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특별기여자와의 인터뷰
울산에서 아프가니스탄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 수상자 취재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난해 여름 400명 가까운 아프간인들이 ‘특별기여자’라는 이름으로 탈레반의 위협을 피해 한국에 왔다는 것도, 그들 중 40%가 울산에 정착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참고로 '아프간 특별기여자'는 아프간 재건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협력한 이들을 뜻한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특별기여자 자격으로 입국한 이들은 난민 심사를 면제받고 장기 체류 자격을 받는다.
인터뷰를 가기 전, 관련 뉴스를 하나하나 검색해 보면서 사전 질문지를 만들었다.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나기로 한 인터뷰이는 세 명이었다.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초등부 은상을 수상한 초등학교 6학년 워헤드와 워헤드의 어머니 그리고 담당 교사.
외국인을 인터뷰해 본 적 있지만 영어를 쓰지 않는 인터뷰이는 처음이었다. 인터뷰 조율을 위해 아프간 학생 특별 학급(한국문화적응반) 담당 교사와 통화해 보니 워헤드는 한국에 온 지 1년 조금 지났는데 한국말을 잘하고, 워헤드의 어머니 마르지아는 아직 한국 말이 서투르다고 했다. 다행히 학교에 상주하는 다리어(아프간어) 통역사가 있어서 인터뷰에 동석하기로 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잘 소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인터뷰가 될 것 같았다.
담당 교사는 워헤드의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 발표 영상을 미리 보내줬다. 영상을 클릭하자 아직 변성기가 찾아오지 않은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국의 큰 도움으로 작년 8월에 안전한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온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었던 쿵쾅쿵쾅거리는 무서운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봄에는 짹짹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여름에는 맴맴 매미소리를 가을에는 귀뚜라미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하하하 하고 웃는 소리도 매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꿈같은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매일 학교에 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짧은 발표에 13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웠을 1년여의 시간이 압축돼 있었다. 발표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국에 온 지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한국어를 잘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 업체에 취업한 아프간 특별기여자는 29가정. 그들 자녀 중 초등학생 26명이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기사를 찾아보니 입학 과정에서 일부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었고, 지난 3월 첫 등교하는 날 울산시 교육감이 아프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과 아프간 학생들이 함께 지내는 모습이 쉽사리 상상이 안 갔다. 그로부터 8개월 후,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서울에서 KTX 열차를 타고 울산역에 도착해 또 40-50분 정도 차를 타고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5-6학년 아프간 특별학급 교실은 4층에 있었다.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보는 건 졸업 이후 처음이었다. 담당 교사의 안내를 받아 교실 안에 들어가자 워헤드와 마르지아 그리고 통역사가 나란히 교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워헤드는 취재진을 보더니 ‘어떡해’라는 표정으로 입을 손으로 가렸다.
어머니 마르지아 앞에는 한국어로 준비한 답변지와 다리어로 쓴 답변지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사전 질문지에 빽빽하게 답변을 준비해 온 인터뷰이를 볼 때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무게를 새삼 깨닫는다. 얼마나 고민하고 긴장하면서 답변지를 준비했을까. “답변지는 제가 가져가서 나중에 참고해서 볼 테니 지금은 편하게 부담 없이 말씀해 주세요”라고, 다른 인터뷰에서도 했던 말을 전했다. 답변지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르지아와의 인터뷰는 내가 한국말로 질문을 하면 통역사가 마르지아에게 다리어로 통역을 하고 마르지아의 답변을 통역사가 다시 내게 한국말로 전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은 조용하고 차분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마르지아는 적극적이고 유쾌했다. 워헤드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된다’ 정도의 답변을 기대했는데 통역사가 전해주는 말에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직업과 아들이 원하는 직업이 다르대요. 어머니는 판사가 되라고, 경찰보다 판사가 낫다고 하는데 워헤드는 ‘나는 경찰 할 거야’라고 한대요. 워헤드가 바라는 대로 존중한대요.”
한국어를 처음 봤을 때 '이걸 어떻게 읽냐’며 큰 충격을 받았다며 "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하는 마르지아에게 나는 다리어 답변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희도 이거 하나도 못 읽어요. 처음에 어려운 건 다 똑같아요.”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한국어 습득이 훨씬 빨랐다. 3월부터 5-6학년 특별 학급을 맡고 있는 담당 교사는 아이들이 맑고 마음이 따뜻하다고 말했다.
“어떤 달은 제가 급식을 안 하고 따로 도시락을 싸왔는데 애들이 하는 말이, ‘선생님, 왜 토마토 먹어요? 이거 뭐예요? 단호박? 이거 왜 먹어요. 밥 먹어요. (양손을 넓게 벌렸다가 좁히면서) 이거, 이거? 선생님 날씬해요. 밥 먹어요. 같이 운동장 뛰어요. 밥 먹어요.’ 그때 느꼈죠. 애들과 이제 대화가 되는구나. 일상 생활을 같이 잘할 수 있겠구나.”
아이들에 대해 말하는 교사의 눈빛에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번아웃의 시간을 지나며 ‘이제 내게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건조하게 말했지만, 자신의 일을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해내는 사람들을 볼 때면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 두 건의 인터뷰 모두 그랬다. 그들의 진심에 보답하기 위해 나도 진심을 다해 소통하려 했다.
부끄러움이 많다는 워헤드는 질문에 단답형으로 답변을 했다. 기억에 남는 문답. ‘어떤 한국 음식 좋아해요’라는 질문에 워헤드는 “밥이요”라고 답했다.
“또 어떤 음식이요?”
“라면. (다음 질문을 예상한 듯) 또 없어요.”
어린이들과 인터뷰할 때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친밀감을 형성한 후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부족한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오늘 또바기에서 뭐가 재밌었어?’ 물으면 “다”라고 답하는 우리 집 어린이가 떠올랐다.
현재 아프간 학생들은 특별 학급에서 생활하면서 일주일에 10시간씩은 한국 학생들이 지내는 반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워헤드는 한국반에 가서 수업 듣고 시험 치는 시간이 재밌다고, 한국 친구들과 페이스북에서 만나서 ‘로블록스’ 게임을 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교육청과 지자체에서 아프간 가족들의 적응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해주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옆반에서 보충 수업을 듣고 있던 아프간 학생들이 교실에 우르르 몰려왔다. 얼굴 생김새는 다르지만 영락없는 초등학생의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프간인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고 있던 게 아닐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담당 교사는 아이들과 다 같이 기념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교실 밖으로 나와 1층 현관에서 인터뷰이들과 아프간 학생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다 지난 4월 <한겨레21>에 실린 아프간 특별 기여자 가족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다. “한국 학생들도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문화사회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성숙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는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의 인터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아래 댓글을 발견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에 대한 언론 보도가 너무 적게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일부러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쓰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은 무엇일까. 댓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감동이네요. 작년 여름 아프간 난민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신기함+잘 정착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등 여러 감정이 섞여서 주기적으로 아프간 난민들 소식을 찾아서 기사도 읽고 뉴스도 봤습니다. 부디 새로운 나라에서 힘들고 가슴 아픈 일들도 많겠지만 잘 정착해서 부모 세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들 세대에서 정말 한국에 오길 잘했다고 웃음 짓는 날들이 많기를 소망합니다.”
아프간 소년 워헤드는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자신도 한국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아이들이 마주하게 될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이 ‘한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평생학습e음>에 실린 인터뷰 기사는 아래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