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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Dec 30. 2018

애 때문에 퇴사한 거 아닌데요

[엄마의 퇴사1-프롤로그] 일과 육아 사이에서 미치도록 나를 찾고 싶었다

“아까워서 그렇지, 아까워서.”

광화문의 한 식당. 삼계탕을 앞에 놓고 마주앉은 선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는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휴직하라고, 퇴사는 정말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퇴사 하루 전날이었다.


한때 내 사수이자 직장맘 선배이기도 한 그는 말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수많은 여자들이 애 때문에 회사 그만두고 그냥 ‘아줌마’가 된다고. 낮 시간에 놀이터 나가 보라고. 석·박사 딴 여자들 널렸다고. 한번 경력 단절되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무엇보다 회사 그만두고 돈 못 벌게 되면 10원 한 장 내 맘대로 못 쓰게 된다고. 육아와 살림에 대한 남편의 태도 역시 달라질 거라고. 그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라고. 주변에 그런 사례 많이 봤다고.


선배의 만류는 마치 절규 같았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엄마의 퇴사가 이토록 무서운 일이 되는 상황이.


첫 직장에 입사해 8년 8개월간 기자로 일했다. 경력이라는 글자에 엄마라는 이름 하나 더했을 뿐인데, 이제 내 경력은 쓸모없어지는 걸까.


선배의 걱정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력단절 여성이 재취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8.4년. 재취업했을 때 임금 등 일자리의 질은 이전 직장에 비해 확 낮아졌다. 나라고 그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선배, 저는 제가 이 회사에 있기에 아깝다고 생각해서 나가는 건데요. 그리고 저는 애 때문에 그만두는 게 아니에요. 꿈을 찾아서 나가는 거예요.”




절망감


퇴사하던 날, 마지막으로 찍은 내 책상



경상도 사투리에 ‘떼기친다’는 말이 있다. 학창 시절, 거친 여고생들 틈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센 척 하던 남자 선생님을 ‘떼기재이~(쟁이)’라고 놀리던 기억이 난다(그 거친 여고생 중 한 명이 나였다). 떼기를 서울말로 번역하면 허세 정도 되겠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퇴사자 흉내를 냈지만 사실 내가 바로 떼기재이.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었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나가는 순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봐. 반도의 흔한 경단녀가 되어 집에서 애'만' 보는 사람이 돼버릴 까봐. 사회에서 잊힌 존재가 되어 내 이름을 잃게 될까봐. 무엇보다 아이를 원망하게 될까봐. 그게 가장 무서웠다. 엄마가 된 현실을 후회하게 될까봐.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일과 육아 모두 잘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몰라도 남들과 달리 현명하게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근처에 도움 받을 가족 하나 없었으면서.


일하는 엄마가 된 후 줄곧 나를 지배한 감정은 절망감이었다. 그 전까지 내 인생의 설계자는 나였다. 나는 그저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직장맘으로 살게 되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너무나 많았다.


아직 면역력이 약한 아이는 자주 아팠다. 콧물 나고 기침 하고 열나기 시작하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내일 출근할 수 있을까’.


열 오르는 아이를 해열제 챙겨 어린이집에 보낼 때, 등원거부 하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을 때면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아이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미안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보다 최악의 상황이 언제 생길지 몰랐고, 휴가는 화수분이 아니었다. 여름에는 수족구, 겨울에는 독감 등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일주일 통으로 휴가를 내야 했다. 그것도 급작스럽게.


남편이 아무리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육아의 최전선에 서있는 사람은 엄마인 나였다. 나는 늘 분하고 억울했다. 애는 같이 낳았는데 왜 희생해야 하는 건 언제나 나일까. 왜 남편의 커리어만 저토록 견고한 걸까.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나는 남편과 자주 싸웠다.  


어린이집 소풍, 공사, 부모참여 수업, 교사 연수...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은 수시로 찾아왔다. 죽을 만큼 노력하고 있는데 아이에게도 일터에도 미안하고 죄송한 일이 반복됐다. 아이가 안 아프면 내가 아팠다. 몸도 마음도 고장 났다. 병원과 약국을 전전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직장맘의 사정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존버, 안녕


궁금했다. 대체 그 수많은 엄마들은 어떻게 이 힘든 일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초인적 힘으로 버티고 또 버텨서 결국 남는 건 무엇일까.


나는 일만 하는 엄마도, 애만 보는 엄마도 되고 싶지 않았다.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일과 육아 둘 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만 택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지독하게 방황했다.


실제로 제출했던 사직서. '존버, 안녕'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스스로 새로운 롤모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성이 엄마가 되어서도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적어도 후배들은, 내 아이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2018년 9월.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9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왔다. 사직서의 제목은 이랬다.


‘존버, 안녕’


이 글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미치도록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느 엄마의 분투기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는 ‘워킹맘’이라는 단어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한다. 직장에서 하는 노동 외에도 노동의 형태는 다양하며 가사노동과 돌봄노동도 일(work)이다. 일하지 않는 엄마는 세상에 없다.



[엄마의 퇴사] 기자 9년차, 엄마 3년차. 직장맘으로 사는 일상은 매일이 장애물 넘기다. 죽도록 노력하는데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기만 하다. 엄마에게 일과 육아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 일도 육아도 적당히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느 엄마의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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