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걸 다 하고 있습니다
창고살롱만 하는 게 아니라서요, 라는 말을 많이 했던 상반기. 그럼 도대체 뭘 했느냐. 한여름인데 추수의 계절처럼 작업 결과물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나 이런 거 했어요’ 말하는 건 여전히 낯간지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기에 정리해 본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일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지만... 읍...읍...
올해 초부터 <오마이뉴스>에 해시태그 #비사이드 라는 제목의 프리미엄 연재를 하고 있다. 지난번에 쓴 글쓰기에 대한 글을 보고 격월간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에서 기고 요청이 왔다. 글쓰기와 책 쓰기 사이에서 내가 어떤 글쓰기를 하고 있는지 써 달라고. 그렇게 완성한 글이 '글쓰기, 꼭 책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마감이 오기 전 미리미리 마감을 해두는 편이다. 마감 앞두고 마음이 급해지고 쫓기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서. 이번 글은 한창 멘탈이 너덜너덜해져 있을 때라 그런지 엉엉 울면서 썼다. 마감 시간 임박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일단 송고했다. 결국 편집자의 피드백을 받고 거의 다시 고쳐 썼다. 기껏 편집 다 했는데 고치다니… 그 느낌 뭔지 아니까 편집자에게 정말 죄송했지만 정성 어린 피드백 덕분에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왜 그렇게 책 쓰기에 한동안 집착했을까,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글을 완성하려면 들여다봐야만 했다. 괴로운 일이었지만 언어로 표현하고 나니 훨씬 홀가분해졌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좀 더 명확히 알게 됐다. 자세한 내용은 <민들레>에서 확인하세요.
<마을의 귀환>이 8쇄를 찍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2013년에 나온 책이니 무려 8년 전에 나온 책인데 아직도 (조금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니. 귀여운 인세도 계속 받고 있다. 나는 첫 번째 책에 내 운을 다 쓴 것인가! ㅎㅎㅎ
첫 책은 멋 모르고 냈다. 열심히 발로 뛴 덕분에 1저자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선배들이 후배를 위해 애 많이 써줬구나 싶다. 퇴사를 하고 아쉬운 것 하나는 더는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가 될 기회가 없어졌다는 거다.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마을의 귀환>은 서울과 잉글랜드의 26개 도시 속 마을 공동체를 1년 넘게 취재한 책이다. 오랜만에 <마을의 귀환>을 들여다보다 책 속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다시 현장을 뛰면서 인터뷰하고 취재할 수 있는 날이 올까.
W Plant는 창고살롱과 마더티브를 운영하며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고민하는 조직이다. 나와 혜영님, 인성님 세 명이 조직원이다.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콘텐츠를 만들면서 외주로 브랜딩, 콘텐츠 제작, 교육 프로그램 기획/진행 등을 함께 하고 있다.
W Plant 세 명이 함께 제작한 첫 외주 콘텐츠. 의뢰받은 게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고살롱 오픈을 앞두고 정신이 없을 때였다. 아모레퍼시픽,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받아 루트임팩트, 진저티프로젝트, 포포포와 함께 경력 단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내:일을 고민하는 여성을 위한 지속가능한 커리어 가이드'라는 제목으로 4편의 콘텐츠 시리즈가 지난 2월부터 매달 발행됐다. W Plant는 그중 두 편의 콘텐츠를 제작했다. 주제에 적합한 패널을 섭외해 좌담회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콘텐츠로 만들었다.
기획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함께 작업하는 회사들과 소통하는 역할과 첫 번째 원고 정리를 내가 맡았는데 시리즈 처음이라 부담이 꽤 컸다. 첫 콘텐츠에 따라 이후 콘텐츠의 형식과 방향이 결정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외주라 더 긴장됐다. W Plant라는 이름으로 기획부터 섭외, 진행, 원고 정리까지 함께 만든 결과물이라 의미가 크다.
온라인 콘텐츠가 무사히 잘 발행됐고 핵심 조언은 엽서로도 제작됐다. 지난주 결과물을 우편으로 받았는데 물성이 있는 인쇄물은 또 다른 느낌이다. 여성이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소리 들려준 좌담회 패널 분들께 감사하다. 의미 있는 콘텐츠가 널리 널리 퍼져 나가면 좋겠다.
W Plant의 첫 외주 브랜딩&마케팅. 35년 전통 대구 고급 한정식집의 온라인몰 오픈 작업을 W Plant에서 맡았다. 리브랜딩부터 스마트 스토어 등록, 초기 마케팅까지. 꽤 길었던 과정. PM을 맡은 인성님이 세세한 것 하나까지 챙기느라 고생 많았다.
혜영님의 로고, 슬로건, 핵심 메시지 등 브랜딩 작업을 바탕으로 나는 '상락'의 가치와 매력이 고객들에게 좀 더 뾰족하고 구체적으로 가닿을 수 있도록 상세페이지,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제작했다(디자인은 금손 디자이너님이!).
상세페이지 구조를 짜고, 세부 문구를 고민하고, 이미지와의 조화를 생각하고(특히 음식이라 이미지가 중요했다), 식품 관련 법령 찾아보고. 음식 레퍼런스를 어찌나 많이 찾아봤는지. 작업할 때마다 배가 고팠다 ㅎㅎㅎ 상세페이지는 원고 작업할 때는 사리가 나올 것 같지만 막상 디자인되어 나오면 신기하고 뿌듯하다.
대구 출장 갔을 때 시어머니에 이어 2대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 이야기를 듣는데 이 또한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던 여성의 일 서사이자, 유의미한 레퍼런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중노년 여성 사장님 이야기도 모아보고 싶다.
여전히 나의 일을 기록하는 게 부끄럽고 민망하고 인정투쟁 같기도 하고. 그래도 기록해야 회고할 수 있으니까. 추수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