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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Nov 15. 2024

션 베이커와의 인터뷰

<최성운의 사고실험>을 보고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를 보았다. 그의 또 다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나의 첫 에세이집인 <나를 키운 여자들>에도 이야기를 실었을 정도로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아노라>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보다 좀 더 매운맛으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퍼펙트 데이즈>와 함께 <아노라>가 올해의 영화였다. 그러고 보니 두 영화 모두 노동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네. 


-<플로리다 프로젝트><탠저린>도 그랬지만 나는 션 베이커가 빚어내는 시끄럽고 통제할 수 없고 사나운 여자들을 사랑한다.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션 베이커는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데 그 안에 유머와 따뜻한 시선이 숨겨져 있다. 그 따뜻함이 너무 뜨겁지 않고 뭉근해서 그의 작품이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 콘텐츠 중에서 EO 채널의 <최성운의 사고실험>을 자주 본다. 최성운 PD가 인터뷰이에게 던지는 진중하면서도 세심한 질문을 보면서 인터뷰어의 자세에 대해 많이 배운다. 그런 최 PD가 션 베이커를 인터뷰했다고 해서 어떨지 궁금했는데 영화를 만드는 것이 꿈인 사람답게 션 베이커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서 보는 나까지 덩달아 설렜다. 



-흔히 인터뷰는 객관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인터뷰 질문에 인터뷰어의 주관과 해석이 들어갈 때 인터뷰가 더 풍성해지고 고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유한 질문을 던질 때 고유한 답변도 나올 수 있다. 최 PD만의 관점과 해석이 묻어나는 질문도 좋았지만 션 베이커가 그 질문에 답변하고 감응하는 방식이 특히 인상 깊었다. 감동적인 인터뷰는 결코 인터뷰어 혼자 만들어낼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인터뷰는 대화, 말의 주고받음이기 때문이다. 대화에는 말뿐만 아니라 태도도 포함돼 있다.  


-특히 아래 답변은 기억하고 싶어서 메모해 두었다. 


“현실의 누구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지 않아요. 아무리 일이 잘 풀리고 나만의 왕자님을 만났다고 해도 

몇 주 지나면 하루 이틀쯤은 기분이 안 좋을 거라고요. 누구나 인생의 장애물을 만나게 되고 누구나 곤경을 맞닥뜨리게 되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같은 건 없어요. 그게 제가 엔딩을 다루는 방식이에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의 가장 큰 소망은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믿는 거였어요. 오랫동안 저 자신의 첫 번째 지지자가 되어야만 했죠. 저는 제 데뷔작이 완벽함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저는 어렸고 인생 경험도 많지 않았죠. 하지만 계속 나아가라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두 번째는 데뷔작보다 나을 테니까요.  그게 제가 항상 젊은 영화감독들에게 말하는 거예요. 기다리지 말라고요. 당신의 첫 번째 영화는 완벽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시작을 했다는 증거예요. 그게 계속 발걸음을 떼게 만들 거예요."


"그러니까 흥미를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저도 수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됐어요. 수년이 지나서야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줬어요. 아마 4번째 영화를 만들었을 때일 거예요.  

누군가 “진짜는 결국 드러나게 돼있어”라고 했죠. 그러니까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람들은 언젠가 진짜를 알아봐 준다는 거예요. 그동안은 내가 지금 쌓고 있는 필모그래피가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세상에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6번째 영화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만들고서야 사람들이 제 예전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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