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Jan 05. 2022

살던 대로 살고 싶지 않아서

멈추기로 선택했습니다

캠핑에서 가장 좋은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모닥불 피워 놓고 불멍 때릴 때도 아니고, 캠핑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맥주 마실 때도 아니고, 이슬이 맺혀 있는 텐트 문을 열고 나와 새벽하늘을 바라볼 때도 아니다.


내가 캠핑에서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하루 세 번 설거지를 할 때다. 설거지 마친 그릇을 캠핑용 건조망 칸칸이 넣어놓고 햇살이 스탠 그릇 위로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캠핑에서는 식기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바로바로 설거지를 해줘야 한다. 특히 여름에는 조금만 방치해 뒀다가는 금세 벌레가 꼬이고 냄새가 난다. 캠핑장에서 요리는 남편 담당, 나는 설거지 담당이다. 밥을 먹고 나면 나는 그릇을 챙겨 들고 개수대로 향한다. 그릇 하나하나 뽀득뽀득 정성껏 닦는다. 유튜브도 없고 인스타도 없이. 설거지에만 집중한다.


캠핑을 가면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게 된다. 하다 못해 화장실 갈 때도 5분은 걸어가야 한다. 텐트 안도 역시 공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치우고 정리하고를 반복한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스위치


물론 불멍도 좋지만 @홍밀밀


일상은 캠핑과 달랐다. 창업한 지 1년, 밀린 설거지를 잔뜩 쌓아놓은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줌 가상 화면으로 가려 놓은 책상 의자 뒤에는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나중에는 뭐가 입은 옷이고 뭐가 빤 옷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 됐다. 주방에 가면 설거지가 쌓여 있고 미처 못 버린 쓰레기에서는 냄새가 났다.


집안일만 미룬 건 아니다. 일 이외의 것들은 다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꾸밈 노동은 진작에 접었고 운동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을 때만 응급처치처럼 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으면 밥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았다. 이것만, 이것만 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되어 있었다. 냉장고 가득 반찬이 있는데도 당장 먹기 편한 라면과 냉동 만두에 제일 먼저 손이 갔다.


하루 한 번, 아이 어린이집 하원할 때 빼고는 집 밖에 안 나가니 돈 쓸 일이 없었다. 물욕이 사라지니 쇼핑도 귀찮았다. 주변 사람들과 밥 먹을 시간, 커피 마실 시간도 내기 어려웠다. 저녁 시간 아이와 함께 있어도 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남편은 말했다. 너는 너한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스위치를 아예 꺼버리는  같다고. 스위치는 일에만 켜졌다.  일이 쌓여 있었고, 없으면 만들었다. 일은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육아휴직 복직 이후 4년간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없이 병행했다. 매체를 창간하고 책을 만들고 서비스를 론칭하고 커뮤니티를 창업했다. 남들이  하는 부동산? 주식?  시간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공적 글쓰기는 어쩔  없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다른 일이 되었다. 내게는 취미도 일이었다.



연료


지난여름, 남편과 제주도 붉은오름 캠핑장에서 대판 싸웠다. 남편이 구워 놓은 하나로마트 냉동 삼겹살과 고추장찌개를 눈앞에 두고는 입에도 안 댔다. 남편과 공기도 섞고 싶지 않은데 나는 운전을 못 했다. 운전면허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해도 뭘 어떻게 만들어 먹어야 할지 몰랐다. 음식을 못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주린 배를 움켜 잡고 텐트 안에 쭈그리고 누워 자는데 눈물이 흘렀다.


“나 진짜 뭐 하고 산 거지?”



꽤 공들여 준비했던 발표를 시원하게 망친 날이라 더 속상했다. 일에서 생각한 만큼 성취가 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싫었다.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타인의 반응을 살폈고 인정을 갈구했다. 당연하게도 일에는 굴곡이 있었다. 늘 잘할 수도 없고 늘 인정받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인정 욕구는 좀처럼 만족을 몰랐다. 피드백은 아무리 들어도 목말랐다. 그다음 성취, 그다음 인정을 향해 자꾸만 달렸다. 일을 멈추면 내 삶도 멈추게 될 것 같았다. 남들은 어떻게 애 키우면서 그렇게 많은 벌이냐고 신기했지만 엄마였기에 더 절박했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될까 두려웠다. 계속 기회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도무지 충분함이 없는 일에 매달리는 동안 일을 뺀 삶은 휘청대고 있었다. 내 얼굴을 찍은 사진을 볼 때면 스스로 깜짝 놀랐다. 한 달에 한 번 미용실 가는 것도 시간이 아까워서 질끈 묶은 머리. 얼굴에는 푸석푸석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분명 환하게 웃고 있는데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눌 때면 눈이 뻑뻑하고 피곤했다. 도무지 집중이 잘 안 됐다. 혹시 상대방도 내 눈빛을 알아채지 않았을까 조바심 났다.


창고살롱 레퍼런서 살롱에서 ‘번아웃 관통기’를 발표했을 때 한 레퍼런서 멤버가 그런 말을 했다. 내게 연료가 없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줄 연료도 없어진다고. 정말로 내가 그랬다. 끊임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기는 한데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심지어 내게 줄 연료도 없었다. 멈추고 싶었다. 멈춰야 했다. 살기 위해서.



포기의 때


우선순위를 세워놓고 효율성을 따져가면서 일했다. 회의 시간 아젠다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건 질색이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해야 할 것을 정해놓고 최대한 완벽하고 꼼꼼하게. 그게 일을 잘 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떤 날은 주간 회의에서 “주말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 동료의 질문이 그렇게 짜증날 수 없었다. 일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물어보는 거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도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기면 아이가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엄마 좀 그만 불러, 제발.


우선순위와 효율성, 완벽함에 집착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친 걸까. 그러고 보니 캠핑도 남편이 아니었다면 내 우선순위에 없었을 일이다. 평소에는 그저 해치워야 하는 일이었던 설거지의 즐거움도 평생 몰랐겠지.


‘살던 대로 살고 싶지 않다.’


세 번째 퇴사를 선택하고 모든 일을 멈춰가기로 하면서 마음속에 계속 맴돌던 문장이다.


지금 나는


-이러다 배고파 죽겠다 싶을 때 후다닥 흡입하는 밥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을 들인 밥을 차려 먹고 싶다.

-이러다 아파 죽겠다 싶을 때 급하게 하는 생존 운동이 아니라 운동의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하며 몸을 움직이고 싶다.

-두껍고 지루한 책을 충분히 곱씹으며 읽고 싶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와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오래오래 이야기하고 싶다

-머리보다는 몸을 많이 움직이는 취미를 만들어보고 싶고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 꼭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찾아서 해보고 싶다.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을 뺀 채 애쓰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살고 싶다.


멈춤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영감을 줬던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왜 이런 아픔을 감수하며 포기해야 할까? 바로 이 질문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포기의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충분히 좋았던 것들을 놓아야만 하는 때가 온다. 정확히 그때가 언제인지는 각자가 결정해야 한다. 다만 ‘내가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가?’라고 자문을 해보아도 도무지 떠오르는 답이 없다면 그때가 의심하기에 좋은 때다. 그 의심이 나를 찾아온 순간 회피하지 않는 것, 나에게 태연하고 냉정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 그 정도만으로 충분하다. 질문은 단순할수록 좋다.”


나는 ‘포기의 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처음으로 포기가 두렵지 않아졌다.


나만의 2022년 시무식. 안산 자락길에서 @홍밀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