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행]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
사누르를 알게된 건 우연히 블로그를 검색하다였다. 서양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은퇴하고 오는 한적한 곳, 아이들 데리고 유모차 끌고 다니기 좋은 곳이라는 설명보다 내 마음을 잡아끈 건 ‘우붓이 초록색이라면 사누르는 파란색’이라는 표현이었다.
파아란 바다가 있는 조용한 마을. 그곳이라면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누르에서 열흘간 머물다 우붓으로 가는 일정을 짰다. 한 달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문 곳이었다.
쉬고 싶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게 되는 앱을 삭제했다.
제일 먼저 인스타그램, 이게 있으면 계속 인스타그램에 전시할 사진을 찍고 있을 게 뻔했다.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비교하고 평가하고… 미련 없이 지워버렸다. 논란 많고 광고 많은 페이스북에서도 로그아웃 했다. 업무 때문에 알람을 수시로 받았던 네이버, 브런치. 메일 앱도 싹 지워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카카오톡도 삭제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이 어린이집 관련 연락은 받아야 했다. 대신 카톡 메시지는 꼭 답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읽씹’했다. 아이에게 비상용으로 영상을 보여줘야 하니 유튜브도 남겨뒀다.
사누르에서는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뭘 해야 할지 내일 뭘 해야 할지도.
아침 6시쯤 되면 아이는 번쩍 눈을 떴다. 침대에서 폴짝 뛰어 내려 방문을 가렸던 커튼을 활짝 걷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침이 밝았어.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책 한 권 챙겨 마당으로 나간다. 집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고 책을 펼쳤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초록 나무와 파란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발리는 늘 여름이지만 4월은 건기라 아침저녁에는 그리 덥지 않다. 자연 바람만으로도 충분말다. 책끝을 접고 밑줄 그으며 내용을 곱씹는다.
잠시 후, 방에서 남편과 놀던 아이가 책 한 권을 들고 따라 나온다. “엄마, 비행기 책 읽어줘.” 공항의 모습을 세세하게 그린 플랩북이다. 아이는 비행을 준비하는 분주한 활주로의 모습을 그린 페이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달라 한다. 노란색 비행기를 보고는 “우리가 탔던 비행기랑 꼭같네” 말한다.
나란히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앙봉이 출근한다. “굿모닝” 우리에게 밝게 인사 건네고는 빠르고 야무진 손으로 풀을 다듬고 뜰채로 수영장에 떨어진 잎과 꽃을 걷어낸다. 아이는 맨발로 정원을 가로질러 가 몇 발짝 떨어져 앙봉을 지켜본다. 앙봉과 함께 물고기 밥을 주기도 한다.
아침 식사는 빵 두 조각, 에그 스크램블, 수박이 전부지만 아이는 앙봉이 차려준 아침을 정말 좋아했다. 매일 먹는 똑같은 메뉴가 지겨워 밖에 나가 먹자고 해도 앙봉 아저씨가 해 준 게 맛있다고, 집에서 먹을 거라고 소리쳤다. 아침 먹는 사람이 많은 날에는 앙봉 아저씨 힘들다고 겨우 설득해서 집 근처 브런치 가게로 향했다. 맛 좋고 건강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10분 거리에 몇 군데나 있었다.
우리가 열흘간 묵었던 숙소는 에어비앤비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당, 수영장, 주방이 있고 방은 4개로 각각 독립돼있었다.
우리는 발리 전통 가옥에 묵었는데 천장이 매우 높고 목재로 지어졌다. 밖에서 보면 한국 초가집과 비슷한 형태다. 숙소 전체에 밀림처럼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벌레가 많았는데 다행히 앙봉과 남편이 방역을 열심히 한 덕분에 집안까지는 벌레가 들어오지 않았다.
앙봉은 이 숙소의 관리인이다. 작고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친절하고 성실했다. 숙소에서 오토바이로 5분 거리에 산다는 앙봉은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집 구석구석을 돌봤다.
수영장이 딸려 있는 발리 에어비앤비 후기를 보면 수영장은 있지만 관리가 전혀 안 돼서 들어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우리가 묵었던 수영장은 매우 깨끗했다. 그리고 정말 예뻤다.
수영장에는 커다란 꽃잎을 가진 나무가 드리워져 있었다. 초록초록한 나무들 사이로 파란 수영장, 코랄빛 꽃잎.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됐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아이와 수영장에 들어가서 놀았다. 남편과 내가 번갈아 가면서 아이를 보고 한 명은 선베드에 누워 자거나 책을 읽었다. 수영을 마치고는 집 뒤편에 있는 야외 샤워장에서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몸을 씻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숙소에서 5분 떨어진 거리에는 사누르 비치가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로 나갔다.
입이 딱 벌어지는 화려한 바다는 아니다. 파도가 약하고 물이 얕아서 저 멀리 서 있는 사람도 무릎까지밖에 물이 안 차있다. 목욕탕에라도 온 것처럼 바다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이 귀엽다. 아이들 놀기에도 딱이다.
우리는 매일 유모차를 끌고 해변을 산책했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 탄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며 산책로를 지나갔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p.180
나는 사누르에서 노바디가 되고 싶었다. 관광객들로 가득찬 도시에서 아무것도 아닌 관광객 중 한 명이 되고 싶었다.
사누르에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다. 중국인도 없었다. 일본인은 몇 번 봤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건 택시기사뿐이었다. 그마저도 인사치레였다. 나를 닮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동네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한국에서 뭘 했는지 내가 어떤 고민을 안고 이곳에 왔는지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할 건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고 싶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든 섬바디가 되려고, 타인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으려 발버둥 쳤다. 타인의 시선,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아둥바둥 했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것들에 전혀 민감하지 않은 척 했지만(그건 또 자존심이 허락 안 하니까). 조금만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 선을 벗어나도 불안해 했다.
한 달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 가족은 여러모로 위기였다. 남편은 상상을 초월하는 과노동을 하느라 바빴고, 나는 나대로 커리어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와중에 아이도 돌봐야 했다. 세 돌을 앞두고 있는 아이는 좀처럼 혼자 놀지 않았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놀면서도 마음은 늘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여행을 앞두고 우리는 보름새 세 번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나는 소중한 친구를, 남편은 사촌동생을 잃었다. 여행 준비는 하지도 못하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글 한 줄 쓸 수 없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게 다 부질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루 빨리 떠나고 싶었다.
밥 먹고 수영하고 자고 걷고 책 읽고 수영하고 걷고... 가볍고 단순한 일상. 이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될 필요 없는 사람.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