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읽는 여자] 부러움에 완벽하게 지는 법
부러우면 지는 거였다. 부럽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배배 꼬였다. ‘사람은 저마다 주어진 상황이 다르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거나 노력을 더 해야지, 부럽다고 말하면 뭐가 달라져? 자존감이 없는 거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짊어지고 사는 거라고,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그러니 비교할 것도 부러울 것도 전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쿨병이었다.
발끈한다는 것은 곧 찔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질투라는 감정을 유독 미워했던 건 내가 그만큼 질투를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스타그램 앱을 지웠다 깔았다 했다. 부럽다는 감정에 지는 게 싫었다. SNS는 편집된 일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스크롤을 내리는 순간만큼은 네모난 화면만이 세상의 전부 같았다. 동시에 마냥 멋지고 행복해 보이는 SNS 속 모습 이면에 아픔과 슬픔이 반드시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야만 공평할 것 같았다.
부럽다는 마음은 코끼리 같았다. 부럽다는 마음을 부정하려 나는 타인의 약점을 찾고 남몰래 불행을 바랐다. 그럴수록 코끼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나는 분명 다 큰 어른인데 질투를 하는 나는 유치하고 구질구질했다. 오랫동안 남몰래 코끼리를 원망했다.
김화진 단편소설 <꿈과 요리>는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질투라는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스물아홉 수언과 솔지는 대학 동기지만 대학을 떠나고 나서야 친구가 됐다. 학교 다닐 때 전혀 친하지 않았지만 아예 모르는 사이였던 건 아니다. 오히려 수언은 솔지에게, 솔지는 수언에게 자꾸만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솔지가 ‘인싸'라면 수언은 ‘아싸'다. 솔지도 수언도 영화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좋아하는 방식은 다르다. 솔지가 학과 내에 사회과학서 읽기 모임과 독립영화 상영회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한다면, 수언은 모든 것을 혼자 조용히 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언은 솔지의 모든 행위가 “과시적"이고 “가증스”럽다고 생각한다. 솔지 역시 수언을 “돌멩이" 같다고, “그저 고여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밖으로 말은 하지 않고 속으로만.
수언과 솔지가 서로를 “고까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꾸만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수언은 사람들을 모아서 뭐라도 하는 솔지가 가만히 있는 자신보다 낫다 생각하고, 솔지는 조용히 있는 듯하면서도 종종 글쓰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그 생각의 밑바닥이나 가장자리에 끄트머리가 살짝 들려 있는 아주 얇은 껍질을 살살 떼어내보면 거기에는 부러움이 있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였다. 쟤 부럽다, 쟤는 좀 신기하다 같은 생각과 등을 맞대고 있는 생각은 결국 쟤가 보기에 나는 어떨까? 였다.” - <꿈과 요리> 중에서
수언은 애써 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솔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므로. 특히 자기가 못 가진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므로”. 타인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내가 못 가진 것, 나의 못난 점을 생각하게 한다. 부러워하는 감정을 부정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코끼리 생각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코끼리는 더 커진다. 질투라는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강력하다. 수언도 솔지도 서로를 완벽하게 무시하지 못한다.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 친구가 된 지 5년이 된 수언과 솔지는 어떤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소리 높여 감정을 드러내며 싸운다. “거슬리면 안 보면 그만”인 어른의 세계에서 두 사람은 중학생처럼 말싸움을 한다. 김화진은 어른들이 입 밖으로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던(못했던) 감정을 언어화해서 눈앞에 보여준다. 친구를 고까워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한심해하기도 하고 동경하기도 하는 마음에 대해. 그러면서 친구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마음에 대해.
마음 속에 CCTV를 달아놓은 듯한 문장을 읽으며 처음에는 내 속을 들킨 것처럼 흠칫 놀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마음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추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더 놀랐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참 많이 닮아있구나.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괴로움은 나만이 특별하고 다르다고, 또는 그래야 한다고 착각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어떤 마음은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 곪고 악취가 난다. 요즘 나는 부러움을 끄집어 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여전히 입 밖으로 내뱉는 건 어려워서 아무도 보지 않을 일기장에 연필로 글을 쓴다. 부럽다는 감정을 평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그냥 바라본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부러움에 맞서지 않고 부러움에 지는 법을 배운다. 그러면서 인정하는 것이다. 어른도 유치하고 구질구질할 수 있다는 것을. 이게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글은 <엘르 코리아> 온라인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