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엄마는 일도 하고 싶어
육아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가 아플 때다. 아이가 아픈 것도 안쓰럽지만, 내 생활이 멈춰버리는 게 나는 가장 두렵다. 나는 그런 엄마다.
아이가 심한 감기에 걸렸다. 컨디션은 좋은데 가래와 기침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또다시 응급실에 다녀왔고, 이번 주 내내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다는 건 아이의 24시간을 온전히 내가 돌봐야 한다는 뜻이다. 내 시간은 그만큼 뭉텅이로 사라진다.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도 일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수시로 노트북 앞에 앉았고 휴대폰을 열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같이 놀자고 보챘다. 책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여기로 오라고. 아마 지난 일주일간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아이가 언제 잠드나였을 거다.
어제는 정말 최악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차도가 없다며 이번 주말까지는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절망이었다. 소아병동에는 아픈 애들로 가득했다. 울고불고 아비규환. 그 와중에 아이는 에너지가 넘쳤다. 이미 나는 방전 상태.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다.
집밖에 나오지 못했던 아이는 병원이라도 좋은지 로비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고 수많은 사람, 각종 병원 기기가 지나갔다. 아이에게 아무리 조심하라고 주의를 줘도 소용없었다. 병원 바닥에 누웠다가 굴렀다가 나를 깨물었다가. 추운데 잠바는 절대 안 입겠다고 했다.
하이엔드 에너지 아이, 저질체력 엄마. 나는 저 아이를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약국에 가서는 아예 찬바람이 들어오는 문 앞에 계속 서 있겠단다. 타이르고 겁을 주고 혼을 내고 소리를 질러도 듣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엄마가 얘 좀 어떻게 해보라는 시선이 느껴진다.
지금 감기 때문에 병원에 와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저러다 감기가 더 심해지면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데.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내 목소리는 점점 격앙됐다.
“날날아, 지금 감기 걸려서 어린이집도 못 가고 친구들도 못 보잖아. 이렇게 찬바람 쐬면 어린이집 계속 못 가. 친구들도 못 봐. 그러고 싶어?”
“날날아. 이렇게 잠바 안 입으면 병원 와서 또 피 뽑아야 해. 주사 바늘 맞고 또 피 뽑고 싶어?”
급기야는 아이를 떠밀며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찬바람 마음껏 쐬라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얼굴, 새된 목소리. 사람들은 생각했을 거다. 애한테 저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나도 예전엔 나 같은 엄마들 보면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나는 그런 엄마가 돼버렸다.
한참을 기다려 약을 받고 나왔더니 아이는 다시 기침을 심하게 했다. 화가 치밀었다. 얘는 나를 벌주려고 태어난 게 아닐까. 아마 다른 날 같았으면 사탕이나 젤리로 회유했을 텐데. 내게는 그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난리를 치고 집에 왔는데 아직도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지쳤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아이. 아이에게 계속 화를 내는 나. 제발 혼자 있고 싶었다. 안방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갔다. 놀란 아이는 “엄마, 엄마” 하며 밖에서 방문을 계속 두드렸다.
엄마라는 그 말이. 너무 버거웠다. 다시 드는 생각. ‘나는 엄마가 돼서는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울음 소리는 점점 커졌다.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아이는 벌건 눈으로 내게 와락 안긴다. 엄마가 없어져서 무서웠다며 운다.
“날날아. 엄마가 미안해."
아이를 꼭 안았다.
"엄마 너무 힘들어. 계속 그렇게 말 안 들으면 엄마는 없어져 버릴지도 몰라. 엄마 좀 도와줘.”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없어지고 싶었다.
이럴 때 회사를 안 다녀서 다행인가. 눈치 내며 휴가 쓰지 않아도 되니까. 민폐 안 끼쳐도 되니까. 아니. 오히려 더 답답하다. 내게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고 잘 해내고 싶다. 일도 육아도 함께 하고 싶어 퇴사했다. 이왕 없는 시간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내 자신에게 1년의 시간을 주기로 했고, 벌써 3개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이가 아프니 나는 육아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이제 겨우 겨울 초입인데... 이러다 육아에 주저앉아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육아에 소질도 재능도 없는데. 퇴사 전에 가장 우려했던 상황.
잠들기 전. 아이를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쓸어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날날아. 엄마랑 집에 있으니까 좋아?”
“응. 좋아.”
“엄마가 계속 화내는데? 친구들도 못 보고?”
“엄마 있으니까 좋아. 엄마랑 같이 놀고 싶어.”
엄마랑 같이 놀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구나. 아이와 계속 붙어 있어도 정신은 늘 다른 데 있었다. 아이는 그걸 알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묻는다.
“엄마 회사 안 가?”
엄마는 회사를 안 다니지만 일은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엄마도 가야지.”
“안 돼. 엄마는 날날이랑 놀아야 해.”
“엄마 회사 가면 싫어?”
“응.”
“근데 날날아. 엄마는 해야 하는 일이 있어. 날날이도 좋은데, 엄마는 일도 좋아. 날날이랑 놀고 일도 하고 싶어.”
언젠가 아이도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될까. 엄마로 살면서도 나로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데. 번번이 무력하다. 자꾸만 아이에게 잔인해진다. 벌써 새벽 5시. 어제를 잊지 않기 위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