23. 2020

'싹쓰리' 이효리와 '육아의 미래'

'임신 계획' 이효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 

<베이비뉴스>에 다니고 있는 규화씨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규화씨와는 <오마이뉴스> 시절 편집부 동료로 만난 사이다. 규화씨는 베이비뉴스가 올해 창간 10주년을 맞았는데 내게 마더티브 편집장으로서 '육아의 미래'에 대한 특별 기고를 해달라고 했다. 


네? 육아의 미래요? 잠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내 미래도 모르겠...). 그러다 '양육자의 미래'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육자의 미래가 있어야 육아의 미래도 있는 거니까. 참.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매체라고 한다. 이 글이, 마더티브의 활동이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아래는 베이비뉴스에 실린 글. 


 


MBC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 임신 계획을 밝힌 린다G(이효리)에게 비룡(비)은 몸보신하라며 전복 요리를 해준다. 린다G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예뻐 보인다며 아이가 있는 비룡과 유두래곤(유재석)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할 수 있을까."


그러자 옆에 있던 비룡이 말한다.


“누나. 막상 해보면 달라. 다 해.”


TV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저게 아닌데’ 소리가 나왔다. 물론 비는 이효리에게 용기를 주려는 의도였을 거다. 그래도 지금 이효리에게 필요한 건 저런 말이 아닌데.

 



'역대 연봉 워킹맘'보다, 

딱 '반 발짝' 앞선 엄마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엄마가 된 후 모든 게 멘붕이었다. 대한민국 여성 평균 초산 연령은 31세. 아이가 양육자의 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육아집중기와 한창 커리어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노동집중기는 얄궂게도 겹친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건 매일이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돌봄의 책임은 엄마에게만 쏠려 있었고, 회사에서는 100% 역량을 낼 수 있는 일꾼을 원했다. 일-육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 해내는 날이 늘어날수록 자괴감도 커졌다. “다들 그러고 살아. 그럼 엄마 되는 게 쉬운 줄 알았어?”, “애 금방 커. 좀만 버텨” 무신경한 말은 비수가 됐다. 


가장 답답한 건 참고할 만한 롤모델이 없다는 거였다. 직장에 다니는 주변 선배 엄마들은 자주 아프거나 쓰러졌다. 한번 직장 밖으로 나간 엄마들은 ‘경단녀'가 되어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슈퍼맘이 되어 죽도록 버티거나 아예 일을 포기하고 애만 보거나. 세상에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아, 하나 더 있었다. 애가 없는 것처럼 ‘90년대 아빠'처럼 일하거나. 나는 일만 하고 싶지도, 애만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힘이 된 건 나보다 반 발짝 앞서간 엄마들이었다. 네가 예민하고 나약해서 힘든 게 아니라, 그 시기에 힘든 건 당연하다고. 너무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해보는 게 도움 될 수 있다고. 일도 육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엄마인 네 몸과 마음을 잘 챙기라고. 나의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노하우를 공유해줄 수 있는 동료 엄마들은 소중한 레퍼런스가 되어줬다. 


나의 경험 역시 ‘뒤에 올 여성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했다. ‘월 1000만 원 버는 육아맘’, ‘워킹맘 연봉 몇억 신화’ 이런 거 말고, 조금 먼저 앞서간 평범한 엄마들의 경험과 통찰이 뒤에 올 엄마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줬으면 했다. 마더티브가 포포포 매거진과 함께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기로 한 이유다. 


지난여름, SNS 채널을 통해 인터뷰이 신청을 받았고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커리어 고민을 공유하고 싶어했다. 직장인, 프리랜서, N잡러, 창업가, 프로 이직러, 리모트 워커 등 다양한 직군과 상황에 따라 10명의 인터뷰이를 최종 선정했다.

 



나의 삶이 당신의 레퍼런스가 되도록, 

엄마들은 그렇게 연대할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하면서 오프라인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결국 모든 인터뷰를 100%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밤 10시, 노트북 앞에 앉아 화상 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울컥하는 순간이 많다.


꿈에 그리던 다큐멘터리 작업에 스태프로 참여하게 됐지만 임신 소식을 알고 울면서 하차해야 했던 엄마, ‘회생회사(회사에 살고 회사에 죽는)’ 회사 인간으로 살아왔지만 두 아이 육아휴직으로 커리어가 단절되면서 승진에서 계속 밀려야 했던 엄마, 자신의 분야에서 10년 가까이 착실히 커리어를 다져왔지만 출산 후 채용 면접에서 “애는 어쩌고 일하냐"는 질문을 받고 좌절했던 엄마, 아이 둘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재택근무를 하고 새벽 3시에 다시 일어나 밀린 업무를 하지만 그래도 유연하게 재택근무할 수 있어 다행이라 말하는 엄마….


인터뷰에서 만난 30~40대 엄마들은 하나같이 ‘뭘 저렇게 열심히 살까’ 싶을 정도로 성실한 여성들이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뭐든 열심히 노력하면 될 거라 믿었던 여성들, 아이를 낳고 자신의 커리어가 송두리째 흔들릴 거라 상상조차 못 했던 여성들, 엄마가 자신의 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거나 어디서든 눈치 보는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여성들.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일-육아 저글링은 더욱 힘겨워지고 있었다. 아이는 몇 달째 돌봄 방치 상태에 놓여있는데 일터에서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상황. 여러 번의 이직을 거치며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분투했던 한 엄마는 자신이 사회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인터뷰에는 “나에게 일이란"이라는 공통 질문이 있었다. MBC '라디오스타' 마지막 질문을 따와서 장난스럽게 넣은 건데 이 질문을 할 때면 모두 숙연해지면서 진지한 답변을 내놓았다.


다수의 엄마들이 자신에게 ‘일’이란, '내 이름 석자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엄마들이 바라는 건 엄청나고 대단한 커리어가 아니었다. 지속가능하게 일하면서 사랑하는 가족도, 나 자신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삶. 이게 정말 그렇게 큰 욕심일까.


마더티브는 가이드북 작업과 함께 지속가능하게 일하고 싶은 엄마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창고살롱'도 준비 중이다. “애 낳고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이렇게 힘든데…. 나만 포기하면 되는 거 아닐까”, “다시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일이냐 육아냐 양자택일이 아닌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새로운 시대의 엄마들은 엄마들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연대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전히 나를 갈아 넣는 장시간 노동을 당연히 하는 조직문화, 돌봄의 책임을 엄마에게만 떠넘기는 보육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엄마의 ‘워라블(work&life blending)’은 영영 불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역병이 길어진다면 더욱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이효리의 질문에 비처럼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참고로, 비의 아내이자 두 아이 엄마인 김태희는 결혼과 출산 후 드라마에 복귀하는 데 5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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