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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y 02. 2022

지금이 진짜 번아웃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결국은 사람

오랜만에 인터뷰 기사를 썼다. 평생학습계 소식을 전하는 <평생학습e음> 웹진 객원 에디터로 김월용 인천평생교육진흥원 원장을 인터뷰했다.


<평생학습e음> 웹진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전국시도평생교육진흥원협의회, 전국평생학습도시협의회 3개 기관이 함께 만드는 공동 웹진이다. 4월 말 웹진이 새롭게 리뉴얼되었고 나는 한 달에 한 편씩 원고를 쓰기로 했다.  


<평생학습e음>은 ‘사실은대단한사진관’을 운영하는 민정님이 올해 봄부터 외주로 PM 역할을 맡아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민정님을 다시 만난 건 3월 중순쯤. 그러니까 지난해 말 세 번째 퇴사를 하고 모든 일을 정리한 지 3개월 만이었다.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이제 시간 많으니 얼굴 실컷 봐요’라고는 했지만 사실 속마음은 누군가 만나는 게 두려웠다. 모든 게 지치고 버거웠다. 자꾸만 안으로 숨고 싶었다. 처음 몇 번 약속을 잡았다 속절없이 기가 빨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되도록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인스타그램도 아예 없앴다. 집순이처럼 집에 머물며 안으로 침잠했다. 코로나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조금씩 기운이 생기자 고마운 얼굴이 떠올랐다. 마더티브와 창고살롱을 만들고 운영할 때 힘이 되어준 사람들. 그중 한 명이 민정님이었다(지금 브런치 프로필 사진도 민정님이 찍어줬다).


민정님은 마더티브와 포포포 매거진이 함께 만든 인터뷰집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인터뷰이로 인연을 맺었다. 인터뷰이 모집 글을 올린 후 처음으로 이메일을 보내온 사람이 민정님이었다.


민정님을 생각하면 대범한 에너지가 떠오른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사진관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서 수많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민정님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주었다. 특히 번아웃을 겪은 후 좋아하는 일을 오래, 즐겁게 하기 위해서 끊어낼 것은 끊어내고 도움받을 것은 받으면서 자신만의 좌표를 그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창고살롱 시즌1을 론칭할 때 민정님에게 '번아웃 건너는 법’에 대해 들려달라고 요청했던 이유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에너지에 휩쓸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민정님은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 완급조절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근황을 나누다 민정님에게 사실 나는 아직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럽다고.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들고 그 잘하는 일로 돈까지 벌고 싶어서 창업을 했지만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이 많았다. 결국 공동창업한 회사를 떠났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과연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택하는 게 맞는지,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할지, 일이란 대체 무엇인지, 모든 것이 물음표였다. 뭐든 다시 해보고 싶다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맞나 싶어 불안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민정님은 말했다.


“어쩌면 지금이 진짜 번아웃일지도 몰라요.”


민정님의 말이 맞았다. 지난해 몸과 마음으로 겪어낸 번아웃이 태풍이었다면 지금 나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고 다음에는 한없이 억울했다. 다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습관처럼 또 마구 달리게 될까 두려웠다.


민정님은 새롭게 시작하게 된 웹진 이야기를 꺼냈다. 번아웃이 왔을 때 책 읽기와 글쓰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민정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속에서 나오는 걸 풀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실은 대단한 창작소'를 운영하며 다양한 강좌를 기획했다. 평생학습 배움터를 운영한 경험은 평생학습 웹진 제작으로 이어졌다. 민정님은 내게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두 달에 한 번 원고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부담되면 당연히 안 해도 괜찮다고.


처음에는 고민됐다. 안식년을 보내기로 했는데 조금씩이라도 일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왜 나는 아예 쉬지 못하는 걸까. 습관처럼 자기혐오가 꿈틀댈 때 이런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를 바꾸려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달래면서 가기로 했다. 아마 민정님은 이런 내 성향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먼저 손을 내밀어준 민정님이 고마웠다.


밑취재를 하고 질문을 고르고 현장에서 질문을 던지고 타이핑을 치고 녹취를 풀고 맥락과 주제에 맞게 내용을 정리하고 제목과 소제목을 고민하고. 오랜만에 인터뷰를 하면서 역시 나는 개인의 고유한 서사 속에서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탄광 광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살다가 56살 중졸 검정고시에 도전해 64살 박사학위 취득' 인터뷰를 하러가기 전, 대략적인 프로필을 보면서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 같다고 어느 정도 상을 그리고 가는데 모든 예상을 깨트린 인터뷰였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사실 제가 학위를 따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리 많지 않아요. 책에서 배운 것보다 더 도움이 된 건 삶에서 배운 것들이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제게 제일 먼저 가르쳐줬던 게 ‘이 나무는 베어도 되는 거야, 이 산나물은 캐서 먹어도 돼, 이 짐승은 독이 있어’ 같은 거였는데 이런 것들은 절대 잊히지 않더라고요. 제가 새롭게 만든 진흥원 비전이 ‘흥미롭게, 보람 있게, 가치있게’예요. 평생교육은 흥미로워야 한다, 보람 있어야 한다, 활용도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김월용 인천평생교육진흥원장


@평생학습e음

오랜만에 진행하는 인터뷰라 긴장됐는데 질문지를 만들고 현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 민정님이 큰 힘이 되었다. 민정님만의 따뜻한 시선이 묻어나는 사진 정말 좋다(내 뒷모습도 살짝 ㅎㅎㅎ).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팀원들이 정성스레 만든 다른 콘텐츠를 볼 수 있고, 평생학습e음웹진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한 달에 한 번 평생학습에 대한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다음에는 어떤 취재를 하게 될지 기대된다.



덧) '월간 책' 3월호에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소개 기사가 실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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