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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r 02. 2023

어느 소설가와의 인터뷰

인터뷰로 산을 넘는 법

“제가 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섬진강 일기>를 읽고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문자를 받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소설가와의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1996년에 등단한 김탁환 작가는 장편소설만 29편을 썼다. <불멸의 이순신><나, 황진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작품이 다수 있었지만 그중 내가 읽은 소설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사실 나는 김탁환 작가의 이름을 역사 소설가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 잠수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거짓말이다>를 쓴 작가로 기억하고 있었다. 큰 성공을 거둔 역사 소설가가 왜 사회파 소설을 쓰게 됐을까 물음표가 생겼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2월 인터뷰이가 김탁환 작가로 정해지고 그가 곡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 곡성이요? 영화 <곡성>의 그 곡성 맞죠?” 담당자에게 되물었다. 더 놀라운 것은 용산역에서 곡성역까지 가는 KTX 열차가 있다는 사실. 인구가 2만 7천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지역에 KTX가 서다니. 작가의 집필실이 있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은 곡성역에서 차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동에 대한 걱정은 덜었고 이제 사전 취재를 해야 할 시간. 인터뷰이가 쓴 책을 다 읽고 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시간 관계상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와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를 e북으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 년만 쉬기로 했다. 턱밑까지 숨이 차올랐던 것이다. 장편 소설을 단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작업실에도 들어가지 않고, 길 위를 걷기로 했다.”
“작업실을 나와서 한강까지 걸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긴 싫었다. 23년 동안 골방에 틀어박혀 이야기를 쓰고 쓰고 또 쓰는 삶!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또 23년을 책과 논문과 녹취와 사진과 지도에 둘러싸여 읽고 쓰다가 늙고 병들어 죽겠구나 싶었다.”
“횡으로 횡으로 횡으로만 다니면서 가고 또 가는 곳이 생겼다. 처음엔 정겨운 고향 언저리인 창원이나 김해나 진주나 부산을 자주 들렸는데, 발길이 점점 서쪽으로 향했다. 이대로 소멸하진 않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마을이었다.”



섬진강 뿅뿅 다리 물소리  


@홍밀밀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는 대도시에서만 20년 넘게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던 중년 작가가 전남 곡성에서 농부 과학자 이동현 미실란 대표를 만나면서 ‘두 번째 발아’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미실란은 발아 현미를 연구하고 발아 현미 가공 제품을 만드는 농업회사법인이다. 이 책에서 나를 사로잡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점점 커졌다. 쿵쿵 심장이 대북처럼 울렸다. 물소리가 다리를 흔들고 옆구리를 휘감고 얼굴을 덮었다. 내가 강으로 스미고 강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강과 내가 엉키고 울리고 치솟고 가라앉았다. 아득했다. 물밖에서 물에 사로잡힌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웅장하고 청량했다.”


섬진강 뿅뿅 다리 위에서 작가가 들었던 소리를 표현한 문장을 읽으며, 곡성에 가기 전부터 이미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섬진강 들녘으로 집필실을 옮긴 작가는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에서 이렇게 쓴다. “섬진강로. 집필실 주소에서 길 이름을 확인할 때마다, 강물이 온몸에 스미는 기분이 든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와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를 차례로 읽고 작가가 지금까지 했던 인터뷰를 찾아봤다. 작가가 “2010년대를 지나 2020년대로 넘어가며 가장 많이 생각하고 상상했던 인물"인 ‘달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읽었다. 곡성의 풍경이 궁금해 작가가 나온 다큐멘터리도 봤다. 영화 <곡성>에 나온 으스스한 모습과는 다른,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섬진강에서 농부 소설가로 살면서 작가는 “하염없이 읽고 원 없이 쓰고 싶었는데, 이젠 하염없이 걷고 원 없이 쓰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글에만 매몰되는 삶이 아니라, 글과 삶이 함께 변화하는 삶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쯤 되면 인터뷰 준비를 하는 건지 덕질을 하는 건지 헷갈렸다. 클럽 H.O.T를 시작으로 내추럴 본 덕후인 나는 한 가지에 꽂히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샅샅이 찾아보고 상상해 보고 궁금해한다(여성 영화 에세이 <나를 키운 여자들>도 덕질의 산물이다).


처음에는 소설가를 인터뷰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질문지를 짤 때쯤에는 알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몇 번이고 밥맛을 극찬했던 미실란 식당 ‘밥카페 반하다'에서 밥을 먹어 보고 싶어 기차 출발 시간을 앞당겼다.



깨끗한 마음으로


@평생학습e음 이민정


예정된 인터뷰 시간은 오후 4시인데 낮 12시쯤 곡성역에 도착했다. 폐교를 개조해 만든 미실란 건물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밥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갔는데 김탁환 작가가 손님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앗, 인터뷰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이따 4시에 뵐게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차를 마시고 김 작가가 이동현 대표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에 들렀는데(책방은 식당 바로 옆 건물에 있다) 거기에서도 작가를 마주쳤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미실란 2층에 있는 작가의 집필실 ‘달문의 마음'에서 진행했다. 작가는 직접 내린 커피와 마을 주민에게 받았다는 곶감을 내줬다. 집필실에서 바라본 창에서는 낮은 산이 보였다.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이 없었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고 몸을 쓰며 사는 삶은 어떨까 상상했다.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인터뷰를 많이 한 인터뷰이들은 익숙한 답변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질문에도 뻔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같은 문장을 두 번 쓰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사람처럼, 작가는 질문을 곱씹어 생각해 본 후 예상치 못했던 답변을 내놨다. 직접 몸으로 겪어내고 삶 속에서 숙성된 서사에는 단단한 힘이 있었다.


김 작가는 이동현 대표와의 인연을 다룬 르포형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쓰면서 이 대표의 석박사 논문을 모두 읽었다고 한다. 책 뒤편에는 ‘발아 현미와 관련된 이동현의 논문들’이라는 이름으로 기나긴 참고문헌 리스트가 나와 있다. 이 대목에서 놀랐다고 말하자 작가는 답했다.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에요. 어떤 인물에 대해 쓰고 싶으면 그 사람이 쓴 글을 다 읽어요. 정도전이다, 하면 <삼봉집>을 다 읽고 정도전이 만났던 사람들 책도 다 읽어요. 정도전이 이색을 만나면 이색 책을 읽고 이색은 정도전을 어떻게 말하나 찾아보는 거죠. 그 사람을 읽고 그 사람 주변 것을 읽고, 장편 소설 작업할 때 늘 하던 방식이에요.


그렇게 논문을 읽고 이동현 대표를 만나면 논의의 수준이 훨씬 높아져요. 제 이해도도 높아지고요. 제 책을 하나도 안 읽은 사람이랑 이야기하면 낮춰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읽고 오면 그 책을 읽은 내용을 가지고 수준을 높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요. 처음에는 이 대표가 벼 품종을 툭툭 이야기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벼농사를 짓고 품종에 대해 알고 나니까 눈을 감아도 딱 떠오르는 거죠. 이제 벼농사에 대한 소설은 정말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답변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작가가 자신의 책을 읽고 오라고 했을 때 조금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그 배경에는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김 작가는 그동안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자주 협업해 왔다. 과학자인 정재승님과 <눈먼 시계공>이라는 장편 소설을 함께 쓰고, 소리꾼 최용석님과 ‘창작집단 싸목싸목'을 결성해 판소리극을 만들고, 지금은 농부 과학자 이동현님과 곡성에서 미실란 생태학교를 꾸려가고 있다.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서는 힘,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어떤 세계를 좋아하고 알고 싶다면 그 세계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뭔가를 같이하는 것 같아요. 제가 혼자 농사 책을 읽고 혼자 고민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지만, 이동현 대표와 함께 농사를 배워보고 내 텃밭에 가서 실습도 해보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이렇게 하면 제일 빨리 알게 되죠.


정재승 선생과 책 쓸 때 좋았던 게, 뇌 과학에서 지금 연구되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최고 수준의 질문, 연구 현황을 알게 된다는 거죠. 제가 알아야 같이 쓸 수 있으니까 저도 공부를 해야 하고요. 지금 이동현 대표와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그걸로 어떻게 부가 가치를 창출하느냐까지 함께 배우고 있어요. 이동현 대표를 안 만났다면 하나하나 따로따로 알게 됐을 것들을 한 번에 압축적으로 배우고 있는 거죠.”


“어떤 세계를 좋아하고 알고 싶다면 그 세계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뭔가를 같이하는 것"이라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인터뷰 작업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에서 아무 말이나 대충 하는 사람은 없다. 인터뷰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생각 중에서 고르고 골라 가장 좋은 것을 내놓는다. 타인이라는 세계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터뷰가 아닐까. 정수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성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김 작가는 "사실 책을 미리 읽고 준비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라면서 말을 이어갔다.


“‘개똥벌레’ 노래를 만든 한돌 작가가 쓴 책을 보니까 한돌 선생은 A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산을 넘어가요. 종로에서 만난다고 하면 일산에서 종로까지 5시간을 걸려서 가는 거죠. 이 사람이 나랑 어떻게 알게 됐는지 생각하고, 내 안에 더러운 욕망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렇게 준비하고 가서 만난다는 거예요. 저도 이동현 대표를 만날 때 그렇게 걸어가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요.”


산을 넘어가지는 않지만, 나도 인터뷰를 할 때 깨끗한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혼탁하고 꼬인 마음으로는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투명하게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기 전 몸을 꼼꼼하게 씻고 단정하게 옷을 입으려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매번 정성과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일정에 쫓겨서 또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 때문에 기계적으로 인터뷰를 했던 적도 더러 있다. 그럴 때면 녹취록을 풀고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면서 수없이 이불킥을 날린다. 인터뷰를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낯선 타인을 만나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넘게 구조화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 깨닫는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  



과잉된 사람


@홍밀밀


곡성에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나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스스로 정한 안식년 1년이 끝났고 첫 책을 출간했지만 여전히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어지러웠다. 시도도 하기 전에 결말을 아는 사람처럼 지겹고 지쳤다. 그즈음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은 ‘모르겠다'였다. 당연했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실패할까 두려워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불안해서, 나는 자꾸만 선택을 미루고 있었다.


고전문학 연구자의 길을 걷다 소설가가 되고, 대학교수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그만두고 전업 소설가가 되고, 역사 소설을 쓰다 사회파 소설을 쓰고,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에 집필실을 만들고. 남들이 반대하는 선택의 순간마다 김탁환 작가에게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마음이 있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마음.


집필실 이름이 왜 ‘달문의 마음'이냐고, 일주일에 한 번은 똑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지금까진 달문에 대해 길게 설명했는데, 오늘부터는 6년 전에 나눈 대화를 옮겨두기로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래전, 친구에게 물었다.
“할까?”
“해.”
“이익이 없으니 하지 말라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넌 왜 나더러 이걸 하라고 해?”
“해도 네게 이익이 없으니까. 이익은 없지만, 네가 그걸 하려고 먹은 마음은 남을 거야. 그 마음만 지키면 돼.”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중에서


김탁환 작가는 ‘과잉된 사람'에게 끌린다고 했다. 사람이 계속 고민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상식을 넘어가고 과잉되는데, 자신도 선택의 순간마다 과잉됐던 것 같다고. 그럴 때면 과격해진다고.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던 사람으로서 과격해지는 마음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김 작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다시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마흔, 어차피 앞으로 30년 이상 더 일할 거라면 익숙함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도를 과감히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나도 조금은 더 깊고 뾰족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 덕분에 산을 넘을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통찰력 있는 인터뷰를 합니다.

인터뷰 관련 협업 및 제안은 hong6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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