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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Dec 23. 2021

여자들은 투표권 없는 것처럼 왜 이래

여성은 사라지고 '브로치'만 남은 대선 

코로나19에 확진됐던 친구를 만났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인 친구는 온 가족이 확진돼 2주 자택 격리를 했다. 그러다 얼마 전 첫째 아이 반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또 격리를 했다고. 위드 코로나 이후 확진자 수가 하루 8000명대까지 올라가면서 내일 당장 코로나에 걸려도 놀랍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아이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코로나 검사를 받는 건 흔한 일이 되었다. 아이 혼자 있을 수 없으니 자가 격리를 해야 하면 아이와 엄마가 세트로 집에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 


벌써 코로나 팬데믹 2년이다. 코로나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는 여성, 코로나 때문에 이미 일을 그만둔 여성,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해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여성, 끝이 안 보이는 가정 보육과 돌봄 부담 때문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여성... 더불어민주당이 '1호 인재 영입' 인사로 '82년생 워킹맘'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를 영입했을 때만 해도 조 교수가 기혼 유자녀 여성의 삶이 조금은 달라지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순진한 기대를 했다. 적어도 1호라면 그 정도 상징성은 갖고 영입하지 않았을까.



99%의 다름을 무시할 수 있는 민주주의라니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조동연, 송영길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인선발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기대는 바로 깨졌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때문에 궁금하지도 않았던 조 교수의 사생활을 전 국민이 낱낱이 알게 되는 과정에서 정작 충격이었던 건 민주당의 대응 방식이었다. 조 교수의 사생활이 공적 검증의 대상이냐 아니냐를 차치하더라도 1호로 내세울 인재를 영입하면서 사생활을 사전에 제대로 검증하지도, 조 교수와 자녀들의 신상이 무차별적으로 털리는 것을 제대로 막지도 못했다. 


결국 조 교수에게 어떤 전문성이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볼 겨를도 없이 조 교수는 만신창이가 되어 공동선대위원장직을 사임했다. 30대 엘리트 여성이라는 상징성을 그저 "예쁜 브로치"(김병준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 발언)로만 활용한 건 민주당이었다. 


여성을 '브로치'로 소비하는 정치는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일, 국민의힘은 '90년대생 페미니스트'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윤석열 대선 후보의 직속 기구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신 부위원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제 가장 큰 목표는 정권 교체를 이루어내고 그것을 통해서 그동안 성폭력과 성차별과 2차 가해로 피해 입었던 피해자들이 더 이상 숨죽이고 살지 않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윤 후보가 '여성 안전만큼은 내가 보장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가 지금까지 내놓고 있는 여성 정책을 보면 과연 여성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지난해 여야 합의로 통과된 'n번방 방지법' 재개정 추진은 물론이고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여성가족부 폐지'까지. 모두 신 부위원장도 비판했던 윤 후보의 정책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지켜볼 수 없었다"는 신 부위원장은 "윤 후보가 99%가 달라도 1%가 같으면 함께 할 수 있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내가 알고 있는 페미니즘은 1%의 아주 작은 차이도 존중하는 사상이다.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상 말이다. 99%의 다름을 무시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라니, 새로운 해석이다.



2030 여성의 삶은 한가하지 않다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직속 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회 김한길 위원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위원장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 네트워크 대표를 소개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석열 대선후보. ⓒ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은 신지예 부위원장 영입으로 이른바 '이대녀'의 표심을 잡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보건복지부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 시도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온 전체 자살 시도자 5명 중 1명이 20대 여성이었다. 전년 대비 33.5%가 늘어난 수치로, 전 성별과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가파른 증가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코로나19 1년 여성노동자 일자리 변동 현황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20대 여성 3명 중 1명이 퇴직을 경험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임시·일용직 여성 노동자일수록 코로나의 타격은 더 컸다.


일자리 상황은 팍팍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불법 촬영과 성폭력은 일어나고 있다. 정치권에서 표심으로만 생각하는 2030 여성의 삶은 어느 때보다 위태롭고 절박하다. 여성의 삶은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이다.


인재 영입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래서 인재 영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눈에 보여야 한다. 이번 인재 영입을 통해 국민의힘 여성 정책이 과연 변할까? 안타깝지만 그럴 일도 없을 것 같다. 떠들썩한 여성 인재 영입이 또 하나의 쇼로밖에 안 보이는 이유다. 쇼에 속을 정도로 2030 여성은 한가하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이 전면에 많이 등장하는 대선이다. 연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아내 김건희씨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여전히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쥴리'라는 이름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형수', '여배우', '혜경궁 김씨'까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도 뒤지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여성이 호명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지금이 과연 2021년이 맞는지 달력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은 사라지고 객체이자 가십으로 소비되는 여성만 남았다. 혹시 이번 대선에 여성도 투표권이 있다는 걸 잊어버린 걸까. 여성은 붙였다 떼어버려도 괜찮은 브로치가 아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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