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창업, 이직… 겨우 알게 된 것들
지난해 9월에 퇴사했으니 퇴사한 지 10개월,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다.
나는 퇴사를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다. 오죽하면 퇴사 후 ‘엄마의 퇴사’라는 제목으로 책 낼 생각까지 했겠나(책 내겠다는 출판사가 없었…).
‘엄마의 퇴사’에서 퇴사 전 고민을 담았다면, 이번에는 퇴사 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퇴사 후에야 겨우 알게 된 것들에 대해 3-4회에 걸쳐 쓰려고 한다. 퇴사 후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년만 수입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해보자.’
퇴사 전 결심이었다. 퇴사 후에도 퇴사 전과 마찬가지로 남편이 어린이집 등원을 책임졌다. 일주일에 한번 가사도우미가 와서 빨래와 청소를 해줬다. 퇴사하더라도 육아와 가사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남편과 합의한 내용이었다. 나는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퇴사한 거니까. 대신 1년이 지난 후에도 수익모델(=돈 벌 구멍)을 찾지 못한다면 다시 구직활동을 하기로 했다.
퇴사 직후에는 불안보다 홀가분함이 더 컸다. 이게 사는 거지 싶었다. 퇴사 마지막까지 나를 괴롭혔던 어지럼증도 소화불량도 씻은 듯 사라졌다. 아이 재우고 밤늦게까지 글 쓰다 잠들어도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를 안 가도 됐다. 갑자기 시간을 뭉텅이로 선물 받은 것 같았다. 매일매일 쓰고 싶은 게 넘쳐 났다. 목구멍과 손가락 끝에서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흘러넘쳤다. 삶이 충만해졌다.
아이가 어린이집 가면 노트북을 챙겨 집 근처 카페로 갔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썼다. 직장인이기 때문에 해야 했던 의무방어와 감정노동이 사라졌다. 아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됐다. 퇴사 전에는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냈다면 퇴사 후에는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아까웠다.
정확히 3개월부터였다. 불안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퇴사 후 나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온라인 매거진을 만들고 미디어 스타트업을 준비했다. 사실상 창업이었다. 투자금은 내 노동력. 매일 글을 기획하고 쓰고 편집하느라 회사 다니기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자다가도 새벽에 깨서 노트북을 열었다.
일은 계속하고 있지만 수입이 없다는 것,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수입이 없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불안감이었다. 대학 졸업 후 6개월을 제외하고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았던 건 처음이었다. 대학 다닐 때도 늘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돈을 벌지 못한 건 십수 년 만에 처음.
소속과 수입이 사라지니 내가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르는 것도. 이러다 영영 세상에서 잊힌 존재가 될 것 같았다.
고작 3개월 만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그 난리를 치고 퇴사해놓고 이렇게 빨리 불안해지다니…’ (https://brunch.co.kr/@hongmilmil/27) 나 자신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퇴사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빨리 불안해질 거라는 걸.
그제야 퇴사 전날 전 직장 대표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퇴사하고 한두 달까지는 좋을 거야. 그러다 세 달쯤 되면 불안하고 뭘 해야 하나 싶을 거야.”
이후 대표를 만나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물었다.
“퇴사자들이 퇴사 세 달 지나니까 나한테 연락을 하더라고. 대표님 차 한 잔 할 수 있냐고(웃음).”
창업 후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리뉴얼 후 정식 론칭 3개월 만에 언론 인터뷰를 했고 출간 제안을 받았고 여러 곳에서 제휴 제안도 받았다. 매거진에 실린 대부분의 글은 포털사이트 대문에 걸렸고 가장 많이 본 글은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에 나는 충분히 기뻐하지 못했다. ‘이런 글이 필요했다’는 독자 반응에 감사하면서도 마음속에는 ‘그래서 수익모델은?’이라는 물음표가 따라왔다. ‘모든 일에는 인풋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순식간에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늘 조급했다. SNS를 보면서 무언가 이미 이룬 사람들의 정점과 나의 초라한 현재를 끊임없이 비교했다.
조금만 여유를 가졌어도 좋았을 텐데. 조금만 그 순간을 즐겼어도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내가 참 안타깝다.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었다. 9년간 모아놓은 퇴직금이 있었고 적금도 있었다. 남편의 수입도 안정적인 편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무슨 일 하세요?”
퇴사 후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이었다. 회사 이름과 기자라는 직업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던 시절이 끝났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런저런 설명을 하기 귀찮아 그냥 “회사 다녀요”라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기자와 언론사 이름으로 나 자신이 규정되는 게 싫다고 했으면서, 기자는 지긋지긋하다고 이제 다른 일 하면서 새 삶 살겠다고 했으면서, 남들 듣기에 번듯한 이름을 버리는 게 쉽지 않았다.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나를 포장하려 했다. 그런 나 자신에게 또 실망했다.
이직 전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나는 내가 왜 그토록 불안했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오히려 여행을 떠나면 특별한 뭔가가 되는 느낌이었는데 작가로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그 반대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데, 해외에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를 나만 아는 것 같았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자기만 아는 상태가 지속되면 키클롭스의 섬으로 쳐들어가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심리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p.165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이 괴로웠던 건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성과 평범함의 기준에 애써 나를 맞추려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언어로 내가 하는 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더 있어 보이려 초라해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정상성과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게 두려워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타인의 시선, 타인의 인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소속과 수입이 곧 내 정체성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별 수 없이 그런 것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퇴사를 하고서야 통렬히 깨달았다. 서른 해 넘게 몸에 밴 범생이 기질이 퇴사한다고 갑자기 사라질 리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퇴사를 후회했느냐면 그건 아니다.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을 테니까. 퇴사 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다음 편에는 퇴사는 했지만 감정적 퇴사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구남친이 되어버린 구직장. 이것도 퇴사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