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행] 수영을 사랑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
수영을 다시 하게 된 건 아이 때문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와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시작은 2년 전 호텔 수영장이었다.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는 아이와 물놀이 할 때는 래쉬가드가 필수라고 말했다. 엄마아빠들 중에 래쉬가드 안 입은 사람 아무도 없다고. 요즘은 래쉬가드 안 입으면 민폐라고(안구 테러…).
노출이 심하지 않은 비키니 수영복과 래쉬가드 수영복 두 세트를 준비했다. 남편도 제2의 눈을 가릴 수 있는 집업 래쉬가드를 급히 주문했다.
막상 수영장에 가보니 비수기여서 그런지 수영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래쉬가드 입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남편도 나도 멋쩍어하며 래쉬가드를 벗었다.
남편도 나도 수영을 할 줄 알았다. 나는 대학생 때 동네 체육관에서 수영을 배웠고, 남편은 무려 아기 스포츠단 출신. 초등학교 때까지도 수영장에 자주 다녔단다.
남편과 연애시절을 포함해 10년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함께 수영을 해본 적은 딱 한 번. 신혼 여행 갔을 때였다. 그때도 비키니 수영복이 민망해서 제대로 수영을 즐기지 못했다. 뱃살과 엉덩이, 허벅지가 자꾸 신경 쓰였다. 빈약한 가슴은 덤.
수영장이 있는 숙소에 가서도 수영장 이용은 안 했다. 수영복이 없으니까. 수영을 안 하니까 수영복이 필요 없었고 수영복이 없으니까 수영을 안 했다.
막상 수영을 다시 시작하니 정말 좋았다. 파아란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가는 느낌. 물이 흘러가는 소리, 그 물과 내 몸이 만났을 때 만들어내는 마찰음이 경쾌했다. 배영 자세로 귀를 반쯤 물속에 넣고 떠 있으면 세상 모든 근심으로부터 얇은 차단막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물 속에서만큼은 몸치인 내 몸도 가볍게 느껴졌다.
수영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건 태국 여행에서였다. 방콕 호텔에 딸린 야외 수영장에서 하루에 두 번씩 매일매일 수영을 했다. 햇살은 뜨거운데 물 속에 들어가면 하나도 덥지 않았다. 수영하다 선베드에 앉아 땡모반과 맥주 한잔. 물 위에 둥둥 떠 있으면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이 눈에 담겼다. 이대로면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속에서는 아이를 보는 것도 훨씬 수월했다. 한 명씩 번갈아 아이를 보고 다른 한 명은 수영을 하거나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잠을 잤다. 수영 하는 날은 아이도 우리도 단잠을 잘 수 있었다.
한달 여행지를 정할 때 남편은 몇 가지 조건을 정했다.
1. 쉴 수 있는 곳
2. 수영할 수 있는 곳
3. 한국이 아닌 곳
한국인들이 유난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동시에 타인을 몰래 훔쳐 보는 당사자여서 그런지 한국 해변이나 수영장에서는 맘 편히 수영할 수 없었다. 타인의 몸, 내 몸을 계속 의식하게 됐다. 남편은 래쉬가드 없이 편하게 수영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발리 사누르는 완벽한 휴식처였다. 내게 사누르 해변은 비키니 입은 할머니, 삼각팬티 수영복 입은 할아버지로 기억된다.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팔짱 끼고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고,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는 곳.
발리에 가기 전, 어떤 수영복을 들고갈까 고심 또 고심했다. 래쉬가드는 싫고 그렇다고 비키니는 부담스럽고. 요즘 유행하는 모노키니를 사기로 했다. 아래 위가 붙어 있는 원피스 수영복.
수백번의 클릭질과 한번의 반품 끝에 수영 선수가 입을 것 같은 매끈하고 타이트한 수영복을 골랐다. 손바닥만한 수영복에 힙겹게 몸을 욱여넣고(탄성이 좋아서 다행…) 사누르 해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비키니 안 입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원피스 수영복은 불편했다. 특히 화장실 갈 때. 애벌레가 껍질 벗듯 낑낑 대며 수영복을 갈아 입었다. 그냥 비키니를 살 걸, 몇 번이고 후회했다.
우리는 수영복이라고 하면 노출과 핫바디를 떠올린다. 뭔가 야한 것 같고 민망한 것 같고 몸매 안 좋은 사람은 입으면 안 될 것 같고... 어린이 수영을 하다 멈춘 것도, 더 이상 수영복을 입지 않고 수영장에 가지 않게 된 것도 수영복은 민망하다는 자각이 생기면서부터였다. 내 몸이 수영복 입을 정도로 날씬하지 않으며, 수영복 입을 수 있는 몸은 따로 있다는 생각.
한 달 여행하며 발리와 싱가폴의 수많은 해변과 수영장을 열심히 관찰한 결과, ‘핫바디’를 가진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도 꼽기 힘들었다(내가 다 봤다^^). 빈약하거나 늘어진 가슴, 불룩한 뱃살, 탄력없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진 사람이 절대 다수였다. 우리가 목욕탕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사람들. 그 사람들 대부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수영복(주로 비키니)을 입고 있는 모습은 솔직히 충격이었다.
그들에게 수영복은 그저 수영할 때 입는 옷일 뿐이었다. 걸리적거리지 않고 가벼운 옷. 그리고 선탠하기 좋은 옷. 이곳에서 내 몸매, 내 수영복에 신경 쓰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뒤늦게 수영의 맛을 알게 된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한 달 여행의 마지막, 우리는 친정엄마, 아빠와 싱가폴에서 만났다. 엄마 환갑 기념 여행이었다. 엄마에게 수영복을 챙겨오라고 했다.
싱가폴에 가기 전, 나는 수영복을 두고 또 고민했다. ‘엉덩이랑 허벅지가 민망한데 수영복 바지를 하나 살까…’ 남편도 장인장모님 앞에서 상의탈의 하는 건 어쩐지 부담된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 수영복은 추가로 구입하지 못 했다. 센토사섬 비치클럽에 도착한 순간, 나는 다시 직감했다. 여기서도 비키니 안 입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겠구나. 하물며 래쉬가드라니. 5월의 싱가폴은 너무 덥고 습했다.
엄마와 탈의실에 들어갔다. 엄마는 여기 오느라 수영복을 새로 샀다고 했다. 스포츠 브라 같은 상의와 반바지 같은 하의를 입은 엄마는 위에 래쉬가드를 덧입으려 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래쉬가드 벗어. 안 입어도 돼. 여기 한국 아니잖아.”
센토사 섬에 있는 비치클럽에 나, 남편, 아이, 엄마, 아빠 그리고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남동생까지 모두 6명이 자리 잡았다. 각자 챙겨온 래쉬가드는 모두 가방에 넣었다. 해변이 바로 앞에 보이는 수영장에 우리는 단체로 몸을 담궜다.
엄마아빠와 이렇게 수영장에 와본 게 얼마 만이더라. 아니 수영장에 와본 적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수영복 입은 엄마 모습을 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수영도 수영복도, 우리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으니까.
오랜만에 수영한다는 엄마는 온 수영장에 물을 다 튀기며 자유형 연습을 했고(죄송해요...) 아빠는 목욕탕에라도 온 것처럼 편한 자세로 물에 떠 있었다. 놀아줄 사람이 많으니 아이는 완전 신이 났다.
우리는 라임을 살짝 띄운 맥주를 한 병씩 들었다. 다들 연신 너무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에는 유난히 물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나온다. 영화의 마지막, 아버지는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강을 헤엄쳐간다. 물 속에 있을 때면 나는 내가 빅 피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 속에 있는 순간이 행복하다. 아이 때문에 잃은 것도 못하게 된 것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얻은 것도 많다. 수영도 그 중 하나다.
수영복 입는 게 부끄러워 수영을 계속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인생이 아까웠을까. 이런 즐거움을 알 수 없었다면. 수영을 하지 않고 보냈던 인생의 절반이 아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