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진짜 퇴사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퇴사 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퇴사 후에야 겨우 알게 된 것들. 이번 글에서는 '감정적 퇴사'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나는 첫 직장에서 9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 인턴 시절까지 합하면 10년 넘는 세월.
전 직장은 비교적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었다. 마치 동아리 같았다. 결혼, 육아, 커리어... 모든 고민에 늘 회사 사람들이 있었다. 가치관도 관심사도 생애주기도 비슷한 사람들. 회사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였다.
회사에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엄마들이 여럿 있었다. 임신, 출산, 육아… 우리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자주 나눴다. 그러다 마음 맞는 엄마들끼리 ‘마더티브’라는 온라인 매거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이드 프로젝트, 딴짓이었다. 회사 업무 외 시간을 쪼개 잠과 휴식을 줄여가며 기획하고 회의하고 글 쓰고 영상을 찍었다.
처음 마더티브를 시작할 때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회사 밖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월급 받는 직장인이기에 해야만 하는 의무방어나 성과압박에서 벗어나 정말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서른이 넘어서, 그것도 아이까지 낳고 이렇게 순수한 열정을 발견하다니… 20대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우리는 분명 행운아였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매뉴얼을 따르며 일했고 최종 결정권자가 있었지만 창간은 달랐다. 매체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우리의 목표, 슬로건, 주독자층, 매체에 실릴 글과 영상의 방향성, 포맷, 톤, SNS 홍보 전략... 0부터 100까지 하나하나 우리가 결정해야 했다. 지난하기는 했지만 모든 과정과 결과물은 오롯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효능감과 성취감이었다.
점점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아직 아이는 어렸고 엄마 아빠의 손을 많이 필요로 했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싫지는 않았다. 충분히 재밌고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회사 일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퇴사를 꿈꿨고 회사를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마더티브라면 그 새로운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퇴사하면서 마더티브는 퇴사자 1명, 육아휴직자 1명 그리고 재직자 2명이 함께 꾸리는 매체가 되었다. 훗날 누군가는 말했다. 퇴사자와 재직자가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조합이었다고.
“직장생활 11년을 마무리 짓고 독립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왜’ 그 일을 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은 바로 ‘누구와 왜’를 납득하여 선택한 일이고, 그러니까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조금쯤 과장 섞인 마음을 품는 것이지요.” 제현주, <일하는 마음>, p.12
마더티브를 향한 마음은 멤버들 모두 절실했다. 마더티브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신화에 짓눌려 일과 육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나만 나쁜 엄마 아닐까’ 고민하는 우리 같은 엄마들에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엄마의 모습은 다 다를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마음을 돌보는 매체를 만들고 싶었다. 이건 결코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더티브를 통해 회사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언제까지고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다가올 마흔 이후를 대비해야 했고 나만의 무기가 필요했다. 우리는 마더티브를 통해 그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퇴사 직후에는 마더티브 일에만 온전히 올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연스레 내가 편집장 역할을 맡아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다행히 육아휴직 중인 멤버가 있어 역할을 분담할 수 있었고, 재직 중인 다른 멤버들도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 했다.
그럼에도 절대적인 업무 시간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티 안나는 그림자 노동도 많았다. 멤버들이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나는 나대로 내 처지가 멤버들에게 부담될까 미안했다.
겉으로는 나는 정말 괜찮다고,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고, 나중에 수익 나면 내가 더 많이 가져가면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점점 괜찮지 않아졌다. 나만 퇴사했고,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지만, 나만 어떤 수입도 없는 상황(다른 멤버들은 월급과 육아휴직 급여가 있으니).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언젠가부터 회사를 다니고 있는 멤버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게 됐다. 퇴사는 전적으로 내 선택이었고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회사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게 모르게 듣게 되는 것도, 그 일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회사를 그만뒀지만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기분. 언제부턴가 나는 멤버들에게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었다. 재직자들과 일을 함께 하기로 한 것 역시 내 선택이었음에도. 멤버들에게 상처를 줬다.
퇴사 3개월 즈음, 첫 번째 투자심사에서 떨어지면서 나는 더 불안해졌다. 멤버들에게 자주 ‘끝’을 이야기했고, 3개월만 더 해보고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4월부터는 육아휴직 중인 멤버의 복직이 예정돼있었다. 그때는 정말로 혼자서 더 많은 짐을 져야 했고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손해 보지 않을 방법, 상처 받지 않을 방법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일단 4명의 멤버 모두 처지가 너무 달랐다. 네 명 각자의 사정에는 가족의 사정도 포함됐다. 남편도 있고 애도 있는 우리는 더 이상 나 혼자만 생각할 수 없었다.
마더티브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달랐다. 퇴사를 한 내게는 마더티브가 새로운 직장이었지만, 직장을 다니고 있는 멤버들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더티브는 사이드 프로젝트와 사업, 그 사이에 애매하게 서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표라는 총대를 메고 마더티브를 사업적으로 성장시킬 것인가, 그러지도 못했다(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자세히 하겠다).
확실한 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그 일을 사업으로 만들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취미가 일이 됐을 때, 친구와 동업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도 비슷하려나.
마더티브 1기 활동을 마무리하기로 하던 날. 우리는 많이 울었다. 더는 애 데리고 키즈카페에 모여 회의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 눈치 보면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잠과 휴식을 반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네 명의 멤버가 함께 모여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새로운 작당을 시도해보는 일은 당분간 하지 못할 것이다. 육아 동지이자 같은 꿈을 꾸는 동료였던 멤버들과도 자주 보기 힘들 거다. 그게 너무 아쉽고 속상했다.
그제야 정말로 퇴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전 직장과의 마지막 연결고리가 툭 끊어지는 기분. 정말로 혼자가 된 기분.
새 직장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나는 전 직장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고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전학 간 아이가 전 학교 친구들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듯이.
한 친구는 이런 내게 구 남친에게 질척거리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지겹다 했으면서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존재니까. 무엇보다 첫 정이었으니까. 퇴사를 하고서도 감정적 퇴사는 꽤 오래 걸렸다.
*다음 편에서는 '사업 체질'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내가 대표가 아니라 다시 직장인을 택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