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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Oct 06. 2020

퇴사까지 했는데 이렇게 힘들 일이야?

어느 완벽주의자의 퇴사 후 한 달

‘이 상태로 텐트에서 자면 바로 담 올 것 같은데?’

불길한 예감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 진통제나 파스를 챙겨야 하는 거 아닐까.

하루 전날,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오른쪽 어깨가 심상치 않았다. 익숙한 통증. 목어깨 결림이다. 완전히 안 돌아가는 정도는 아니고 이대로면 조만간 침대에서 못 일어날 것 같은 느낌, 또 한의원이나 통증의학과를 찾아야 주사나 침을 맞아야 할 것 같은 느낌. 간신히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뇌가 정지된 것처럼 삐걱댄다.

한 달. 퇴사 한 달 만이다. 지난 퇴사 때는 3개월 만에 목이 안 돌아갔는데. 그새 2살 더 먹은 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됐다. 퇴사하자마자 외주로 일을 맡았고, 마감해야 할 원고도 있어서 결국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고 잠들었다.  

“한 달만 쉬고 싶다. 딱 한 달만. 퇴사하고 이렇게 못 쉴 줄 몰랐어.”
“지난번 퇴사했을 때도 그랬잖아. 너는 못 쉬는 사람인 거야.”

남편과 차를 타고 캠핑장으로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뒷자리에서 잠들었다. 피로감이 온몸을 덮었다. 오른쪽 어깨부터 손목까지 저릿했다.

  


완벽주의자로 산다는 것



기자로, 편집자로, 기획자로. 콘텐츠 만드는 일만 10년 넘게 하다 보니 완벽주의는 천성이 되어버렸다. 문구 하나, 이미지 하나, 뉘앙스 하나에도 독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건 나지만, 그 콘텐츠가 어디서 어떻게 소비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적어도 내 손을 거쳐간 콘텐츠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퀄리티가 나오길 바랐다. 나는 더욱 완벽해져야 했다.

완벽주의는 종종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일단 내가 힘들다. 내가 만든 콘텐츠는 내 분신 같았다. 콘텐츠에 돌아오는 반응 하나하나(를 예상하며)에 예민해졌다. 내 자식이 어디 가서 욕먹고 조롱당하면 안 되지. 예쁨 받고 칭찬받아야지. 진짜 자식에게도 안 세우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다. 늘 신경이 곤두선 채 일하니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엄격하다. 내가 실수하는 것도, 남이 실수하는 것도 관대하지 못하니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도 힘들다. 프로의식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라면 이런 실수 절대  . 잔뜩 긴장해서 씩씩대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람은 사라지고 일만 보였다. 완벽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건 모두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짜증과 불만이 늘었다. 이런 아내, 엄마와 사느라 남편과 아이도 힘들었다.


“왜 자꾸만 일이 나 자신이 돼버리는 걸까.

왜 적당히가 안 되는 걸까.

왜 퇴사를 해도 이렇게 힘든 걸까.”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한 마디 했다.

“그렇게 하면 일 많이 못 해. 오래도 못 하고.” 

분야는 전혀 다르지만 남편은 PM으로 여러 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책임지고 있었다. 남편은 본인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알면 놀랄 거라면서, 자신은 실수를 상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수하는 건 당연하고 바로 잡으면 되는 거라고.

“난 그냥 틀리면 넵넵, 잘못했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해. 어떻게 다 힘주고 해. 힘주고 할 때랑 아닐 때를 구분해야지. 그렇게 생각 안 하면 많은 일을 한 번에 할 수가 없어.”
“그건 프로페셔널리즘이 부족한 거 아니야? 난 그런 거 못 참겠어.”
“프로페셔널리즘이 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받은 만큼 적당히 일하는 게 프로페셔널이지. 너는 장인이 되고 싶은 거야.”

 


남편의 큰 그림



캠핑장에 도착해 남편과 텐트를 쳤다. 우리가 쓰는 텐트는 거실형 텐트. 바깥쪽에 텐트를 친 다음, 안쪽에 방 역할을 하는 이너 텐트를 별도로 설치한다. 바깥쪽 텐트 치는 것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남편이 안쪽에 있는 텐트를 쳐보겠냐고 물었다. “해보지 뭐. 이번에는 안 망쳐야지.”

지난번 캠핑 갔을 때였다. 호기롭게 이너텐트를 혼자 치겠다고 들어갔다. 비장한 표정으로 낑낑대며 텐트를 쳐놓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대충 보면 괜찮은데 반원형 텐트 모양이 묘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다시 보니 고리 거는 순서가 꼬여 있었고 고리를 안 건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실수. 이너텐트 아래에 방수포 까는 걸 잊어버렸다. 방수포는 1번 중에 1번인데.

결국 남편은 텐트를 다시 치고 아래에다가 방수포를 밀어 넣었다. 날씨가 오락가락하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남편 몸에도 비가 내렸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여기 주황색 보이지? 이게 중심에 있는 거야. 이걸 먼저 걸고 하나하나 차례대로 고리를 거는 거야. 나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텐트가 다 체계적으로 설계가 돼있더라고.”

남편과 텐트를 치면서 알게 됐다. 나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걸. 

그래서 늘 불안하고 조급하고 눈앞에 닥친 것만 완벽히 해내려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간다는 걸.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남편이 나처럼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 않는 이유를.

몸에 힘을 뺐다. 지난번 실수를 복기하며 뭐부터 해야 할지 생각했다. 방수포를 먼저 깔고, 중간에 있는 주황색 고리를 앞쪽과 뒤쪽에 먼저 걸어놓고 차근차근 천천히. 이번에는 순조롭게 텐트를 칠 수 있었다.


마스다 미리의 책 <주말엔 숲으로>. 표지와 그림체만 보고는 힐링 만화를 예상했는데 단단한 메시지가 예고도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책이다. 시골로 이사 간 프리랜서 번역가 하야카와가 주인공인데 주말이면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 마유미와 세스코가 번갈아가며 하야카와의 시골집에 놀러 온다. 어느 날, 집 근처 숲길을 걷다 날이 어두워져 주변이 온통 캄캄해진다. 무서워하는 세스코에게 하야카와가 말한다.

 

“숲에는 돌이나 나무뿌리가 있어서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 해.”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그렇게 하자 정말로 걷는 게 조금은 수월해진다. 숲에서 얻은 메시지는 세스코가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발밑보다 조금 더 멀리 보는 것. 당장의 완벽에서 벗어나 느슨한 마음으로 큰 그림을 보는 것. 다시 심호흡. 몸에 힘을 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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