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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r 02. 2020

그 부부는 왜 결혼 6시간 만에 헤어졌을까

[주영에게] 습관처럼 최악을 상상하게 될 때가 있어

코로나 지옥이 끝난 줄 알았는데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네. 확진자 수 세는 게 무의미해졌고, 나도 지난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어. 다행히 어린이집 긴급 돌봄이 돼서 꾸역꾸역 보내고는 있는데 너무 답답한 날들이야. 날날이는 친구들이 보고싶대.


그래도 봄은 오고 있어. 주말에는 친정엄마가 할머니 시골 집에 매화 꽃이 폈다며 사진을 보내줬어.


올 겨울은 꽤 힘들었던 거 같아. 2020년은 내가 사회 생활이라는 걸 시작한 지 10년 되는 해야. 날짜도 기억나. 2010년 1월 25일.  


경력 10년이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여전히 불안하고 막막한 건지.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도, 하고 있는 것도 없는 것 같았어. 내가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았지(그놈의 쓸모가 뭐길래 나는 이렇게 쓸모에 집착하는 걸까.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들 저만치 멀리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를 맴맴 돌고 있는 기분이었어. 불안하고 조급해졌지.



대략 이런 심리상태랄까. 밥솥에 비친 나.



글은 써서 뭐하나, 사람은 만나서 뭐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이 몰래 와인을 야금야금 마시고 밤에 잠을 설쳤어. 맵고 짜고 달고 기름진 음식을 매일 먹었어.


운동? 전혀 하고 싶지 않았어. 몸을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는 걸 알지만 마음이 너무 무거울 때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더라고.


몸은 정직해서 바로 신호가 오더라. 설날 연휴에 남편과 나란히 병원에 누워 비타민 수액을 맞았어. 얼마 후 목에 담이 심하게 와서 급기야 출근까지 못하는 지경이 되니까 내가 정말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었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거, 너무나 잘 알고 있지. 그런데 이 순간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을 때가 있잖아.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영화 <체실 비치에서>


<체실 비치에서>는 그런 두려움이 어떤 파국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영화야.


영화에는 시얼샤 로넌이 막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떠난 여자로 나와. 꿀 떨어지는 표정으로 다정하게 체실 비치를 거닐던 부부는 예상치 못했던 위기를 맞게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플로렌스는 그 문제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해. 우린 절대 행복해질 수 없고, 점점 불행해질 거라고. 가망이 없다고.


그렇다고 남편 에드워드가 플로렌스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느냐. 전혀 그렇지 못해. 본인 자존심 다친 것만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씩씩대지. 플로렌스도 자신의 진짜 상처는 드러내지 않고.


누구보다 지적으로 충만하던 커플은 자기 입장만 내세우다 허무하게 파경을 맡게 돼. 바보 같은 말다툼을 하고는 진짜로 헤어져 버린 거야. 결혼한 지 6시간 만에 말이야.


안타까웠어. 저마다 사정이 있지만 처음은 누구나 서툴고 두려운 건데. 이 또한 지나갈 건데. 저게 저렇게까지 할 일이야?  



비 내리는 하원 길



주영이 너한테 말한 적 있던가? 내가 아이 때문에 벽에 머리 박은 적 있다고.


날날이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밤에 정말 많이 깼잖아. 회사 일만 해도 녹초가 되는데 퇴근하면 또 애 봐야 하고.


애는 밤마다 계속 깨고. 정말 괴롭더라. 이 밤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어. 억겁의 세월 같았지(국어 교과서 아님…).   


그럴 때면 습관처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돼. 아이는 영원히 잘 못 자고 나는 밤마다 좀비가 되겠지. 단 하루라도 편히 자는 날이 오기는 할까. 이것밖에 안 되면서 왜 아이를 낳았을까. 나는 엄마 자격이 없어. 그냥 사라지고 싶다.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


아이가 또 잉 하고 깨서 울던 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짐승처럼 울부짖으면서 뒤통수를 벽에 몇 번이고 박았어(막장 드라마 아님…). 아이를 달래던 남편은 깜짝 놀랐지. 나는 원래 아픈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이상하게 아프기보다는 시원하고 후련한 기분이 들더라. 몇 번이고 머리를 박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날날이가 그려준 엄마



3년이 지났고 날날이는 5살이 됐어. 다행히(?) 그 후로는 한번도 머리를 박은 적 없어. 통잠은 신화 속 단어인 줄 알았는데 날날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됐어. 애는 정작 잘 자는데 나만 자다가 몇 번씩 깨.  


얼마 전 하원하는데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거야. 제 몸만한 우산을 든 날날이가 그러더라.  


“엄마, 나 아빠가 걱정돼. 비 오는데 괜찮을까?”

“사무실에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친구들이랑 선생님들이랑 형님들 동생들 다들 괜찮을까.”

“그럼. 날날이처럼 우산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날날이는 신발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웅덩이에서 폴짝 뛰었어. 그 모습이 넘 예뻐서 한참 웃었어.


이제야 나는 아이에게 구원받는다는 느낌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 여전히 육아는 버겁지만 하루하루 아이가 크는 게 눈물날 만큼 아쉽기도 해. 3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지.


아마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도 몰랐을 거야. 이 또한 지나가고, 자신들도 어떤 식으로든 변하리라는 걸. 그 무엇도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이번 코로나 사태도 분명 끝이 있겠지?


우리 일단은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며 순간순간을 음미하자. 다가오지도 않은 불행이 우리를 집어삼키게 만들지 말자. 생각보다 인생은 짧을지 몰라.  



-2020년 3월 2일. <암리타>가 궁금한 현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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