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Dec 13. 2021

가슴까지 물속에 담그는 것처럼, 글쓰기

글쓰기 살롱 시즌3를 마치며

글쓰기 살롱 소개 페이지


시즌3 글쓰기 살롱이 끝났다. 이번 시즌에도 밤쓰기 살롱/낮쓰기 살롱으로 나뉘어 3번의 줌 모임을 하고, 모임 전후로 3편의 초고와 3편의 퇴고 글을 완성했다.


감사하게도 모집 페이지 오픈 며칠 만에 두 개 반 모두 마감됐다. 절반이 재수강한 분들이어서 더욱 감격스러웠다. A4 1장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 A4 50장을 쓰며 퇴고했다는 분, 연차를 내고 모임에 참석했다는 분, 임신한 몸으로 새벽 1시(미국 시각) 넘는 시간까지 참석해 주신 분, 피드백을 위해 모임 시작 전 몇 번이고 글을 읽고 메모해 왔다는 분까지. 글쓰기 살롱은 결코 나 혼자 이끌어갈 수 있는 게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번 글쓰기 살롱을 진행하면서 고민했던 것들,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세 가지 주제


매 시즌 글쓰기 살롱 준비할 때마다 고심해서 주제를 정한다.


지난 시즌에는


1회 차) 자꾸만 미련이 남는 일

2회 차) 아무튼 OO

3회 차) 안녕, 낯선 사람


이었고


이번 시즌에도 나-타인-세계로 시선을 점점 확장할 수 있는 주제를 골랐다.


글쓰기 살롱 소개 페이지


사실 첫 번째 주제 정하는 게 가장 고민된다. 쓰기 쉬운 가벼운 주제보다는 조금은 어려운 주제,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주제를 고르려 했다. 글쓰기 살롱이 아니라면, 함께 글쓰기가 아니라면 굳이 쓸 것 같지 않은 주제. 게다가 첫 번째 과제는 웬만하면 다 하기 때문에 ㅎㅎㅎ 이렇게라도 동기 부여를 하려 했다. 너무 짓궂나.


시즌2 ‘자꾸만 미련이 남는 일’도, 시즌3 ‘질투’도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였지만 첫 번째 주제에서 마음껏 솔직해지고 나면 두 번째, 세 번째 주제로 넘어가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참가자들 사이 내적 친밀감이 높아지고 경계가 조금은 허물어진다. 이번 시즌에도 글쓰기 주제가 참 좋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는데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도 각자의 삶의 결에 따라 어찌나 다채로운 글이 나오는지. 덕분에 나도 각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꾸만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낭독과 피드백


지난 글쓰기 살롱에서는 이미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거나 책을 출간한 분, 다른 글쓰기 수업을 들어본 분 등 공적 글쓰기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이 많았다면 이번 시즌에는 공적인 글쓰기에 막연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품고 온 분들이 많았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지만 막상 쓰는 게 어려운 분들(물론 쓰는 건 늘 어렵지만 ㅎㅎㅎ)


글쓰기 살롱은 3회 줌 클래스+슬랙 소통으로 구성된다. 줌 수업에서는 초반에 내가 글쓰기에 대한 짧은 강연을 하고, 남은 시간은 서로의 글을 돌아가면서 읽고 피드백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낭독! 줌 공유 화면에 초고를 띄워 놓으면 글쓴이가 자신이 쓴 글을 직접 읽는데 처음 해본 분들은 많이 놀란다(한 참가자가 ‘수치ful’하다고 표현했던 순간 ㅎㅎㅎ) 자신의 글을 공개하는 것도 민망하고 피드백을 받게 되는 것도 민망한데 심지어 읽으라니 ㅠㅠ


공적 글쓰기는 ‘나'에게서 시작되지만 ‘나'에게만 머무르지 않는 글쓰기다. 나의 우물에 홀로 침잠해 있는 게 아니라 우물에서 빠져나와서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낯설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 내 글을 읽게 될 독자를 상상하고 설득하려 노력하는 일. 낭독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혼자 속으로 읽는 것과 남들 앞에서 그것도 소리 내서 읽는 건 전혀 다르다. “이렇게 읽다 보니까 제 글이 어떤지 알 것 같아요"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이것도 신기한 게 한 번 해보고 나면 두 번째, 세 번째는 훨씬 더 수월해진다. 바닷속에 가슴까지만 딱 담그고 나면 그다음 바다에서 노는 건 훨씬 쉬워지는 것처럼, 물속에 일단 들어가면 춥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다음에 들어가는 건 또 어렵고 긴장되지만 이전만큼 걱정되지는 않는다.


낭독 다음에는 내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이 글을 썼는지 글쓴이에게 묻고 다른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읽었는지 피드백을 듣는다. 피드백은 쉽지 않다.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얼굴에 빨개지는 시간. 왠지 좋은 이야기만 해줘야 할 것 같고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되기도 한다.


글쓰기 살롱 강의 자료


그래서 이번에는 어떻게 읽었는지와 함께 글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궁금한 점을 이야기하다 보면


1) 글쓴이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읽는 이는 이해하지 못한 것

2) 글쓴이조차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


을 알게 된다. 참가자들은 말했다. 내 안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이야기는 글에서도 다 드러난다고. 그렇다고 꼭 결론을 내야 하는 건 아니다. 피드백을 들으면서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정리하지 못했던 지점을 다시 고민해 보고 퇴고하면 된다. 지금 도저히 정리하기 어렵다면 다음에 해도 된다. 중요한 건 생각의 줄기를 놓지 않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말했다. 글을 공유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 글을 다 쓰고도 공유 버튼을 못 눌렀다고. 그런데 안전한 공간에서 글을 쓰고 피드백을 듣다 보니 글을 공유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사실 피드백을  때마다 나도 긴장된다. 10 넘게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내게 피드백은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이었다. 언론사에서 일할  선배들은 말했다.  썼네. 고생했어.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데다음이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살롱 피드백을 할 때는 ‘그런데’ 앞부분을 잘 찾아내려 노력한다. 글쓰기는 얼굴과도 같아서 똑같은 글은 하나도 없다. 글을 오랫동안 썼건 그렇지 않건 각자의 글쓰기가 갖고 있는 개성과 미덕이 있다. 묘사가 탁월한 글, 감정의 결을 잘 포착하는 글, 읽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글, 은근한 위트가 돋보이는 글. 글쓰기에 정답은 없고 우리는 이전보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초고를 쓰고 피드백을 하고 퇴고를 하는 거니까.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정성껏 피드백을 고민한다.



다들 이렇게 들어주시잖아요


글쓰기 살롱 강의 자료


시즌2, 시즌3를 함께 한 참가자는 말했다. 누군가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데 글쓰기만 한 게 없는 것 같다고. 고작 세 편의 글을 함께 쓰고 읽었을 뿐인데 서로의 정수를 엿본다.


“세 번의 글쓰기 기간 동안 작가가 된 듯한 기분에 너무 즐거웠습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주고, 들어주는 '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감사했습니다!” -용인님

“첫 번째, 두 번째 글쓰기에서는 내 안의 복잡했던 것들을 정리해서 떠나보냈다면 세 번째 글쓰기를 시작으로 써보고 싶은 글이 생겼어요. 종착점이자 새로운 시작점이 된 것 같아요.” -리사님

“글을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이해받았으면 하는 게 뭔지, 얘기 못 했던 게 뭔지. 잊고 있던 게 계속 나왔어요. 그 과정을 겪는 게 새로웠어요.” -지원님

“시즌1이랑 비교하면 제 글이 정말 달라진 것 같아요. 그전에는 제가 쓴 글을 제가 보기 싫어서 쓰고 나면 다시 안 봤는데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시니까 더욱 신경 쓰게 되고 글이 많이 나아졌어요.” -은진님

“글쓰기의 시작이 글쓰기 살롱이었어요. 마음을 풀어서 쓰는 법을 여기서 처음 배웠고 현진님 질문을 통해서 생각이 확장됐어요. 가장 좋은 건 이렇게 다들 들어주시잖아요. 그래서 쓸 수 있는 것 같아요.”-혜진님


글쓰기 살롱에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그저 흘려보는 게 아니라 아프고 괴로워도 용감하게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가 있다. 초고보다 나아진 퇴고 글, 첫 번째 글보다 조금은 더 나아진 두 번째, 세 번째 글을 쓰는 우리가.


다음 글쓰기 살롱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형식과 방식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처음 수강하는 분과 재수강하는 분을 나눠야 할까
-글쓰기 초심자 반을 따로 만들어서 처음 글을 쓰는 분들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도록 할까
-매일 조금씩 글감을 모으고 완성하는 연습을 함께 할까
-3회가 아니라 6회 정도 수업으로 만들까(글쓰기 학교처럼 학기제로 운영하자는 피드백도 있었다 ㅎㅎㅎ)
-인터뷰 글쓰기, 영화 리뷰/ 책 리뷰/ 커리어 정리 등 카테고리를 세분화할까.


공적 글쓰기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분들에게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공적 글쓰기를 어느 정도 해본 분들에게는 꾸준히 글 쓸 수 있는 동력을 글쓰기 살롱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수업을 진행했다.


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나아지면 되니까. 모두 감사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 경험 기록은 왜 힘들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