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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r 29. 2022

장기하 덕분에 깨달은 퇴사의 의미

붕 떠 있는 느낌에 대해

성장지향형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했다. 그다음,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졌다는 감각. 첫 번째, 두 번째 퇴사를 할 때는 그다음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다. 세 번째 퇴사는 달랐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아니 일 자체가 하기 싫었다.


12년 전 처음 직업의 세계로 뛰어든 후, 특정한 업무가 하기 싫었던 적은 있지만 일이 하기 싫은 적은 없었다. 일하는 내가 좋았다.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성장하고 싶었다.


안식년을 결심하면서 나조차 의심스러웠다. 내가 과연 일을 쉴 수 있을까? 길어야 두 달? 두 달은 쉴 수 있을까? 일을 하지 않는 나를 견딜 수 있을까?


세 번째 회사를 그만둘 때쯤, 외주 미팅을 한 적 있다. 쉬면 불안한 내 성격을 알기에 퇴사 후 적당히 완충 지대를 만들어 놓자는 생각이었다.


참 이상한 날이었다. 열정 넘치는 브리핑과 업무 제안을 듣고 있는데 예전 같았으면 맞장구치며 이것도 해보면 어때요? 저것도 해보면 어때요? 스파크가 파바박 튀었을 텐데 오히려 이야기를 들을수록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흥미로운 일이고, 내가 너무나 잘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한데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어떻게 일하게 될지 눈에 훤히 그려졌다. 분명 일을 시작한다면 책임감으로 열심히 할 것이다, 잘하려 할 것이다,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쉬는 건 또다시 물 건너갈 게 뻔했다. 결국 또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소진됐다는 걸. 그날 상대방이 보여준 열정과 진심을 생각해도 일을 수락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 제안이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좀 더 쉬어가야 할 때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런 내가 나도 처음이라


지금까지는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고 제안을 해주면 앞뒤 안 가리고 잡았다.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뻤고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상대방의 인정에서 효능감을 찾았다.


물론 기회를 잡는 건 중요하다. 그 기회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으로 덥석 잡은 기회는 종종 화가 되어 돌아왔다. 수많은 삽질과 이불킥을 겪으며 알게 됐다. 기회는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 나를 지킬 수 있는 만큼 잡아야 한다는 걸. 때로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는 걸. 지금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는 쉬어가야 할 기회였다.


2개월은 쉴 수 있을까 했는데 벌써 3월 말이 되었다. 그새 벼르고 벼르던 운전면허를 땄고,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매주 토요일마다 번역 수업을 듣고 있다. 번역 수업은 3개월 과정이 이제 곧 끝난다.


번역 수업 마무리를 앞두고 한동안 또 고민이 많았다. 이 분야를 좀 더 진지하게 파고들어 ‘일’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던 콘텐츠 기획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아예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 할수록 확실해지는 게 있었다. 여전히 나는 별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다시 도전하고 뭔가 만들어 내고 사람들과 합을 맞추는 일이 아직은 엄두가 안 난다. 이런 내가 처음이라 나도 낯설다.



공중부양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에 ‘오당기(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라는 코너가 있다. 빠더너스의 마스코트 문상훈이 배달 음식을 기다리면서 혼자 혹은 게스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인데 뮤지션 장기하가 나오는 편이 참 좋았다. 문상훈과 장기하는 나란히 앉아 배달 삼겹을 기다리며 애정과 존중이 뚝뚝 묻어나는 담백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문상훈이 장기하에게 이번에 장기하가 낸 앨범인 ‘공중부양’의 제목에 대해 묻는다. 장기하는 10년 동안 활동해온 ‘장기하와 얼굴들’ 해체 이후 4년 만에 솔로 앨범을 냈다. 공중부양의 소개 글은 이렇다.  


‘다 만들어놓고 보니 대체로 뭔가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일단 가사가 그랬다. 뭘 잘못한 건지 모르고, 얼마나 갈지 모르고, 부러움을 모르고, 가만 있으면 그만이고, 결국 다 떠나보낸 사람의 이야기.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뜬 삶.’ 


문상훈이 장기하에게 ‘붕 떠 있는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자, 장기하는 아무래도 밴드를 그만두고 3년 정도 지냈던 게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장기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은 10년을 했지만 그전에 다른 밴드 활동까지 합치면 2002년부터 20년 가까이 밴드 음악을 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락밴드라는 형태를 종교같이 숭상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익숙하고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하면 밴드 음악이지만 그게 우월하다고까지 얘기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닌 생각의 변화일 수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인생에) 두 번의 큰 변곡점이 있는데 교회를 그만둔 것과 밴드를 그만둔 것이에요. 믿던 게 없으니까 사람이 붕 뜨는 거죠. 어딜 가나 엉거주춤하고.”


장기하의 말을 들으며, 지금 나도 붕 떠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일을 종교처럼 숭상했다. 일이 곧 나였고, 일을 통해서만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이은 번아웃을 겪으며 이제는 일이 곧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는 알겠다. 그런데 그다음을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조직에 들어가야 할지, 프리랜서로 일을 해야 할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려는 생각은 그만둬야 할지,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지. 쳇바퀴처럼 질문이 돌고 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지럽거나 불안하냐고 묻는다면, 놀랍게도 이 붕 뜬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다. 방향이 명확했을 때는 '이거 아니면 안 돼' 주먹을 꼭 쥐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면, 길을 잃은 지금은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떠서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가만히 지켜보는 느낌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심호흡을 하며.


붕 떠 있는 시간을 보낼수록 내가 이런 시간을 꽤 오래 기다렸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이 있어야 그다음, 그다음이 으리라는 것도. 성장지향형 인간의 희망회로랄까.


머릿속을 가득 메운 질문을 저만치 미뤄둔다. 당장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올 한 해는 안식년이니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코로나 격리 일주일째, 바깥에는 벌써 개나리가 폈단다. 4월부터는 신나게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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