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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y 20. 2018

'버닝' 보도 유감... 영화의 국적은 무엇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칸 영화제에서 돌아와'를 떠올리며 

3.9→4.83→3.8...최고평점 '버닝' 황금종려 꿈이 아니다

'버닝' 스크린데일리 사상 최고 평점 3.8, 황금종려상 눈앞?



영화 <버닝>을 둘러싼 국내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올림픽 보도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당분간 그의 이름을 더는 볼 일이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될 때도 그랬다. 함께 이름을 올리는 하루키 덕분에 한일전 양상까지 띠기도 했고. 


최고 평점 신기록이니 뭐니 호들갑을 떨더니 결국 황금종려상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비키 가족>에게 돌아갔다. 우연히 눈에 띈 <일본, 21년 만에 황금종려상...>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왜 영화제까지 국가대항전이 되어야 하는 걸까. 적어도 예술 작품을 다루는 태도와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방식은 달라야 하지 않나.  



칸 영화제에 직접 참석했던 고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느낀 불편함도 그리 다르지 않았나 보다. 더불어 일본 언론의 수준도 한국과 비슷했던 것 같다. 2015년 그가 펴낸 책 <걷는 듯 천천히>에는 고 감독이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후 쓴 글이 실려 있다('칸 영화제에서 돌아와'). 


그래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소감은, 기쁘다기보다는 솔직히 안심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물론 '일본 영화의 쾌거'라는 말을 들으면 싫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보도 방식은 영화제 전반을 반영하지 않는다...중략...거기에는 일본 선수의 메달 획득에만 주목하는 올림픽 보도를 볼 때와 같은 위화감이 있었다.(p.174) 


이어지는 고 감독의 묵직한 질문. 

영화제 행사장에는 국기가 걸리지 않는다. 같은 축제임에도 올림픽과의 다른 점은 거기에 있다. 도대체 영화의 국적은 무엇일까? 일본 영화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얼마나 자명한 것일까?(p.174) 


영화의 국적은 무엇일까, 일본 영화란 무엇일까. 고 감독은 2013년 당시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중국 지아장커 감독의 <천주정>을 예로 든다.

이 작품의 프로듀서는 오피스 기타노의 이치야마 쇼조 씨다. 이번 수상 결과에 대한 일본의 보도 중에서 이치야마 씨를 언급한 것이 별로 없지만, 지아장커 감독의 재능에 반한 그는 데뷔 직후부터 줄곧 그를 지원하고 있다.(p.174-175) 


당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프랑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감독은 튀니지 출신이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미싱픽처>는 프랑스와 캄보디아의 합작영화다. 고 감독은 “민족이나 지역, 언어를 횡단한 이 수상작들이야말로, 현대적인 '다양성'의 체현”(p.175)이라고 말한다.

  

쿡방이 한창 유행했을 때 '쿡가대표'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국내 셰프들이 '요리 국가대표'가 되어 해외 유명 레스토랑을 찾아가 소위 '도장깨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대표 셰프들이 하는 요리는 전혀 한국스럽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이연복 셰프만 하더라도 중화요리 전문가고, 최현석 셰프는 한국에서 이름도 낯선 분자요리를 한다. 외국에서 요리를 배운 유학파 셰프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대표하는 국가란 대체 무엇일까, 한국 사람이 요리를 했다고 해서 한국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요리라는 것에 국적이 있을 수 있을까. 방송을 볼 때마다 복잡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버닝>과 <만비키 가족>을 두고 작품 내용보다는 한국 영화, 일본 영화라는 국적에만 집착하는 보도를 보며 '쿡가대표'를 떠올렸다. 요리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언어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매체다. 고 감독의 전작인 <걸어도 걸어도>는 일본보다 유럽에서 더 많은 관객을 모았고. 나 역시 국내 어떤 감독보다도 고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이창동 감독의 영화도 좋아하지만^^). 


그의 영화를 볼 때 감독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 영화에 나오는 이들이 한국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고 감독은 말한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차이를 가볍게 넘어 모두가 주민으로 연결된다는 이 풍요로움, 그 풍요로움 앞에서 현재 사는 장소는 의미를 잃는다"고.(p.175)


고 감독의 글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작품이나 감독이 무엇과, 누구와 혈연을 구축해 가는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출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p.176-177) 


이어지는 뼈 있는 한마디. 

행운인지 불행인지, 그 출생과의 연결에 가장 의심을 갖지 않는 것이 일본과 일본 미디어, 일본 영화인지도 모른다.(p.177)

한국 언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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