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Nov 28. 2018

퇴사 3개월, 몸이 다시 고장 났다

"왜 안 구부려 지는 줄 아세요?" 요가 원장님이 던진 질문

퇴사 3개월. 몸이 다시 고장 났다. 고질병이었던 목 디스크 증상이 재발했고 어지럼증도 다시 나타났다. 어제는 체했는지 온몸에 기운이 없어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저녁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퇴사 후 호기롭게 주5일 요가를 끊었다. 그전에는 회사에서 나오는 자기계발비(aka.남의 돈)로 다녀서 자주 빠진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나는 내 돈 주고 다녀도 자주 빠지는 인간이더라. 주5일 다 간 적은 한번도 없고, 주5일 다 빠진 적도 있...(내 퇴직금ㅠㅠ)


이러다 또 병원 가겠다 싶어서 정말 오랜만에 요가원에 갔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사람이 확 줄었다. 나처럼 빠지는 사람이 많구만. 왠지 모를 위안.


이 요가원에 다닌 지는 6년 정도. 다니다 안 다니다를 반복했다. 퇴사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요가 등록일 정도로 나는 이 요가원이 그리웠다(그런데 왜 안 가는 거니...).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뱉으며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안 쓰던 근육을 쓰면서, 몸이 쫙쫙 풀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요가가 너무 하고 싶은데 회사 다니고 애 키우면서는 도저히 시간이 안 났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회사 근처 헬스장에서 하는 요가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돛대기 시장인 줄. 사람이 많아서 팔 다리 뻗을 공간조차 없었다. 그건 요가가 아니었다.


왜 안 구부려 지는 줄 아세요?


출처 : unsplash


6년간 요가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내 요가실력은 여전히 입문반 수준이다. 오늘만 해도 내 옆에 신입으로 보이는 여성분을 원장님이 집중 케어 해주셨는데 나까지 덩달아 케어 받았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서더니 “자, 두 분은 그냥 이렇게 하세요”하며 더 쉬운 동작을 알려주셨다^^


나는 유연성이 없다. 학창 시절, 앉아서 앞으로 구부리기를 하면 마이너스가 나왔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낑낑 대며 손끝을 뻗어 발끝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원장님이 “앞으로 안 구부려 지세요?”라고 말했다. 슬쩍 보니 옆에 있는 여성분은 나보다 더 뻣뻣하더라. 나는 아닌 척 하면서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왜 앞으로 안 구부려 지는 줄 아세요?


원장님의 의외의 질문. 이어지는 의외의 대답.


속에 두려움이 많아서 그래요.
마음속에 두려움이 많은 분들은
긴장하니까 몸이 계속 경직되거든요.
어깨랑 등이 계속 굳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잘 안 구부려 지는 거죠.
마음이랑 몸은 연결돼있어요.


아니, 유연성 없는 게 제 마음 때문이라고요? 제 몸은 원래 이랬는데요...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 없었다. 두려움, 긴장, 경직. 내 상태가 그랬다.  


어깨 힘 빼세요



퇴사 후 일단은 쉬겠다고 말했지만 한순간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마더티브 런칭 준비와 개인적인 글쓰기 작업까지. 계속 정신이 없었다. 여기에 독서모임, 독립출판 워크숍까지. 남편에게 애 맡기고 여행 가서도 카페에 앉아 글을 썼다.  


요가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깨 힘 빼세요”다. 나는 긴장하면 온 몸, 특히 어깨와 목쪽에 힘이 들어간다. 목 디스크가 계속 재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할 때는 늘 긴장하게 된다. 잘 하고 싶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

그 일을 잘 해야 하고

남에게도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

그렇지 못한 상태를 참지 못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 덕분에 성과라고 할 만한 것들을 손에 쥐기도 했지만 몸은 수시로 고장이 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9년간 열심히 일했고, 오랜 고민 끝에 퇴사했다. 그런데 나는 내 자신에게 잠시의 휴식도 주지 않고 있다. 또 나를 밀어붙이고 있다. 또 다시 바쁘고 늘 정신이 없고 몸이 아프다.


원장님이 말을 이어갔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많고 경직된 분들은
자주 스트레칭을 해주세요.
마음을 푸는 것보다는 몸을 푸는 게
그래도 쉽잖아요.


행복해지고 싶어서 퇴사했다. 나를 지키려고. 그런데 또 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 대체 나는 뭐가 그리도 두려운 걸까.


집으로 가는 길. 원장님은 “자주 오세요”라고 말했다. 내일도 요가원에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까지 했는데 이렇게 힘들 일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