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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Nov 23. 2020

나의 서사가 레퍼런스가 되는 곳, 창고살롱

일과 삶, 제로섬 게임을 넘어서

창고살롱 모집 오픈 당일 아침. 나는 멘탈이 산산이 부서진 상태였다. 새로운 서비스 론칭을 앞두고 챙겨할 것도 신경 쓸 것도 많아 몇 주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루 종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서 일까. 각성 상태가 계속돼서 자도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그 상태로 다시 일어나 작업 또 작업. 스트레스 받을 때면 맥주 한 캔 생각이 간절한데 너무 할 일이 많으니 술 마실 생각조차 안 났다. 일단 눈 앞에 있는 일부터 하나씩 마무리해나가야 했다.

공동 창업자인 혜영님과 함께 브랜딩 방향 정하고 프로그램 짜고 일정 짜고 연사 섭외하고 문구 하나, 디자인 하나, 구성요소 하나하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준비해온 서비스이니 만큼 제대로 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줌콜을 하고 전화를 하고 슬랙을 하고 카톡을 했다.


내 멘탈 같은 집안꼴@홍밀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서도 컴퓨터 앞에 앉은 채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심심하다고 놀자고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 날날아 엄마 이것만, 이것만, 미안해를 입에 달고.


아이와 놀고 있어도 머릿속은 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꾸만 스마트폰으로 일을 하고 아이에게 짜증을 냈다.

오픈을 하루 앞둔 일요일. 아이는 낮잠을 자다 울면서 깼다. “울음이 멈추지 않아.” 아이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단 거 그만 먹고 빠방이(동영상) 그만 보라고 화내서.


처음에는 그만 좀 울라고 짜증을 냈다가, 달래도 봤다가, 나중에는 진심으로 걱정이 됐다. 울음이 짧은 아이인데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계속 우는 아이를 보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남편도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단 거를 많이 먹고 빠방이를 많이 보게 된 건 나와 남편 때문이다. 아이가 단 거를 먹고 빠방이를 보면 엄마 아빠를 찾지 않으니까.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이가 단 거를 너무 많이 먹고 빠방이를 너무 많이 보면 죄책감과 자괴감이 커진다.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된다. 날날아, 단 거 너무 많이 먹으면 당뇨 걸려. 빠방이 너무 많이 보면 머리가 이상해져. 이 상황이 우습고 민망해서 죄책감과 자괴감은 더 커진다.

그러니까 내가 힘든 상황은 이런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일을 잘하려면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아이와 남편에게 미안해지는 상황. 아이와 남편이 걸림돌처럼 느껴졌다가 그런 내 자신이 싫어지는 상황.



컴퓨터 앞 미친 여자


그 와중에 아이가 감기 걸려서 가정보육도 했다


오픈 당일 아침도 그랬다. 눈 뜨자마자 한껏 예민해진 상태로 각 채널을 점검하고 있는데 아이와 남편이 거실에서 등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이빨 안 닦겠다고 옷 안 입겠다고 징징대는 소리가 들렸다. 주말 내내 쉬지 못했던 남편이 짜증 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결국 한바탕 울었다.


엄마, 안녕. 하고 아이와 남편이 문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모든 게 너무 버거웠다. 아아악.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3살쯤 됐을 때였나.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데 아이가 밤새 수십 번 깨던 어느 날처럼. 그 자리에서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놀란 남편이 들어와서 물었다. 날날이 때문에 힘든 거냐고. 나는 답했다. 그냥 다 힘든 거라고. 이 모든 상황이. 남편한테도 미안하고 날날이한테도 미안하고. 그냥 나는 일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싶다고.

그렇게 엉엉 울고 나서는 꾸역꾸역, 무사히 창고살롱 오픈을 했다.


인스타, 노션 채널 오픈!


고생 많이 했다고, 프로그램이 정말 알차다고, 꼭 필요한 커뮤니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아침에 컴퓨터 앞에서 울던 미친년은 어디로 갔나 싶었다.

그날 오후, 아이를 일찍 데리러 갔다. 아이도 아침에 언제 울었냐는 듯 신나게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줘야지. 서점에 가서 양서류 파충류 장난감도 사주고 목걸이를 만들 수 있는 비즈 세트도 샀다. 집에 돌아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해 먹고 목걸이를 만들다 아이 날적이(알림장)를 확인했다.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아침에 남편은 날적이에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써놓았다. 아이가 낮잠을 자다 일어나서 한참을 울었다고. 요즘 엄마도 아빠도 많이 바빠서 아이랑 잘 놀지도 못하고 짜증만 내서 미안하다고.

다음 장에 아이 담임 선생님 답장이 이어졌다.

“그 바쁘신 중에도 우리 날날이에게 마음 쓰시고 돌봐주시고 안아주시고 챙겨주시고 계시니까. 잘하고 계시는 거예요. 이때가 지나면 조금 더 여유 있어지면 분명 더 많은 사랑과 마음 주실 거잖아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니까. 그러면서도 날날이에게 눈을 떼거나 마음을 떼는 건 아니시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날날이가 어린이집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어린이집에서 더 많은 사랑을 주겠다고 했다. 선생님 마음이 감사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남편도 날적이를 보더니 식탁에 앉아 울었다. 남편은 말했다. 자기도 요즘 일이 너무 많은데 집에 오면 나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고 매일 애도 봐야 해서 힘들었다고. 남편은 그날 내가 소리 지르는 걸 보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저 미친년부터 살려야겠다 싶었다고.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은 여성들의 커뮤니티



창고살롱 모집 오픈 일주일. 여전히 일은 많고 아이에게 자꾸만 미안하다. 남편과 매일 눈치 게임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예전처럼 그만두거나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이야기를 창고살롱에서 해보고 싶으니까.

창고살롱은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방황하다 새로운 롤모델을 찾겠다며 언론사를 퇴사하고 동료들과 마더티브를 창간했던 나와, 10년 넘게 대기업에서 워커홀릭으로 일하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둔 후 5년의 경력단절 끝에 다시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혜영님이 공동으로 창업했다.

서른 살 전에는 그저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노력하면 가능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더는 서른 살 이전처럼 일할 수 없었다. 책임져야 할 아이와 남편이 생겼고, 갈수록 연로해지는 가족들도 수시로 챙겨야 했다. 조직 안에서 신경 써야 할 게 많았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연차가 쌓일수록 세상의 기대는 높아지는데 늘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일만 생각해서는 일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일과 삶을 함께 고민해야 했다.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이 엄마인 혜영님과 5살 아이 엄마인 나는 동업자인데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나는 나대로,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을 키우는 혜영님은 혜영님대로 여전히 엄마로서의 역할이 있다. 우리는 직접 만나는 시간을 아껴서 후줄근한 모습으로 수시로 줌콜을 하고 통화를 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To-do리스트를 지워 나간다. 늘 정신 없고 늘 바쁘다.


창고살롱 노션에 올린 자기소개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서로의 상황을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쩔 수 없는 걸 알고 있고, 일이 되게 하면 되는 거니까. 일하는 나로서의 정체성만큼이나 엄마, 아내, 딸로서의 삶도 중요하니까.

혜영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이 곧 나였고(Work=Life), 아이를 낳은 후에는 일과 삶이 제로섬 게임이었는데(Work vs.Life) 이제는 Work in Life를 꿈꾼다고. 한국 말로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삶 속에 일이 있고 일과 삶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삶 정도가 될까.



12월 1일부터 시작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창고살롱을 통해 우리의 고민을 확장해보고 싶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가족돌봄, 질병, 번아웃 등 여성의 생애주기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커리어와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이야기하고 여성과 여성이 연결되기를 바란다. 현재 일을 쉬고 있더라도,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았어도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일을 만들어가고 싶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지금까지 글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여전히 나도 엉망진창이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그 중간에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길이 없다면 만들어가고 싶다. 뒤에 올 여성들은 나처럼 막막하지 않도록. 더는 일하는 여성들이 홀로 고민하다 사라지지 않도록.



창고살롱의 슬로건은 ‘나의 서사가 레퍼런스가 되는 곳’이다. 우리는 여성들이 지속 가능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정답 같은 롤모델이 아니라 더 나은, 더 많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저렇게 살아볼 수도 있구나, 내 고민도 한번 이야기해볼까, 함께 방법을 찾아볼까.’

더 많은 서사가 쌓이고 더 많은 레퍼런스가 모일수록 여성들에게는 더 많은, 더 나은 선택지가 생길 것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레퍼런서(Reference+er)

가 될 것이다. 창고살롱에서는 누구나 레퍼런서가 될 수 있다.


자세한 창고살롱 소개는 여기서​(기승전-홍보). 시즌1 멤버십은 이번주 일요일까지 모집 마감이다.


창고살롱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anggo_salon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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