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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Dec 31. 2018

나, 애 낳고 안 돌아올지도 몰라

[엄마의 퇴사2] 안녕하세요, 만년 퇴사 꿈나무입니다

출산휴가 들어가면서 퇴사자의 심정으로 동료 한 명 한 명과 작별 인사를 했다. ‘나, 애 낳고 안 돌아올지도 몰라. 육아휴직하면서 다른 일 모색해 보려고.’ 친한 선후배들에게 비밀스레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소박하게 퇴사 파티도 했다. ‘6년 동안 일하느라 고생 많았어,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남편이 건넨 카드를 보는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고생했다. 나님이여.


그때는 몰랐다. 육아휴직은 미래에 대한 모색 같은 걸 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모든 게 다 처음이고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아이는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저출산이 문제라고? 이 힘든 출산과 육아를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면서 살아간다는 게 더 놀라웠다.


육아휴직 후 복귀한 회사는 천국이었다. 무엇보다 월요병이 없어졌다. 주말 내내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다 월요일 아침 고요한 책상 앞에 앉으면 비로소 쉬는 기분이 들었다. 어른 사람과 대화라는 것도 할 수 있고 밥도 우아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누구누구의 엄마로 살아왔다면 회사에서는 온전히 내 이름으로 살 수 있었다. 즉각적인 성취감도 따라왔다. 이래서 직장맘들이 절대 회사를 안 그만두는 구나. 퇴사라니, 제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요? 회사는 내게 훌륭한 도피처였다. 심지어 월급도 주는.


   



새로운 일  


나는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발로 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출처 : unsplash)



‘복귀뽕’은 오래 가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2013년 초, <마을의 귀환> 취재를 위해 영국에 갔을 때였다. 도시 재생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범죄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고 이웃과 함께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스스로 바꾸고 있었다.


한창 정부 비판 기사를 많이 쓰던 시절이었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 누군가는 해야 일이었지만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다. 세상에 기자는 많았고 나는 누가 써도 상관없을 기사를 써내고 있었다.


나는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발로 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를 바꾸는 거창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손에 잡히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활동가가 될까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내 세속적 욕망을 잘 알았다.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과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들을 많이 봐왔다. 그 길을 걸을 자신은 없었다. 이왕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일을 하면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열정을 착취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싶지만 저녁 있는 삶,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또한 중요했다.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조직에서도 인정받고 싶지만 내 성취가 회사만의 것이 되기는 원하지 않았다.


이런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반문했다. ‘그래서 어디로 이직하겠다고?’‘그런 일이 세상에 있기는 있어?’ 실컷 이야기 다 듣고 나서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바로 친정엄마^^

 



퇴사할 수 있을까  


밥벌이에 치인 사람들의 딴짓을 응원하는 잡지 <딴짓>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일’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세 가지였다.


1. 기자가 아닌 일

2.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

3.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일


퇴사 후 새로운 삶을 찾고 싶다는 욕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때, 나는 임신을 했다. 2015년 가을이었다. 당장 퇴사를 할 수는 없으니 나는 내 방식대로 이 문제를 다뤄보기로 했다. 퇴사에 대한 고민을 기획 기사로 풀어내는 거였다.


그즈음 나처럼 퇴사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왜 우리의 노동은 이토록 우울한지. 왜 주변에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지.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지. 배부른 몸으로 고민 상담하듯 취재했다. 새벽에 자다 깨 책과 자료를 뒤적였다.  


밥벌이에 치인 사람들의 딴짓을 응원하는 잡지 <딴짓>을 취재했고, 대기업을 퇴사하고 ‘퇴사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장수한씨를 인터뷰했다(당시에는 퇴사학교 창업을 준비 중이었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빠져 나온 30~40대를 심층 인터뷰한 책 <사표의 이유>를 펴낸 이영롱씨를 만났다.  


팀 사정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획은 무산됐지만 그 때 나는 알게 됐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회사가 더는 내가 될 수 없는 시대. 회사를 벗어나 다른 일, 다른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걸. 개인의 성취와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것들’과 구시대적 조직문화는 필연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다는 걸.


“지금의 회사에서 나를 책임지지 않을 것을 잘 알게 된 노동자들은 이제 그들 역시 회사에 집중하지도, 충성을 바치지도 않는다. 이로 인한 패배주의와 ‘적당한’ 정도만의 성과주의, 보신주의, 협력적 파괴는 노동자의 ‘지금 현재’를 도구적이고 피상적인 시공간으로 만들어, 그저 ‘버티게’만 하고 있다.” <사표의 이유> p.166


1년 3개월의 육아휴직 끝난 후 나는 어떤 답도 찾지 못한 채 회사로 돌아갔다. 새로운 일의 기준은 하나 더 늘었다.


4.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을 것.


나, 퇴사할 수 있을까.



[엄마의 퇴사] 기자 9년차, 엄마 3년차. 직장맘으로 사는 일상은 매일이 장애물 넘기다. 죽도록 노력하는데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기만 하다. 엄마에게 일과 육아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 일도 육아도 적당히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느 엄마의 퇴사 일기.



https://brunch.co.kr/@hongmilmil/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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