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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y 31. 2022

기분이 째진다

문해시인 할머니 인터뷰 후기

할머니는 글씨를 몰랐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이만큼 편지를 써서 선물로 주면 할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옆에 있던 엄마는 ‘할머니는 편지를 읽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처럼 큰 어른이 글씨를 모르다니,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다.


양부님 할머니와 인터뷰하면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글씨를 배워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묻자 할머니는 ‘빈 택시’(‘빈 차’)라고 적혀 있는 것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라 했다. 그전에는 택시를 보고 손을 흔들면 어떤 택시는 서고 어떤 택시는 그냥 가버려서 영문을 몰랐는데 이제는 글씨를 보고 빈 차와 손님을 태운 차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단다. 간판에 있는 한글과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좋다고 했다. 글씨만 알게 됐을 뿐인데 70년간 모르고 살았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이번 취재는 인터뷰이에 대한 사전 정보가 별로 없었다. 70대 여성 분이라는 것, 초중등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기관에 다닌 지 3~4년 정도 됐다는 것 그리고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상을 받은 시 한 편. 섭외 과정에서 광주희망학교 교장 선생님께 할머니가 쓴 시를 미리 보고 싶다고 했다. 잠시 후 문자로 도착한 이미지를 보고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화자의 캐릭터와 심정이 잘 드러나는 사랑스러운 시라니. 그림도 할머니 솜씨다. 인터뷰하러 가기 전 몇 번이고 시를 읽고 또 읽었다. 할머니의 기분 째지는 마음을 잘 전하는 것이 이번 인터뷰의 목표였다.


실제로 만난 할머니는 시처럼 씩씩하고 호쾌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너무나 가난한 삶을 살았다는 할머니. 결혼 후 시골에서 5남매 키우며 농사짓고 살던 할머니는 더는 이렇게 가난하게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돈 벌어 아이들 공부시키겠다며 광주로 갔다. 할머니 나이 44살 때였다. 남편은 시골에 두고 왔단다. 덕분에 5남매 모두 고등학교를 마쳤고 할머니도 늦었지만 공부를 시작했다. “내 인생을 내가 바꿨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70대 할머니라니.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멋져요”, “대단해요”를 몇 번이나 외쳤다.


민정님이 찍은 아래 사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할머니의 힙한 하굣길.


@평생학습e음

인터뷰 기사는 여기에. 할머니의 사투리를 살리고 싶어서 열심히 녹취를 풀었다. 부디 현장감이 잘 전달됐기를.



기사에는 할머니가 다니고 있는 광주희망학교 교사 분들 인터뷰도 실려 있다. 28살에 봉사활동하러 와서 50살이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교장 선생님, 20 대학생  잠시 봉사 활동했던 광주희망학교에 50대가 되어 다시 수업을 하고 있다는 담임 선생님. 소명의식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도 덩달아 담대해지는 기분이 든다. 100 넘는 어르신들이 공부하는 학교인데 재개발과 코로나로 인해 운영난을 겪고 있다고 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대학생  야학교사 봉사활동을   있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중등, 고등 검정고시 수업을 했는데 나는 국사와 영어를 가르쳤다. 남편을 만난 곳도 야학이었다. 한참 어린 대학생들을 ‘강학님(가르치며 배운다는 의미로 교사 대신 강학이라는 표현을 썼다)’이라 부르며 살갑게 대해주시던 분들 얼굴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지금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를 하며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인터뷰하는 뒷모습이 남았다 @평생학습e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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