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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Sep 23. 2019

교보문고에서 신간 브리핑을 했다

별 걸 다 하는 저자 생활

광화문 교보문고의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인구밀도에서 오는 거대함에 압도돼버렸다. 평일 낮인데도 서점에는 사람이 많았고, 사람보다 더 많은 책이 곳곳에 진열돼 있었다.

반차를 내고 교보문고를 찾은 건 신간 브리핑 때문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는 매달 출판사 신간 브리핑 PT와 투표를 통해 ‘이달의 신간’을 뽑는다.

이렇게 뽑힌 신간은 ‘기대되는 신간’이라는 이름으로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에 진열된다. 따로 큰 광고비를 쓸 여력이 안 되는 중소형 출판사에게는 놓치기 어려운 기회다. 마더티브가 책을 낸 출판사도 MD 미팅을 통해 PT에 참여하기로 했다.

출판사 대표님이 저자가 직접 발표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을 때는 솔직히 ‘이것까지 저자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첫 책이었던 <마을의 귀환>을 냈을 때도 이달의 신간으로 선정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출판사 마케터가 브리핑을 했고 나는 그저 결과를 통보받았을 뿐이었다. 요즘에는 저자들이 신간 브리핑에 많이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만큼 출판 경쟁이 치열해졌음을 실감했다.  



도전! 3분 PT


늘 말보다는 글이 편했다. 대학교 때는 발표 수업 없는 수업만 골라 들었고, 기자 생활하면서도 방송은 무조건 거절했다. <마을의 귀환> 출간 이후 북토크에서 처음으로 PT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굴욕) 영상이 아직도 인터넷에 남아있는데 그걸 본 친정 엄마가 전화 와서 한숨 쉬며 하는 말.

“진아, 말이 너무 빠르다…”


나와 에디터 인성


마더티브에서는 초반에 텍스트뿐만 아니라 유튜브 콘텐츠도 만들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남편이 한 말.


“부인, 입에 모터 달았어? 화난 거 아니지?”


휴. 그래도 어쩌겠는가. 책을 냈으니 책을 팔아야지.

PT 시간은 3분. 원고를 작성하고, PPT를 만들었다. 나는 기술을 모르는 기알못이므로… PPT 작성은 마더티브 에디터 인성에게 부탁했다.  

브리핑을 준비하면서 목표는 두 가지였다.

1. 3분 안에 끝내기
2. 떨지 않고 말하기

평소보다 몇 톤은 높아지는 하이톤의 목소리, 턱을 치켜든 경직된 얼굴, 초점 없이 떨리는 눈동자, 아웃사이더도 울고 갈 속사포랩… 이번에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간 수많은 발표를 망쳐본 결과,


3분 분량 PT인데 연습했을 때 3분이 넘는다면 실전에서는 무조건 3분이 넘었다. 실전에서 애드리브가 나올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까.

제한시간이 넘는 순간부터 순발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당황하게 되고, 결국 우왕좌왕하다 발표를 끝내게 된다. 허탈함과 민망함은 온전히 내 몫.

이번에는 3분을 넘기지 않도록 연습했다. 먼저 스톱워치를 켜놓고 원고 분량을 줄여 나갔다. 길을 걷다가도 애를 보다가도 연습 또 연습.


외운 느낌이 나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자연스럽게 발표할 수 있는 역량이 안 되기에… 툭 치면 탁 나올 정도로 일단 외우기로 했다. 그래야 긴장해서 발표 내용을 까먹는 참사를 예방할 수 있으니.

실전처럼 PT를 넘기면서 연습하고, 스마트폰으로 발표 영상을 셀프로 촬영해 보기도 했다. 시선을 끌기 위해서 중간중간 출산 사진과 개인 에피소드를 넣었다.


분명 안 떨리는데 손이 덜덜덜


교보에 비치된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발표 시간을 1시간 정도 앞두고 교보문고에 도착해 매대를 둘러봤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들의 이름 앞에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특히 에세이 코너에 가면 괜스레 마음이 작아진다.

2013년, 2016년, 2019년. 공교롭게도 3년에 한 권씩 책을 내게 됐다. <마을의 귀환><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 그리고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까지. 세 권 모두 기획단계부터 제1저자로 참여했다.

표지에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낸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다음 책은 단독 저서를 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아니 바람이라고 하기에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출간 계약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괜히 질투가 날 정도로 점점 욕망이 커진다.  

‘내 책도 언젠가는 여기에 놓일 수 있을까’ 에세이 책들 사이를 기웃거리다 발걸음을 돌렸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또 부러워하고 말았네.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최대한 책이 안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막간을 이용해 또 연습.

브리핑 시간을 5분 앞두고 세미나실에 들어갔다. 출판사 대표님이 응원차 도착해 있었다. 생각보다 협소한 공간에 사람이 북적북적.


안 떨린다, 안 떨린다...


20개 정도의 출판사가 경쟁 PT를 하고 각 출판사와 교보문고 관계자의 투표를 통해 9권이 이달의 신간으로 선정된다고 했다. 거의 50%. 해볼 만한 확률이다. 나는 세 번째 순서였다.

마인드 컨트롤 덕분인지 생각보다 브리핑은 떨리지 않았다. 한 문장을 빠뜨리기는 했지만 준비했던 이야기를 거의 다 하고 내려왔다. 별로 안 떨리네, 하며 펜을 들었는데 손이 덜덜덜… 그래도 무사히 해냈다. 잘했다. 잘했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른 출판사의 브리핑을 들었다. 생각보다 저자가 직접 참여한 경우가 많았고 1인 독립 출판을 한 저자도 있었다. 책의 종류도 에세이, 인터뷰, 자기 계발서, 역사책, 어린이책, 소설… 매우 다양했다. 읽고 싶은 책도 더러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점수를 주는 구조이다 보니(출판사는 각 5점, 교보 관계자는 각 20점) 다들 "잘 부탁드린다""점수 좀 잘 달라”고 마무리 멘트를 했다(나도 할 걸 ㅠㅠ). 나도 나름의 기준으로 점수표를 매겼다.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돼요


오후 3시에 시작된 PT는 4시 10분쯤 끝났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점수를 집계해 30분에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속전속결이다.


출판사 대표님과 함께 커피 한 잔을 했다. 마케팅 얘기, 북토크 얘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대표님은 다음번에는 단독 저서를 내라고 했다.

다시 세미나실에 돌아오니 신간 브리핑 선정 출판사 이름 9개가 화면에 떴다. 우리가 책을  출판사 이름이  번째로 떴다. 좋은 점수를 받은 모양이었다.

아이 하원 때문에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발표를 무사히 마친 것도 이달의 신간에 선정된 것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우리 책이 광화문 교보 매대에 전시되다니!!! 마티 멤버 단톡방이 들썩였다.

흥분이 가라앉자 얼마 전 읽었던 한 칼럼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러나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돼요” 하는 푸념 아래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다. 나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관계자도 그렇다. 우리가 점점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존재론적 위기감. 애써 아닌 척해봐도 콘텐츠와 책은 다른 거고, 크리에이터와 작가도 다른 거다. 책은 글자로 돼 있고, 작가는 글자로 작업한다. 책의 본질이 굿즈나 토크에 담길 리도 없다. 우린 다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장강명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돼요’

 


책을 낼 때마다 책을 내는 일보다 파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걸 느낀다. 아무리 공들여 책을 내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독자가 있어야 저자도 존재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책을 냈으니 책을 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조금이라도 더 주목 받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노출되기 위해.


그런데도 계속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왜 일까. 나를 포함해 그저 책이 좋아서 책을 만든 사람들은 왜 여기에 나와 긴장된 얼굴로 서로의 점수를 갈구하며 잘하지도 못하는 PT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라도 거대한 서점 매대 한편에 노출될 기회를 얻었으니... 배부른 푸념인 걸까.  


이토록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나는 왜 자꾸만 내 책을 내고 싶은 걸까. 대체 책이 뭐길래.



그건 그렇고


이번주 토요일(9월 28일)에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출간 기념 마더티브 북토크를 합니다.


마티 멤버 모두 만날 수 있고, 애 데리고 와도 돼요. 푸짐한(?) 경품까지. 책 좋아하고 글 좋아하는 엄마들 대환영!!!(기승전-홍보 인생).


신청은 http://bit.ly/2kgqF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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