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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ul 29. 2020

엘베 없는 빌라 5층과 코로나

우리는 그저 피해자이기만 한 걸까

나 정도면 괜찮다 생각했다. 재택근무할 수 있고, 아이도 긴급 돌봄 보낼 수 있으니까. 아침 시간 남편이 아이 챙겨서 어린이집 데려다주면 하원 시간까지는 온전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메신저와 화상회의만으로도 대부분의 업무가 처리 가능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싶었다. 필요한 건 모두 클릭 한 번이면 주문 가능했고 하루가 멀다고 식자재와 생필품이 문 앞에 도착했다.


마스크 구하기 어려운 것 빼고는 딱히 생활이 불편한 건 없었다. 온종일 집에만 있느라 답답한 걸 제외하면. 스트레스 푼다고 인터넷 쇼핑하느라 지출이 늘어난 걸 제외하면. 안 움직이고 먹기만 해서 기껏 산 옷이 안 맞는 걸 제외하면. 새 옷 입고 밖에 나갈 수 있을 때 즈음에는 이미 더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걸 제외하면.



4층과 5층 사이


@unsplash


택배 기사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본 건 며칠 전이었다. 택배 기사는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과 5층 사이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새벽 2시였다. 노조에서는 코로나로 늘어난 택배 물량이 원인이라고 했다. 숨진 기사는 시간당 20건의 택배를 배달해야 했다.


얼마 후, 엘베 없는 5층이 택배 기사들에게 얼마나 악명 높은지, 엘베 없는 5층에 살면서 배려 없이 무거운 물건 시키는 사람들이 많은지 성토하는 기사가 포털에 떴다.


누군가는 5층에 살면 택배비를 더 내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건 택배사나 배송사가 신경 쓸 일이지 왜 소비자가 신경 써야 하냐고 했다. 누군가는 5층 사는 사람은 1층까지 내려와서 직접 택배를 찾아가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5층에 몸 불편한 노인이 살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다. 애도는 없고 남 탓만 난무했다.


기사를 읽다 현관에 쌓여 있는 택배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가족이 사는 곳도 엘베 없는 빌라 5층이었다. 택배 기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다, 아니 누구는 엘베 없는 빌라 5층에 살고 싶어서 사나. 코로나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택배를 많이 시켰겠어. 서럽고 억울했다.



새벽 3시의 택배



새벽 3시. 택배 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자다 깨서 스마트폰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털썩, 문밖에 택배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택배 상자가 바람을 가르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모두 잠든 깜깜한 밤, 누군가 가쁜 숨을 참으며 다음 배송 장소로 급히 달려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아, 이 시간에 배달을 하는구나. 새벽 배송의 편리함에 감탄하면서도 그 배송을 누가, 언제 하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 없다. 한참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문 앞에는 늘 택배가 있었다. 문 앞이 깨끗한 날이면 아이는 “엄마 오늘은 왜 택배 없어?” 물었다. 5층에 사는 건 나였지만 우리 집까지 올라오는 계단을 가장 많이 오르내린 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택배 기사들이었다.


코로나로 택배 주문은 급격히 늘었다. 재택근무하고 있으면 탁탁 타다탁 무게 실린 재빠른 걸음소리, 곧이어 문밖에 택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쌓여가는 택배 박스와 아이스팩을 보면서 죄책감 느끼는 것도 잠깐. 습관처럼 또 택배를 주문했다.


다른 집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손쉬운 클릭이 쌓였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이건 우리가 만든 세상이라고



택배 기사의 죽음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은 건 얼마 전 본 드라마 때문이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드라마 <이어즈&이어즈>.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등장과 함께 남매들의 삶은 위태로워진다. 일자리를 잃고, 집을 잃고, 연인을 잃고, 공기나 물처럼 당연한 줄 알았던 인권은 무참히 짓밟힌다.


물론 이 모든 게 정치인 한 사람 때문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위기, 민주주의의 몰락, 기술발전의 폐해, 환경오염. 모든 것은 연결돼있고 개인의 일상을 뒤흔든다. 중국 한 도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은 것처럼 말이다.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 라이언스가 대가족의 할머니, 뮤리얼은 말한다. 이건 우리가 만든 세상이라고("This is the world we built.").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앉아서 종일 남 탓을 해. 경제 탓을 하고 유럽 탓을 하고 야당 탓을 하고 날씨 탓을 하며 광대한 역사의 흐름을 탓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핑계를 대지. 우린 너무 무기력하고 작고 보잘것없다고 말이야. 그래도 우리 잘못이지."


@unsplash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가 코로나의 근본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류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은 계속, 더 자주 창궐할 거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 자신을 코로나의 피해자라고만 생각한다. 외국인을 혐오하고 확진자의 신상과 사생활을 털어 막장 소설을 쓰고 마스크 안 쓴 사람, 나들이 나온 사람을 비난한다. 그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른 채. 자신들은 그저 무고한 피해자인 것처럼.


우리는 그저 피해자이기만 한 걸까. 이 재난에 내 책임은 없는 걸까.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가정보육 안 해도 되니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은 걸까. 내 괜찮음은 누구에게 빚지고 있는 걸까. 나는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까. 저 많은 택배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다른 택배 기사들은 오늘도 무사한 걸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이 글은 23인의 코로나 고군분투기 <un불행배틀>​​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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