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차 현실부부의 눈치게임
-심장이 빠르게 뛴다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하다
-어지럽고 무기력하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TV에 나오는 부정맥 증상을 보는데 저거 내 이야기인가 싶었다. 어지럼증, 무기력증은 다행히 없기는 한데... 심장에 손을 갖다 댔다. 아픈 것까지는 아닌데 심장이 타는 것 같은 느낌. 인스타 광고 효율을 보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빠르게 요동쳤다. 누워 있으면 쿵. 쿵. 쿵. 심장 뛰는 소리가 베개에서 들렸다. 한 손을 가슴에 갖다 댔다. 이렇게 하면 진정 될까 싶어서. 어느 날 여섯 살 아이에게 “엄마 심장 어떤 것 같아?”하며 만져 보라고 했다. “엄청 빨리 뛰는데. 아 알았다! 엄마 어제 맥주 마셨지? 그래서 그런 거야.”
“한 캔밖에 안 마셨는데?”
“한 캔에도 뭐가 많아”(알코올을 말하려고 한 듯)
매년 겨울 바쁜 남편이 이번에는 지난해 가을부터 바빴다. 얄궂게도 나도 딱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매일매일이 눈치 게임. 불행 배틀. 남편과 내가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면 아이는 “어우, 또 전쟁이네. 전쟁이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싸움의 주제는 주로 집안일과 육아에 관한 것이었다. 가사도 육아도 늘 해야 할 일이 화수분처럼 생겨났고, 남편 아니면 내가 해야 했으니까.
남편 : 설거지를 할 거면 끝까지 하지 왜 꼭 하나씩 남겨둬? 음식물 쓰레기는 안 치워?(우리 집은 주방 일은 남편, 빨래는 내 담당이다)
나 : 너는 빨리 제대로 갠 적 몇 번이나 있어. 옷장까지 넣은 적 있어? 맨날 내가 하잖아. 나는 그래도 설거지 한 번씩 해줬어.
남편 : 어제 내가 등원도 하고 저녁에 애도 재웠으면 오늘 아침은 니가 애 봐야지. 왜 늦게까지 자는 거야. 왜 지금 방문 다시 닫은 거야?
나 : 너도 그냥 소파에 누워서 애한테 영상만 보여줬잖아. 애가 무슨 영상 보는지는 알아? 아침에 애랑 놀아주지도 않잖아.
남편 : (휴대폰에 코 박고 있는 나를 보며) 가족이랑 있을 때는 일 좀 그만해. 우리 좀 봐.
나 : 너는 일 있을 때 아예 말도 못 걸게 하잖아. 맨날 야근한다고 집에서 잠만 자면서. 집에서 하루 종일 일하면서 집 치우고 하는 사람이 누군데. 재택근무가 더 힘든 거 알아?
창고살롱이 시작하는 시간은 밤 10시. 밤 9시가 되면 심장이 뛰었다. 운영진이다 보니 진행 준비도 해야 하고 리허설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봐야 했다. 남편에게 늦어도 9시 반까지는 와달라고 당부했다. 9시 10분. 남편 카톡. “미안. 택시가 안 잡히네.” 야근이 기본값인 남편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집에 도착했다. 어떤 날은 내가 마이크 켜고 살롱을 진행하고 있는데 남편이 도어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 : “그거 조금 일찍 나오는 게 그렇게 힘들어? 꼭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와야 해? 니가 회사에서 회의하거나 거래처랑 미팅 있는데 내가 이렇게 했다고 생각해 봐.”
남편 : “나도 최대한 일찍 나온 거야. 일이 계속 생기는데 어떡해. 다들 야근하고 있는데 관리자인 내가 혼자 일찍 나오면 얼마나 눈치 보이는 줄 알아? 나도 죽겠어.”
창업을 하니 출퇴근도 평일과 주말도 없었다. 시스템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시기라 수많은 삽질과 시간, 에너지 투입이 필요했다. 여기에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핸드북 출간에 이어 확장판 인터뷰집 제작, 텀블벅까지 겹쳤다. 늘 머릿속 공장이 멈추지 않고 돌아갔다.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었다. 집으로 퇴근했다가도 아이를 재워 놓고 다시 야근을 했다. 주말에도 온전히 쉬는 날은 거의 없었다. 올해부터 남편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이사진(운영위원)까지 맡게 됐다.
남편과 나는 나이가 같다. 어느덧 30대 후반. 남편은 회사 관리직으로서, 나는 창업자로서 한창 커리어에 집중해야 할 시기. 동시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우리에게는 중요했다. 엄마, 아빠, 아내, 남편, 딸, 아들 그리고 노동자. 수많은 역할 중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역할 속에서 허우적대며 끊임없이 남편과 스케줄과 역할을 조정하다 보면 남편과 내가 마치 팀원이라고는 둘밖에 없는 (사이가 별로 안 좋은) 팀 같았다. ‘쟤 때문에 내가 더 많이 일하는 것 같은데? 쟤보다는 내가 더 고생하는 것 같은데?’ 끊임없이 서로 눈치 보고 눈치 주는 사이. 남편이 잠시라도 소파에 누워 핸드폰하고 있는 게 왜 그리 꼴 보기 싫은지.
얼마 전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 <미나리>를 봤다. ‘지영 엄마’, ‘지영 아빠’로 서로를 부르는 모니카와 제이콥 사이의 긴장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눈에서 꿀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다 서로를 구하기 위해 이민까지 왔지만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꾸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 서로의 시작이 어땠는지조차 종종 잊어버리는 관계. 남편과 내 모습이 보였다.
아침 시간과 등원은 남편이, 하원과 저녁 시간은 내가. 아이가 태어난 후 깨지지 않았던 불문율이었다. 그동안은 내가 8시~5시 유연근무를 했으니 어떻게든 둘이서 아이를 보는 게 가능했다. ‘명절 파업’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도 컸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내 애는 내가 보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지난가을부터 아이는 몇 번이나 혼자 또는 남편과 둘이 원주 시가에 다녀왔다. 남편과 나 둘 다 일이 있어서 시부모님이 서울 집에 와서 아이를 봐준 주말, 나는 혼자 안방에 들어가 쓰러져 잠들었다. 나부터 좀 살자 싶었다. 하나둘 내려놓는 중이다.
다행히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 도저히 안 될 때는 주변 아마(아빠+엄마, 공동육아에서는 학부모를 아마라고 부른다)들이 돌봄 품앗이를 해주기도 했다. 여섯 살이 되니 아이 혼자서 어딘가 보내는 게 가능해졌다.
아침에 눈 뜨면 출근, 침대에 가면 퇴근. 자다가도 해야 할 일, 신경 써야 할 일 생각에 숙면을 못 취하는 일상이 계속될 때쯤 봄이 왔다. 봄이 온다는 건 남편의 야근이 슬슬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도 창고살롱 시즌2 모집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내 일 안내서> 텀블벅도 끝나서 막 정신이 들고 있던 참이었다.
“아~ 제주도 갔다 오고 싶다. 요즘 비행기 표가 그렇게 싸대.”
“아~ 혼자 어디 좀 가서 쉬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나는 슬슬 밑밥을 깔았다.
“3월 말에 창고살롱 시즌2 시작되면 또 엄청 바빠질 텐데… 지금 가야 하는데…”
그렇게 순차적으로 세뇌 작업을 거듭하던 어느 날, 남편이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 놀러 갔다 와. 빨리 예약해. 마음 변하기 전에.”
“아니야. 남편도 많이 힘들었잖아. 남편이 쉬어야지.”
라고 말하기에는 나는 내 손에 가시가 제일 아픈 인간이었다. 사알짝 비굴한 표정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나… 1박 2일 말고 2박 3일 갔다 와도 돼?”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혼자 제주에 다녀왔다는 게 온 동네에 소문이 쫙 나 있으리라는 걸. 남편이 두고두고 이 카드를 써먹으며 ‘불쌍하지만 훌륭한 남편’ 모드로 본인을 홍보하리라는 걸. 제주에서 돌아오면 한동안 노예 모드로 납작 엎드려 살아야 하리라는 걸. 당장 여행을 며칠 앞둔 지금부터도 납작 모드를 실현해야 한다는 걸.
그럼 어때. 남편이 모르는 척 져줬으니 나도 남편의 심기를 살피며 져주는 수밖에. 우리의 눈치 게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