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Aug 12. 2021

날것

그냥 이런 글도 써보고 싶어서

-"현진님은 모든 걸 초탈한 사람 같아요." 브런치 글을 본 누군가 했던 말이 오래 잊히지 않는다. 그건 내가 경험이 지나가고 숙성된 후에야 글을 쓰기 때문이다. 어떤 글은 쓰는 데만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글 속의 나는 꽤 성숙하고 멋져 보인다. 나조차 낯설 정도로. 나는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을 글로 남기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하는 게 늘 부담스러운 걸지도. 유독 말을 많이 한 날에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새벽 6시 20분쯤 집을 나왔다. 카페 문이 열리는 시간은 오전 7시. 아침 바람을 맞으며 합정에서 홍대까지 걸어간다. 노트북이 들어있는 책가방과 등 사이가 뜨끈하다. 영화 <이토록 뜨거운 순간> 속 뜨겁던 여자의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식어버린다. 대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뉴욕에 온 건 독립하기 위해서였는데 너랑 같이 있으면 자꾸 의존하게 된다고 했던가. 에단 호크가 영화를 만들었는데 여자는 좀처럼 마음을 알 수 없는 인물로 나오고, 남자는 한없이 지질하다. 자아도취와 자기 연민에 빠져 자꾸만 부모 탓을 한다. 남자가 후반부 여자에게 하는 행동은 명백한 이별 보복이라 아무리 에단 호크라도 마지막까지 보기 힘들었다. 


-어쨌든 독립에 대해 생각하다 이 영화까지 왔네. 내가 뉴욕에 온 건 독립하기 위해서였다는 여자의 말을 떠올린다. 마흔을 몇 해 앞둔 나는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다르게 살고 있다는 감각에 취해 진작에 했어야 할 고민을 유보한 채 나이만 들어버린 건 아닐까.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 중 몇 가지를 생략해 버린 것 같다. 

 

-브런치에는 늘 정갈한 글만 올리려 몇 번이나 퇴고하고 또 퇴고해 올렸는데 그냥 이런 글도 써 보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한여름, 추수의 계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