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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pr 10. 2022

나는 평생 운전 못할 줄 알았다

긴장형 인간의 운전면허 도전기

타고나기를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목과 어깨가 자주 경직되고 시험만 앞두면 배가 아프고 잠을 설치는 사람. 네. 그게 바로 접니다.


“딱 보니까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시네.
편하게 해요. 편하게 해.”


1월부터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긴장 풀라고. 편하게 하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긴장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수록 긴장이 더 됐다. 핸들을 쥔 손에 땀이 바짝바짝 나고 목 어깨가 아팠다.


4시간 동안 장내 기능 교육을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 솔직히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 그냥 포기할까. 이 좁은 차 안에서 지적 좀 받았다고 이렇게 멘탈이 탈탈 털리는데 실제 도로에 나가면 무자비한 운전 꼰대가 얼마나 많겠는가.


얼마 전 운전면허를 딴 후배에게 카톡을 보냈다. 다른 사람 시선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인 후배는 단호하게 말했다.


“선배가 이상한 게 아니라 강사가 이상한 거예요. 선배, 운전할 때는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면 안 돼요. 다 남 탓이에요.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자꾸 잘못한 거 복기하면 더 위험해요. 에잇 하고 가야 해요.”


참고로 나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 타고 가면서 누가 뒤에서 빵빵 대는 소리만 들려도 “우리한테 저러는 거야?”“우리 뭐 잘못했어?” 묻는 사람이다. 역시 운전은 나랑 안 맞는 걸까. 다시 수업 들을 생각만 해도 위장이 꼬이는 것 같았다.



긴장형 인간에게 필요한 것


이럴 땐 미루는 게 상책이다. 2월로 예정돼 있던 다음 수업 일정을 3월로 미뤘다. 장내 기능 교육 2시간을 추가로 더 듣고 시험을 쳐야 했다. 3월이 다가올수록 수업을 또 미루고 싶어졌다.


그때 한 지인이 말했다. 자동차라는 거대한 철 덩어리를 움직인다는 게 생각보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무엇보다 어디로든 내가 원할 때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정말 크다고. 지인은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고 바다가 너무 보고 싶었던 날, 장롱면허에서 탈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단다. 두 아이만 데리고 캠핑을 떠나는 지인의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떠올렸다. 이동권을 확보한 자의 자유.


떠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나의 자유는 분명 늘어날 것이다. 운전 강사든 도로에서 마주칠 다른 운전자든 어차피 그저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나의 이동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긴장형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연습과 시뮬레이션이다.   만에 기능 교육을 받으러 가기 , 남편과 함께 차도 사람도 없는 공터를 거북이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좌회전, 우회전 감각을 익혔다.


그제야 강사가 왜 좌회전, 우회전은 ‘감'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좀 더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면 물론 좋았겠지만 운전강사도 고충이 있겠다 싶었다. 홍시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얘기했을 뿐인 그런 느낌 아니었을까.


집에 와서 유튜브로 기능시험 코스를 보고 또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 유연성과 순발력이 떨어지는 긴장형 인간은 빈틈없이 100% 머릿속을 가득 채워 놓으면 변수에 취약해질 수 있다. 시나리오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어버버 하다 와르르 무너졌던 경험이 얼마나 많았던가. 열심히 하되 너무 열심히 하지 않고 10% 정도의 틈을 남겨두었다. 학원에서 추가로 2시간 더 교육을 받고 100점으로 기능 시험을 통과했다.


이제 실제로 도로로 나가는 도로 주행 시험이 남았다. 첫째 날 4시간 교육, 둘째 날은 2시간 교육을 받고 바로 시험을 치는 일정이다.



이번에는 잘 될 것만 같았다


다리가 후덜덜 @pexels


첫 수업 시간,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내가 차를 끌고 나간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굳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내가 굳이 집에서 아침 7시에 셔틀버스를 타고 경기도까지 온 이유가 있었다. 서울에 비해 도로 주행 코스가 훨씬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도로 주행 시험은 A~D 4개 코스 중 한 코스를 랜덤으로 추첨해 치게 된다. 어떤 코스가 나올지 모르니 당연히 4개 코스를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강사와 함께 연습해 보니 C코스가 가장 어려웠다. 제발 C코스만 나오지 말라고 기도하며 둘째 날 교육을 들으러 갔다.


도로 주행 시험 당일, 2시간 동안 교육을 듣고 시험을 쳐야 하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기능 교육 첫날 운전을 포기할까 고민하게 만들었던 강사가 담당 강사로 다시 배정된 것이다. 열 명도 넘는 강사가 있었는데. 하필.


강사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때부터 뭔가 망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기능 교육 때 그렇게 빌빌거렸지만 지금은 이렇게 일취월장했다고 보여주고 싶은 오기도 생겼다. 다행히 강사는 연습한 대로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긴장만 하지 말라고. 왠지 이번에는 잘 될 것만 같았다.


2시간 교육을 마치고 곧장 시험을 쳤다. 도로 주행 시험은 나, 감독관 그리고 또 다른 응시생까지 총 3명이 차에 탄 채 진행된다. A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B코스가 시작되고, C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D코스가 끝나도록 설계돼 있어서 먼저 시험을 치는 사람이 A 또는 C코스가 나오면 그다음 시험을 치는 사람은 자연스레 B 또는 D코스를 치게 된다.


내 이름이 먼저 호명됐고 운명의 장난인지 C코스가 당첨됐다. 헛웃음이 나왔다. 심호흡을 해봤지만 시작부터 좌회전 깜빡이를 안 켜고 출발해 버렸다. 연습하면서 한 번도 안 했던 실수였는데. 이때부터 실수 연발이었다. 우회전하기 전에 시야 확인해야 하는데 안 하고, 좌회전 끝났는데 깜빡이 안 꺼서 감독관이 깜빡이 끄라고 말해주고. 감점 또 감점.


제일 하이라이트는 포켓 도로로 들어가서 고가도로 아래 코너를 크게 돌아 좌회전하는 구간에서 나왔다. 코너를 도는데 반대편에서 우회전 차량이 들어왔다. 당황한 나는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급정거를 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감독관이 '어어어' 하면서 내쪽으로 쓰러졌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나는 급히 사과했다. 아. 망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정신이 멀쩡하게 들면서 차분해졌다. 모범생 기질이 발동한 걸까. 어차피 떨어진 건 확실하고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하는 셈 치고 끝까지 해보자고.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감독관은 내가 처음부터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대선 다음 날인 사흘 뒤로 시험을 다시 잡았다.



안전하다는 감각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안전하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안전하다는 감각은 내가 이 상황을 충분히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운전을 하다 보면 수많은 변수를 만난다. 언제 신호가 걸릴지 모르고, 앞차 뒤차가 어떻게 움직일지, 도로 상황이 어떨지 모른다. 보행자가 빨간불에 갑자기 도로로 들어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변수를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기능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연습 면허를 받을 수 있고, 면허를 딴 지 2년 이상 된 동승자와 함께 도로 주행 연습을 할 수 있다. 투표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학원 앞으로 갔다. 3시간 동안 A코스부터 C코스까지 반복해서 돌고 또 돌았다. 가족한테 운전 배우는 건 아니라고 하던데 다행히 남편이 인내심 있게 잘 도와줬다.


드디어 재시험 치는 날. 엎치락뒤치락 개표 결과를 보느라 잠을 설치고 학원에 갔다. 1시간 정도 수업을 더 듣는데 어제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 또 긴장이 됐다. 새로운 운전 강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보세요. 본인이 생각해도 운전 잘하는 것 같지 않아요? 자신감을 가져요. 긴장하면 실력보다 더 못 하게 되니까 아쉽잖아요. 긴장이 올라올 때도 있고 내려올 때도 있잖아요. 긴장이 올라올 때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낮추는 연습을 해요. 지금 하는 대로만 하면 합격이에요.”


또다시 운명처럼 C코스가 나왔다. ‘이미 나는 충분하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된다. 떨어지면 또 치면 되지 뭐’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운전할 수 있었다. 합격이었다.


평생 운전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기계치에 방향치에 소심하고 긴장도 많이 하고. 나 같은 사람은 운전 못할 거라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운전하는 사람이 많은데. 운전이 별거냐는 모순적인 마음도 있었다.


출산 후 세상 모든 엄마가 다르게 보였던 것처럼, 운전대를 잡기 시작하니 운전하는 사람들이 새삼 다들 대단하게 느껴졌다. 학원에서 몇 번이나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고 떨어지기도 하며 면허를 따고 연수를 받고 도로에 나가 덜덜 떨며 운전을 익히고 몇 번씩 다른 차를 박기도 하고. 이 모든 과정을, 이 사람들은 다 겪은 거구나.


면허를 딴 후 연수를 받으면서도 내가 과연 운전을 능숙하게 하게 되는 날이 올까 의심스럽다. 차선을 변경할 때면 너무 긴장해서 손가락이 아프다. 뒤에서 빵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주차하다 이미 대리석도 한 번 시원하게 박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보려 한다. 얼마 전 연수 강사에게 들었던 말을 기억하며.


“초보니까 긴장하는 건 당연해요. 힘은 나중에 운전 잘하면 자연스럽게 빠져요.
그냥 매일매일 연습해요. 운전은 하면서 느는 거예요."



덧)지난번 운전면허 도전기에 독자 분들이 달아준 댓글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다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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