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Dec 04. 2021

내가 싫어지는 날, 심리 상담을 받았다

5회기 상담을 마치며

처음으로 받아본 5회기 심리상담이 끝났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정리하고 싶은 것들.



자책-자기혐오-자기연민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습관적으로 화살을 내게 겨눴다.


내가 뭘 잘못했지->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내가 인생 잘못 살았구나->나는 쓰레기야->앞으로 다른 관계는 어쩌지.  


아주 어릴 때 기억부터 대인관계에서 힘들었던 경험이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왔다. 자책-자기혐오-자기연민의 악순환.


-마음이 많이 무너졌던 날, 20년 지기 친구는 말했다.


너한테 화살을 겨누지 마. 오늘은 술도 먹지 마. 술은 기분 좋을 때만 마셔. 너무 힘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봐.


밤 11시쯤이었나. 검색을 하다 홈페이지 소개 글이 마음에 드는 심리 상담 센터를 예약했다. 내가 싫어져서 견딜 수 없는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50분에서 1시간 정도 5회기 상담을 했다. 1시간을 빼는 것도, 1시간에 8만 원이라는 돈을 내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나를 위해 오랜만에 시간과 비용을 지출하기로 했다.



나 자신을 소외시키는 나


-처음에는 대인관계 문제라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학창 시절, 직장 생활, 남편, 아이, 친정엄마, 아빠… 수많은 기억과 관계가 소환됐다. 상담사는 따뜻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경청하며 적절한 질문을 던졌다. 마음속에 꾹꾹 담아뒀던 감정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기도 했다. 특히 상담사가 내가 나의 예민하고 모난 부분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까 봐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나 자신을 누구보다 가장 먼저 소외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는 대바늘로 마음을 찔린 것 같았다.


-상담사는 내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질투, 서운함, 인정 욕구, 미움…)이 마음속에 올라왔을 때 그 감정을 금기시하며 얼른 없애버리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니 자꾸만 내 탓을 하게 되는 것도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심리 때문이었다. 남은 어차피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나한테는 내가 가장 만만하니까. 남 탓보다 내 탓을 먼저 하는 거다. 남 탓=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담사는 물었다. 왜 그 감정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냐고. 나는 그런 감정을 갖는 게 어른스럽지 못하고 미성숙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내 감정의 주도권을 쥐고 단단하고 평온하게 살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평가에 흔들리는 게 싫다고. 언젠가 질투심 때문에 자괴감을 느낀다는 내게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너무 당연한 감정 아니냐고.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산다고. 왜 너 스스로를 그렇게 힘들게 하냐고.


-나에게 엄격한 마음은 나와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끼거나 서운해하거나 미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다.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보듬어주기보다는 “그거 그럴 일 아니야””그만”이라며 감정을 차단해 버렸다.



내 안의 수많은 모순


-내 안에는 수많은 모순이 있다. 내 안의 뾰족함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까, 미움받을까 신경 쓰면서도 갈등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다. 아닌 건 절대 아니고, 할 말은 꼭 해야 한다. 갈등을 만들지 말거나 눈치를 보지 말거나. 둘 중 하나만 하면 될 텐데 나는 둘 다 한다. 갈등을 만들어 놓고는 눈치도 본다.


-그래서 나의 뾰족함을 버리고 싶냐면 그렇지는 않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고 A부터 Z까지 섬세하게 살피는 건 나의 강점이기도 하니까. 여기에도 양면이 있다. A부터 Z까지 챙겨야 하는 성격 덕분에 실행력과 추진력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나도, 주변 사람들도 숨 막히게 만들었다.


-성격/기질 검사에서 ‘자극 추구’ 성향이 높은 편인데 ‘위험 회피’ 성향도 높다고 나온 것도 흥미로웠다. 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일 벌이는 것도 좋아하지만 경계가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성격. 내 안의 모순들.


-상담사는 나의 뾰족함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상대방의 선택이기도 하다고 했다. 적어도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러게. 모든 관계는 상호적인데. 왜 나는 나만 바라봤을까. 내가 잘한다고 혹은 못한다고 해서 모든 걸 성공시킬 수도 실패시킬 수도 없는데. 이것도 자의식 과잉일까. 이것도 자기 혐오인가. 이것도 자기 연민인가.



더는 내가 불쌍하지 않다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은 동전의 양면이다. 습관처럼 내가 싫었다가도 내가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심리 상담을 받는 과정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마지막 5회기 상담 날에는 울지 않았다. 상담사에게 말했다. 앞으로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일들을 하고 싶다고. 그동안의 관성을 버리고 싶다고. 나를 좀 더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더는 나는 내가 불쌍하지도, 내가 너무 싫어서 나를 바꾸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그렇구나, 하고 조금은 떨어져서 지켜볼 뿐이다. 나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 방법을 생각하면서.


“이제 내 꿈은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백은선 <나는 내가 좋고 싫고 이상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