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라는 일의 뒷면
인터뷰를 하기 전 가장 고민되는 것은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다. 특히 이미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많이 했던 인터뷰이라면 더욱더.
<문명특급>에서 인터뷰어 재재는 인터뷰라면 질리도록 해온 인터뷰이들에게 전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감동을 준다. 새로운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이들이 어떤 질문을 받았고 어떤 답변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평소 어떤 활동을 했고, 어떤 발언을 했는지도(글을 쓰는 이라면 어떤 글을 썼는지도) 함께. 사전 취재를 얼마나 충실하게 하느냐에 따라 인터뷰의 질은 전혀 달라진다.
사전 취재는 시간을 내서 인터뷰에 응해준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인터뷰이 입장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몇 차례가 있었는데 조금만 대화를 나눠봐도 이 사람이 나에 대해 혹은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얼마나 밑취재를 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인터뷰를 했던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은 수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해온 분이었다. 그동안 이 관장이 했던 인터뷰를 모두 검색해 읽으며 인상 깊은 대목, 떠오르는 질문을 메모했다. 그가 쓴 글, 책(저서가 워낙 많아서 다 읽지는 못 했다), 유튜브 영상도 참고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이 관장을 직접 만난 관람객의 후기도 찾아 읽었다. 사전 취재를 하는 시간은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인터뷰이를 만나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일방적인 내적 친밀감이랄까.
질문을 뽑을 때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인터뷰의 주제, 그리고 방향성이다. 한 사람 안에는 수많은 정체성과 주제가 있다. 이 가운데 무엇에 대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질문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쓰는 글도 똑같은 경험이지만 방향성에 따라 전혀 다른 글이 될 수 있다.
이번에 했던 인터뷰는 지난해부터 외주 작업을 하고 있는 <평생학습e음> 웹진의 ‘이음의 탐구생활'이라는 인터뷰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였다. 각자의 분야에서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는 이들을 만나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듣는 시리즈다.
스스로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 부르는 이 관장은 자신만의 분야에서 탐구를 이어가는 사람이자, 자신이 탐구한 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며 경험과 지식을 잇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웹진 운영을 총괄하는 PM과 상의해서 ‘탐구'와 ‘이음'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터뷰 질문지를 구성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5년,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4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으로 3년. 지난 12년 동안 이정모 관장은 “직업이 관장"이자 “어쩌다 공무원"으로 살았다. 과학관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뿐 아니라 책 집필, 방송 출연 등 과학과 대중 사이를 잇는 작업을 꾸준히 하느라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유익한데 재밌어요.” 이 관장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이다. 유익함과 재미를 둘 다 놓치지 않기 위해 이 관장은 매일 책과 논문을 읽고 경계 없이 사람을 만난다. 자신만의 분야에서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 그를 <평생학습e음> ‘이음의 탐구생활' 첫 번째 인터뷰이로 선정한 이유다.” - 기사 인트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대한 그가 이전에 했던 답변에서 질문을 다시 뽑아내려 했다. 이를테면 이 관장은 ‘과학의 대중화만큼이나 대중의 과학화도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렇다면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라고 묻는 식이다. 이전 인터뷰에서 이 관장은 야학 경험을 자주 말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했다.
인터뷰에서 새로운 질문만 할 수는 없다. 콘텐츠를 만들 때 기본 전제는 ‘독자는 이 주제에 대해 처음 본다‘
는 것이다. 수차례 반복해서 했던 이야기라도(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지겨운 주제라도) 그렇기에 그 주제는 인터뷰이가 강조하는 내용이고 독자에게 전달됐을 때 유용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인터뷰이의 정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원론적인 질문과 새로운 질문이 적절히 섞일 수 있도록 질문지를 구성했다.
질문지를 짤 때는 시나리오를 쓴다는 생각으로 흐름을 잡는다. 인터뷰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시의성. 이 관장은 오는 2월 말 관장 임기가 끝나기에 그 이야기로 먼저 인터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먼 이야기보다 가까운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대화를 이끌어내기 더 쉽고 자연스럽다.
‘이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라고 가정하고 그다음 질문을 짜지만 예상 못한 답변이 나올 때도 있다. 인터뷰의 재미는 여기에서 나온다.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이번 인터뷰에서는 과학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나요?
“저는 과학 하고 싶다는 어린이들에게 문학책을 읽으라고 해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 보면 공통점이 다 문학소년이었다는 거예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학에서도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과학책에서는 지식과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독서력이 커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문학책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요. ‘갑자기 왜 도망을 가? 갑자기 왜 바람이 나?(웃음)’ 상상을 해야 하는 거죠. 독서력이 커져요.
그리고 문학에서는 주인공이 반드시 실패를 해요. 실패가 없으면 문학이 성립을 안 하죠. 그러다 털고 일어나는 거죠. 연구자의 길에 들어서면 실패를 해볼 텐데, 문학을 통해 실패를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어요. 좌절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회복 탄력성을 기를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정말로 과학자가 되고 싶으면 문학 작품을 읽으라고 해요. 과학적 지식은 진리가 아니에요. 몇 년만 지나도 많은 게 바뀌니까요. 과학을 몇 년씩 선행학습 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죠.”
과학에 대해 질문했는데 문학 이야기를 듣다니.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문학을 통해 회복 탄력성을 기를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알쓸인잡>에서 정서경 작가가 ‘캐릭터를 만들 때 결함을 먼저 떠올린다'라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사실 내가 사랑하는 인터뷰의 순간은 사전 취재가 무용해지는 때다. 수없이 그려왔던 인터뷰이가 예상과 다른 모습일 때, 그 인터뷰이가 생각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역설적으로 이때 사전 취재가 힘을 발휘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다른 질문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사전 취재 만만세!)
1시간 남짓, 시간이 짧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이번 인터뷰는 유난히 잔상이 많이 남았다. 인터뷰 이후 우리 집 8살 아이는 매일 유튜브에서 털보 관장님을 찾아본다. 조만간 과천과학관에 아이와 함께 가봐야겠다.
인터뷰 전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프리랜서 인터뷰어. 문의 및 제안은 hong698@gmail.com
저의 첫 에세이집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