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일 회고
지난해부터 1년 넘게 외주 작업으로 매달 두 명의 교사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 명은 초등, 한 명은 중고등 교사. 인터뷰를 위해 전국에 있는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사각형 교실 어디도 같은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월에 인터뷰했던 두 교사는 한 명은 80년대생 여성 초등 교사, 한 명은 90년대생 남성 고등 교사였는데 두 분 다 공교롭게도 육아휴직 중이어서 북카페에서 만났다. 독특한 이력이나 경력만큼이나 깊은 통찰이 있던 인터뷰였고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작업했다. 매달 마감을 하면서도 바쁘거나 민망하다는 핑계로 일 기록을 잘 안 남겼는데 이제 기억력이 점차 쇠퇴하기도 하고... 부지런히 남겨봐야겠다.
"교사이자 작가이자 그림책 번역가이자 어린이책 연구회 대표까지. 이현아 교사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은 한 가지라고 말한다.
"아이들 곁에서 좋은 관점을 가진 글을 쓰며 살아가는 것."
지난 10월 25일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한 북카페에서 이 교사를 만났다." -인터뷰 인트로 중에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수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어떤 인터뷰는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된다. 이현아 교사 @tongro.leehyeona 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이 교사가 들고 온 검정색 캐리어였다. 인터뷰 촬영에 활용할 책을 들고 와달라는 부탁에 이현아 교사는 자신이 쓴 책, 번역한 책 그리고 ‘어린이 작가’인 학생들과 독립출판을 통해 만든 그림책을 캐리어 한가득 싣고 왔다.
-시간 배분에 신경을 썼는데도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해온 인터뷰이이기에 2시간이라는 인터뷰 시간이 짧았다. 아쉬움을 느끼며 헤어졌는데 이현아 교사가 먼저 메일을 보내왔다. 더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이메일로 얼마든지 추가로 답변이 가능하다고. 서면으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고 덕분에 인터뷰 원고의 방향성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원고 초안을 보내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한 번 더 놀랐다. 이토록 다정한 피드백이라니. 예전에는 인터뷰이의 피드백을 받으면 그게 내가 한 일에 대한 성적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터뷰이의 피드백은 인터뷰이의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임을.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피드백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인터뷰란 '말'을 전하는 매체이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가 아닐까.
-원고를 쓰는 내내 고여있지 않고 흐르는 통로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댓글을 읽어보니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아서 기쁘다.
이현아 교사 인터뷰 보러가기
"21세기 선비처럼 매일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글을 쓴다는 김 교사는 지난해 <선생님의 목소리>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책에는 수학이란 무엇인지, 공부란 무엇인지, 선생이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온 90년대생 교사의 사유가 위트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목소리로 담겨 있다. 학생들의 시험 성적에는 관심이 없지만 매년 수업 자료를 완전히 새롭게 뒤엎는다는 교사, 수학 수업에 누구보다 진심이지만 아이들과 가끔 산책하고 축구하며 '땡땡이' 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교사, '99% 내향인'이지만 꽃꽂이를 배워서 학생들에게 꽃 선물을 해준다는 교사. 김동진 교사를 지난 10월 10일 만났다." -인터뷰 인트로 중에서
나는 수포자였다. 초등학교 산수부터 어려웠던 사람, 나야 나. 학창 시절 내내 수학을 놓고 살다가 고3, 재수 시절에는 수학만 붙들었다(전략적으로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기초 실력이 없으니 수학 성적은 처참했고 스무 살 이후 내 인생에 수학은 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수학 교사를 인터뷰할 때면 커다란 벽을 마주한 듯 심리적 거리감을 느낀다. ‘수학을 좋아하고 잘해서 수학 교사까지 되다니. 저 사람은 나랑 다른 종족이 아닐까.’ 인터뷰어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감하는 능력인데 수학의 즐거움과 기쁨을 이야기하는 인터뷰이 앞에서 어리둥절함을 숨기려 애썼다. 그건 나에게는 너무나 생경한 감정이기에.
-창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김동진 교사와의 인터뷰는 조금 달랐다. 그가 ‘철학 하는 수학 교사’여서일까. 수학은 결론을 내는 과정이 아니라 ‘이것이 왜 답이 될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는 과정이며, 수학을 하는 것은 마치 “아무도 걷지 않은 정신적 오솔길을 나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라는 김 교사의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수학 공부가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끝에 아무것도 없어도 과정 자체가 구원일 수 있는 오솔길을 걷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김 교사는 인터뷰 질문을 할 때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말을 골랐다. 그렇게 나온 대답은 명료하면서도 깊은 통찰이 있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급하게 인터뷰이를 채근할 때가 많은데(녹취록 듣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되새긴 인터뷰였다. 마치 수학하는 과정처럼.
김동진 교사 인터뷰 보러가기
프리랜서 인터뷰어로 일하며 깊게 보고 정확하게 쓰려 합니다. 문의 및 제안은 hong69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