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May 12. 2022

인스타 글쓰기 덕분에 알게 된 것

기자 출신이 스타트업 콘텐츠 에디터가 됐을 때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일할 때였다. 잠들기 전 채널 블로그에 접속했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게시물 조회수가 너무 낮았다.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한 블로그니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뭔가 이상했다. 모든 게시물 조회수가 10이 채 안 됐다. 대부분의 조회수가 나와 팀원들에게서 나왔다고 가정하면 외부 유입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통계를 보니 검색을 통한 유입이 전혀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검색창에 블로그로 연결될만한 검색어를 모조리 쳐봤다. 아예 제목 그대로도 입력해봤다. 아무리 검색을 해도 우리 채널 블로그는 안 떴다. 블로그 매거진에 올릴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게 바로 내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아, 망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저품질 블로그'인가 싶었다. 파일럿 서비스 론칭을 앞두고 테스트하느라 콘텐츠를 여러 차례 수정했는데 AI가 이 작업을 어뷰징(동일한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전송해 클릭수를 늘리는 행위)으로 인식한 듯했다. 입사 후 몇 개월간 야심 차게 준비한 콘텐츠였는데, 팀원들과 함께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하고 속상했다.  


이직 전 언론사에서 일할 때도 당연히 조회수를 신경 썼다. 그것도 아주 많이. 퇴근 후에도 수시로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가 조회수를 살폈다. 하지만 내가 쓴 글 혹은 편집한 글을 누군가 아예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기본적으로 언론사 사이트에 들어오는 고정 독자들이 있었고, 포털사이트에도 기사가 전송됐다. SNS는 플랫폼에 있는 콘텐츠를 더 널리 퍼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신생 스타트업에게는 SNS가 곧 플랫폼이었다. 고객들에게 우리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SNS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밤새 ‘저품질 블로그 탈출법'을 검색했지만 이런 경우 딱히 해결책이 없다고 했다. 그저 꾸준히 콘텐츠를 올리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처음으로 플랫폼 없는 설움을 느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팀원들과 회의를 했다. 블로그는 재정비하기로 하고 대신 나는 마케터, 디자이너와 함께 인스타 콘텐츠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괴감이 들었다. 롱폼 콘텐츠만 만들어온 내게 인스타는 낯설고 이상한 세계였다. 인스타에는 손가락으로 그저 휙휙 넘겨도 그만인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만 가득하다고, 인스타에서 먹히는 인스턴트 콘텐츠와 내가 만들고 싶은 ‘고퀄리티’ 콘텐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욕심 많은 글쓰기


당시 나는 산후 운동 전문 앱 정식 론칭을 앞두고


-왜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산후 전문 운동’이 산후 여성들에게 필요한지

-유튜브에 있는 아무 운동 말고 우리 회사가 만드는 산후 운동은 어떻게 다른지


텍스트 콘텐츠를 통해 설득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설득해야 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입사해 산후 운동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저 아이를 품고 낳는 존재로만 인식되어온 여성의 몸, 나의 몸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출산을 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출산이 여성의 몸에 얼마나 엄청난 타격을 주는지, 출산 후 내 몸을 바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뒤늦게 알게 됐다.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이건 엄마들이 꼭 알아야 해’ 사명감이 샘솟았다.


욕심이 많으니 쓰고 싶은 것도 많았다. 특집 기사 쓰듯 너무 많은 정보를 하나의 콘텐츠에 담았다. ‘이 운동하면 통증 사라진다’, ‘이 운동하면 살 빠진다’ 식의 단편적인 콘텐츠가 아니라, 몸과 운동에 대한 맥락을 친절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자연스레 분량도 길어졌다.


언론사에서 취재, 편집기자로 일할 때는 ‘독자들이 이걸 알아야 한다’는 공급자 마인드가 강했다. A4 7장짜리 인터뷰를 쓰면서도 내용만 좋으면 독자들이 읽을 거라 믿었다. 내 눈에는 다 중요한 내용이었고 아무리 봐도 덜어낼 부분이 없었다. 스타트업에서 콘텐츠를 만들 때도 처음에는 비슷한 마음이었다. 우리 안에 이렇게 좋은 콘텐츠가 많은데, 이것도 알려주고 싶고 저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마음이 급했다.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정작 우리의 타깃 고객인 엄마들은 긴 글을 읽을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것. 파일럿 서비스 이후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이가 잠든 시간을 쪼개서 혹은 아이를 옆에 끼고 매일매일 운동을 했다는 엄마들을 만났다. 조금씩 꾸준히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일상에 활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오만한 마음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유용한 콘텐츠라 해도 독자가 소화할 수 없는 콘텐츠는 의미가 없다. 결국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이기 때문이다. 


고객 인터뷰 이후 컴퓨터 바탕화면에 메모지를 붙여뒀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글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글.’




고객이 소화할 수 있도록


인스타 콘텐츠를 만들면서 중점을 둔 것은 고객의 호흡이었다. 이전에 만들었던 콘텐츠가 20찬 반상을 차려 놓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어' 느낌이었다면, 인스타 콘텐츠는 고객이 딱 먹기 좋도록 한 입 크기 음식을 먹음직스럽게(영양소도 듬뿍!) 만들어야 했다. 육아하는 엄마들이 잠시 짬나는 시간에 휙휙 보면서도 여성의 몸과 산후 운동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면 했다.


인스타에서는 시각적 이미지가 중요했다. 디자이너와 함께 갈비뼈, 골반, 배 크기, 허리 각도 등 여성의 신체 부위를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지 레퍼런스를 찾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눈길을 사로잡으면서도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빼기’가 필요했다. 다 보여주려 하다 보면 자칫 아무것도 못 보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뺄 것인지, 무엇을 남길 것인지 고민했다.


산후 해부학적 내용을 쉽게 풀어낸 콘텐츠. 디자이너가 한땀 한땀 그린 갈비뼈와 골반@헤이마마
산후에 맞는 운동은 따로 있다! 올바른 운동법에 대한 콘텐츠@헤이마마
수많은 댓글 릴레이로 이어졌던 공감 콘텐츠@헤이마마


이미지와 함께 올라가는 피드 글은 '운동 알려주는 친한 언니' 느낌으로 친근하고 다정한 톤으로 작성했다. 너무 길거나 어렵지 않게, 그러면서도 정확한 정보를 담으려 노력했다.


고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글쓰기를 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길게 쓰는 것보다 짧게 쓰는 게, 어렵게 쓰는 것보다 쉽게 쓰는 게 훨씬 힘들었다. A4 7장짜리 인터뷰 글은 오히려 쉽다. 더하기보다 빼기가 더 어렵다.


몸과 운동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을 고객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사람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내 안에서 숙성이 돼야 상황에 맞게 변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운동 전문가가 아니기에 책과 인터넷을 뒤지며 공부하고, 직접 운동을 해보고, 팀에 있는 운동 전문가와 끊임없이 소통했다. 고객의 댓글과 피드백도 유심히 살폈다.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만의 가치와 방향성도 함께 담아야 하기에 더욱 세심하게 글을 쓰려 했다. 


'쉬운 글쓰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인스타 글쓰기@헤이마마


나는 결코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인스타 글쓰기 경험은 이후 글쓰기 태도를 바꿨다. 글을 쓰면서 글을 읽게 될 미지의 독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됐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독자와 깊이, 제대로 연결되기 위해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저널리즘 글쓰기에서도, 브랜드나 서비스를 알리기 위한 글쓰기에서도, 블로그나 브런치에 쓰는 공적인 에세이에서도 똑같이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 아니라 독자(고객)를 고려하는 콘텐츠의 내용이다. 


앱 론칭 후 나는 창업을 위해 퇴사했다. 그게 2년 전이다. 사실 이 글의 도입부는 2년 전에 써둔 것이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2년이 지났다. 뒤늦은 회고 글이다. 내 안에서 이 경험을 소화하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고 변명해 본다).


지금도 글쓰기를 할 때면 두 가지를 계속 다짐한다.


1.너무 다 쓰려하지 말자.  2.너무 잘 쓰려하지 말자.


그리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독자를 떠올린다. 내 글을 누군가 찰떡 같이 소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블로그 매거진에 연재했던 '운알못 운동일기'

나를 키운 여자들 연재 


매거진의 이전글 은유 작가도 이슬아 작가도 아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