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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y 23. 2022

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계

[나를 키운 여자들] <나의 작은 시인에게> 속 리사


▲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리사(매기 질렌할)는 20년 경력 유치원 교사다. ⓒ (주)엣나인필름

 


검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자 옆에 제 몸집보다 큰 검은 재킷을 입은 작은 남자아이가 있다. 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앉아 있다. 그들 위로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오늘, 너의 시를 훔쳐도 될까?'


처음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포스터를 봤을 때는 어른인 여자가 '작은 시인'인 남자아이의 성장을 돕는 따뜻하고 훈훈한 영화인 줄 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영화의 원제는 'The kindergarten Teacher' 우리 말로 '유치원 교사'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리사(매기 질렌할)는 20년 경력 유치원 교사다. 능숙한 솜씨로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치는 리사. 친절하고 다정해 보이지만 순간순간 묻어나는 권태로움을 숨길 수 없다. 학교-집을 반복하는 리사의 삶은 단조롭다. 고등학생인 두 아이는 더는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뜨겁지만 너무 안정적이다.  


지겨운 일상의 유일한 낙은 다름 아닌 시다. 리사는 퇴근 후 배를 타고 평생교육원에 시 수업을 들으러 간다. 배 위에 앉아 노트 위에 시를 휘갈겨 쓰는 리사. 교사가 아닌 학생이 되어 시 수업을 듣는 리사의 얼굴에 비로소 생기가 돈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라는 얼굴.


안타깝게도 리사는 시에 재능이 있는 것 같지 않다. 함께 수업 듣는 학생들은 리사의 시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평가하고, 시 선생님(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리사에게 "자신을 좀 더 투영해 보라"고 조언한다. 남편은 리사의 시가 좋다고 위로해 주려 하지만 정작 시를 잘 이해 못 하는 눈치다.


어느 날, 리사는 자신의 반에 있는 다섯 살 소년 지미(파커 세바크)가 시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리사는 시 수업에서 지미의 시를 자신의 시인 것처럼 낭독한다. 리사, 아니 지미의 시는 극찬을 받는다. 리사는 지미의 시를 계속 훔친다.


여기까지 읽으면 어떻게 교사가 그럴 수 있나 싶다. 하지만 리사를 그저 이상한 선생님으로만 보기엔 지미와 리사의 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최초의 어른



▲ 리사는 지미의 시를 지켜주고 싶고, 지미의 재능이 꽃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 (주)엣나인필름

 


리사는 지미의 재능을 알아본 최초의 어른이다. 이혼 후 아빠와 살고 있는 지미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대규모 클럽을 운영하는 아빠는 늘 바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시터도 아이를 그리 충실히 돌보지 않는다. 리사가 지미의 시를 발견하기 전에는 누구도 지미의 재능을 몰랐다. 그들은 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리사는 다르다. 지미가 중얼거리며 시를 뱉어낼 때, 리사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노트와 펜을 꺼내든다. 심지어 남편과 섹스를 하려 하다가도 시가 떠올랐다는 지미의 전화를 받고는 속옷만 입은 채 지미의 시를 받아 적는다. 수화기 너머로 지미가 시를 읊조리고, 펜을 든 리사는 남편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채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리사는 자신이 지미 곁에 없는 사이 얼마나 많은 시를 놓치게 될지 조바심 난다. 유치원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리사는 알고 있다. 책은 읽지 않고 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술적 재능이 얼마나 사라지기 쉬운지. 한때 반짝이던 아이들이 획일적 교육을 받으며 어떻게 금세 평범한 아이가 되어가는지. 리사는 지미의 시를 지켜주고 싶고, 지미의 재능이 꽃 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리사는 낮잠을 자고 있는 지미를 깨워 자신이 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려 한다. 시에 대한 리사의 말은 리사의 시처럼 어딘가 뻔하고 틀에 박혀 있다. 리사에게는 좋은 시를 알아보는 능력은 있지만 시를 가르칠 능력은 없다. 시에 있어서만큼은 리사는 지미의 선생님이 될 수 없다. 이때 20년 경력 교사와 5살 제자의 위치가 전복된다.


어느 낮잠 시간, 리사는 자신이 지은 시를 지미에게 들려준다. 지미의 시와 비교되는 평범한 시. 그리 나쁘지도 그리 좋지도 않은 애매한 시. 시를 들은 지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지미의 표정을 본 리사는 지미에게 말한다.

 

잊어버려. 네 재능을 망치긴 싫으니까.



평범함과 특별함


리사에게 지미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과정은 자신의 평범함을 직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리사가 자신의 시를 타인에게 읽어주고 반응을 기다리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온다. 어김없이 기대했다 이내 실망하는 얼굴. 실망조차 감추려 하는 얼굴. 그때마다 나는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잠시 숨을 골랐다. 내가 글을 쓰고 독자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과정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2~3주에 한 번은 공개된 채널에 에세이를 쓰려 한다. 급여를 받는 직업과는 무관한 글쓰기다. 육아휴직 복귀 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어떤 글은 청탁을 받거나 원고료를 받고 썼지만 대부분의 글은 그저 글이 쓰고 싶어 썼다. 글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도 해왔으니 글쓰기에 아주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글로 이름을 알릴 수 있을 만큼 내 글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질투심과 열패감을 동반한다. 나는 결코 쓸 수 없을 것 같은 표현, 내게선 나오지 못할 것 같은 통찰력이 담겨 있는 글을 보면 '그래 이거야' 싶다가도 마음이 옹졸해진다. '세상에 이토록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은데 과연 나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는 걸까', '그냥 글을 애호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는 없는 걸까' 현실 자각도 잠시. 또다시 나는 글을 쓰고 독자의 반응을 기다린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리사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글쓰기는 예정된 실패를 알면서도 자꾸만 기대하게 되는 일이다.  


지미를 동경하는 리사와 달리 세상은 지미의 재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사는 지미의 아빠를 찾아가 지미를 지원해 줄 방법을 함께 고민하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지미의 아빠는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적은 연봉을 받는 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아들이 동생처럼 되는 건 싫다고 말한다.

 

아들이 공부 잘하고 똑똑한 건 좋죠. 그래도 평범하게 살았으면 해요. 수입은 현실과 직결되니까요.


글쓰기는 가성비가 도무지 나오지 않는 일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겨우 한 편의 글이 나올까 말까 한데 글쓰기가 수입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자는 동안에도 돈이 굴러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부자가 된다는데,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꿈속에서도 글을 쓴다. 생산성이나 효율성과는 영 거리가 멀다.


역설적이게도 글쓰기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 무용함, 쓸모없음에 있다. 지미의 작은 입에서 시가 흘러나올 때면 영화 속 공기가 달라진다. 지미도 리사도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생산성과 효율성의 강박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은 다른 우리가 된다. 우리 안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람이 된다. 글을 잘 쓰건 못 쓰건,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리사도 분명 그 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나 같은 그림자



▲ 훗날 지미는 리사를 어떻게 기억할까. ⓒ (주)엣나인필름

 


리사의 시에 푹 빠진 시 선생님은 리사를 시 낭독회에 초대한다. 리사는 시의 주인공인 지미를 무대에 세우기로 한다. 커다란 검은 재킷을 입고 관중들 앞에서 시를 낭독하는 지미. 리사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뒤에 서 있다. 지미의 시 낭독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지미에게 쏟아진다.


물론 윤리적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지미의 시를 발견하고 지미의 시가 사람들 앞에 널리 공개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리사는 순식간에 그림자가 된다. 원래 그곳이 리사의 자리였다는 듯이. 리사의 시가 사실은 지미의 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시 선생님은 경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리사에게 말한다.

 

당신이 예술가가 아닌 건 확실해요. 그냥 예술 평론가나 허세가죠. 차이는 아시겠죠?


영화의 포스터는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담았다. 예술이 뭔지도 모르지만 이미 예술을 하고 있는 남자아이,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가는 될 수 없는 어른 여자. 두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미의 아빠가 유치원을 옮기자 리사는 지미를 몰래 데리고 떠난다. 리사는 지미가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함께 수영하고 놀다 지미에게 시가 떠오르면 리사가 받아 적고 그 시를 모아 책을 내는 꿈을 꾼다.


하지만 지미는 리사를 원치 않는다. 숙소에 들어와 리사가 샤워를 하는 사이, 지미는 욕실 문을 잠그고 리사를 경찰에 신고한다. 욕실 문 건너편에서 몸에 수건만 두른 채 리사는 절규한다.

 

세상이 널 지워버리려 해. 세상에 널 받아줄 곳은 없단다. 너같은 사람들 말이야. 몇 년도 안 지나 너도 나 같은 그림자가 될 거야.


꽤 오랫동안 이 영화를 질투에 대한 영화라 생각했다.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리사의 감정이 단순히 질투가 아님을 알게 됐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재능을 볼 때는 질투조차 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미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빛나는지 알지 못한다.


리사는 지미의 그림자가 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리사는 자신만의 시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빛나는 지미 옆에 있으면 자신의 시도 언젠가 빛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을지도.  


훗날 지미는 리사를 어떻게 기억할까. 지미는 계속 시를 지을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 장면, 경찰 차에 탄 지미는 "시가 떠올랐다"고 몇 번이나 말한다. 누구도 지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

취업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어지러울 때,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면 뿌옇던 세상이 조금은 선명해졌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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