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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Feb 07. 2022

서른아홉, 안식년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매주 토요일 오전, 번역 수업을 들으러 신촌에 간다. 14년 전, 같은 건물에서 기자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듣는다는 기자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매주 강의실에 모여 현직 기자인 강사가 내주는 주제에 맞춰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갔다. 소위 언론고시라 불리는 전형에 필요한 글쓰기 시험 연습이었다. 


제한 시간이 끝나면 강사는 각 수강생이 쓴 글을 모두 복사해 나눠줬고 그 자리에서 글을 평가했다. 어떤 글은 질투 나게 눈부셨고, 어떤 글에서는 우월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내 글 차례가 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신랄한 평가가 두려워 수업을 몇 번 빼먹기도 했다.  


그 후 나는 기자가 되었다. 이직을 했고 창업을 했고 공동 창업한 회사에서 퇴사했다.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었다. 이렇게 계속 사는 건 분명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어떻게 살지는 몰랐다. 일단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14년 만에 나는 다시 이 건물에 와 있다. “엄마 공부하고 올게.” 전날도 야근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오며 미안한 마음 반, 홀가분한 마음 반으로 전철에 오른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수업 첫 시간, 현재 직업을 묻는 설문지에 백수라고 쓸까 하다 프리랜서라고 썼다가 프리랜서 에디터라고 써낸다. 어쨌든 글을 쓰고 있고 작고 귀여운 원고료도 나오니 아주 거짓은 아니지만 괜스레 민망하다. 여전히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픈 마음이 내게는 남아 있다. 


20년 가까이 번역 일을 하고 있다는 강사는 열악한 업계 현실을 말해준다. 돈 벌려고 생각하면 못 하는 일이라고. 지겨운 기시감을 느낀다. 처음 언론사 들어갈 때부터 들었던 말. 


돈 벌려고 생각하면 못 하는 일.
콘텐츠로는 돈 못 벌어.
글은 돈 안 돼. 


왜 나는 계속 ‘돈은 안 되지만 의미 있는 일’, ‘돈은 안 되지만 하고 싶은 일’ 주변을 맴도는 걸까.


번역가가 되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이곳까지 온 건 아니다. 번역은 언젠가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대학원 진학과 함께 늘 버킷리스트 한편에 있던, 하지만 우선순위에는 없었던 일. '쉬는 동안 공부나 해볼까,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과제가 꽤 많다. 백수라 시간이 많아 천만다행이다.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솔직히 수업을 듣기 전에는 결국 글 다루는 일이니 잘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함이 있었다. 예상과 달리 번역은 결코 쉽지 않다. 수업 시간 모든 수강생들의 과제를 함께 보면서 잘못 번역한 문장, 잘 번역한 문장을 살펴본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1:1로 첨삭해준 종이를 받아 든다. 이번에는 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역한 부분, 미처 고민 못했던 부분, 다시 보니 어색한 한국어 문장까지. 온통 빨간색이다. 14년 전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왜 이것밖에 못했지 답답하다. 더 잘해야지 오기도 생긴다. 


첨삭지를 손에 들고 내 나이를 떠올린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지금까지 쌓아온 전문성을 살려 커리어를 이어가도 모자랄 판에 전혀 새로운 일을 시험 삼아 해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그것보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이렇게 쉬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내 고개를 젓는다.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자고.



처음의 초라함


얼마 전 지인들과 모임이 있었다.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예전부터 듣고 싶었던 번역 수업을 듣고 있다고, 그런데 영 잘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말했더니 지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영어 원문을 한국어로 정교하게 옮기는 일과 지금까지 내가 해온 공적 글쓰기는 분명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러게. 처음 해보는 일을 잘 못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데 나는 왜 섣불리 낙담하고 있을까. 


3년 전, 소셜벤처에 처음 이직했을 때도 비슷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며 꽤 헤맸다. 생각했던 것만큼 결과물이 안 나왔다. 수습 기자 시절 이후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이러다 커리어가 완전히 꼬여버리는 것 아닐까 절망했다. 우습지만 그때도 지금과 똑같이 ‘내가 이 나이에’라는 생각을 했다. 젊은 꼰대가 바로 나였다. 


그때는 몰랐다. 아무리 나이가 쌓이고 연차가 쌓여도 일터를 옮기는 건 적응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에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헤맨다는 걸. 


서른아홉의 나는 알고 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무슨 일이든 나중에는 익숙해진다는 걸. 탁월하게까지는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웬만큼은 하게 된다는 걸. 관건은 처음의 초라함을 견딜 용기가 있느냐다. 


이 시간의 결과가 번역가가 되는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어쨌든 매일 과제를 하다 보면 영어는 조금이라도 잘하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오십쯤 됐을 때 '그때 한번 해볼 걸' 후회할 일 하나는 줄어들겠지.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습관처럼 조급하고 불안해질 때면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다음 주부터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배우기로 했다. 어설프고 허둥대도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근육을 써보고 싶다. 우선순위 저기 아래 미뤄둔 일을 하나하나 해보면서.  


다행히 그동안 돈 쓰는 것도 우선순위에 없었던 덕분에 3년 전 받은 첫 퇴직금이 고스란히 통장에 있다. 배우고 싶었던 것 다 배우며 사교육 부자가 될 테다.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렸던 스물다섯의 나는 꿈에도 몰랐을 거다. 내가 이렇게 대책 없는 서른아홉을 보내고 있을 줄. 그래도 괜찮다. 올해는 스스로에게 선물한 안식의 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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