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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ug 18. 2020

더는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

[주영에게] 서울살이 16년, 그 애증의 시간

“선배에게 서울은, 그리고 고향은 어떤 의미인가요?”


편지를 받고 단숨에 답장을 완성했다 다시 새창을 열었어. 그리고 이 영화를 찾아봤어.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 시얼샤 로넌(영화 <체실 비치에서>와 <레이디 버드>의 그 배우!)이 나오는 <브루클린>. 서울과 고향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 영화를 꼭 다시 봐야 할 것 같았거든.


식료품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에일리스는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 아메리칸드림을 찾아서. 커다란 배 위에 올라 배 아래에 있는 엄마와 언니를 바라보던 에일리스의 비장한 표정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머나먼 미국으로 향하는 바다 위, 에일리스는 뱃멀미 때문에 죽다 살아나. 이런 끔찍한 항해를 여러 번 경험해본 것 같은 또 다른 이민자 여자가 에일리스를 정성껏 돌봐줘. 입국심사를 받으러 가는 에일리스에게 곱게 화장을 해주면서 여자는 이렇게 충고해.


“똑바로 서고 신발을 잘 닦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기침은 하면 안 돼. 무례하게 굴거나 밀어붙이지 말고 너무 초조해 보여도 안 돼. 미국인같이 생각해. 어디로 갈 건지 알아야 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진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탄 버스 안에서 울면서 아빠의 전화를 받던 날을 기억해. 그때 아빠가 서울 사람들은 눈 뜨고도 코 베어가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했던가. 아님 혼자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가 가물해.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복잡한 버스 노선도를 보고 또 보면서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이 선명해.


그 후로 오랜 시간 서울역에 도착하면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어. 정신 똑바로 차리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내가 나를 지켜야 해.


대학은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반짝여 보이는 건 모두 서울에 있었으니까. 재수 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후 엄마와 함께 하숙집을 구하러 가던 날을 기억해. 달동네 허름한 자취촌 언덕을 오르면서 엄마는 무슨 서울이 이렇냐고 했어. 엄마도 서울은 부산과 전혀 다른 곳인 줄 알았나 봐.


서울에서 처음 한강을 보던 날을 기억해. 뭐야. 이게 한강이야? 평생 보면서 자라온 부산 바다에 비하면 한강은 너무 밋밋하고 시시했어. 돌이켜 보면 서울의 모든 것이 그리 반짝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 내가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도.


20년 동안 비행기 한번 타본 적 없는 나와는 달리 대학에는 어릴 때부터 해외에 살다 온 친구들이 많았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친구도, 경험이 아니라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친구도 좀처럼 찾기 어려웠어. 아무리 사투리 억양을 완벽하게 고치고 엄마가 사준 새 옷을 입어봐도 자꾸만 주눅이 들었어. 그때 처음으로 내 계급을 깨달았어.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장학금과 생활비를 위해 학교-자취방-알바를 전전했던 기억만 나. 서울역에 처음 도착하던 그 날처럼 이 악물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눈물을 참으며. 열심히 또 열심히. 다행히 나처럼 스무 살 때까지 비행기 한번 안 타본 남자 친구(현 남편)가 있어서 지질한 20대를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어.



투머치 서울


많은 추억이 남아있는 광화문@홍밀밀


오직 서울만 꿈꾸던 10대, 서울이 힘겨웠던 20대를 지나 30대가 돼서는 지독히 서울을 떠나고 싶었어. 서울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지방이나 해외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동경하고 수집했어. 경제적으로는 가난해지고 몸은 힘들어져도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도 그들처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몇 년 전,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를 쓰면서 1인 가구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청년과 인터뷰한 적 있어. 지역 출신 뮤지션이었던 그가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나. 서울에는 좋은 게 너무 많다고. 기회도 그만큼 많지만 너무 잘하는 사람도 많아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 그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자꾸만 하고 싶지 않은 걸 하게 된다고.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었어.


서울은 모든 게 투머치야. 서울에 있으면 나는 지나치게 노력하게 돼. 성과지향적 인간인 나는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인정을 갈구해. 필요 이상으로 나를 증명하고,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 필요 이상으로 애쓰며 살게 돼. 어딘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것처럼 말이야.


이건 서울에 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아닐지 몰라. 사주 선생님에게 내가 지방이나 해외에 가서 살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본 적 있어. 선생님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더라.


“그냥 서울이나 경기도에 작업실 하나 얻어서 들어가 있어요. 서울 떠나고 싶은 거, 남 시선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다른 데로 간다고 다를 것 같아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 장소와 환경이 주는 영향력은 물론 중요해. 하지만 환경이 달라져도 나는 그대로라면 과연 얼마나 많은 게 달라질까. 이 주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야.



부산과 서울 사이에서



바다는 언제나 그곳에@홍밀밀


눈물의 시간을 지나 에일리스는 미국 생활에 점점 적응하게 돼. 평생 함께 하고픈 사람도 만나게 되지. 에일리스는 말해. 이제는 집이 어딘지도 모르겠다고. 그 대사를 들으며 온몸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그거 알아? 언젠가부터 나는 꿈속에서도, 머릿속에서 혼자 생각할 때도 서울 말을 해. 이제 나는 내가 부산 사람인지도 모르겠어. 그냥 부산 말을 할 줄 아는, 부산에 가족이 있는 서울 사람 같기도 해.


그래서일까. 너처럼, 그 뮤지션처럼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이미 부산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고, 부산에 관한 기억은 모두 과거에 대한 것뿐이야. 그래도 가족이 있지 않냐고? 10년 넘게 원가족과 떨어져 살다 보면 깨닫게 돼. 엄마 아빠와 함께 있어서 즐거운 건 딱 2박 3일이라는 걸.


그럼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 그리고 일터가 있는 서울이 내 집인 걸까. 그것도 잘 모르겠어.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왔거나 서울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안정감은 앞으로도 갖기 힘들 거야. 서울에서 나는 영원히 이방인일지도 몰라.


올해로 서울에 산 지 16년이 됐어. 그래도 다행인 건 더는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 지독히 외롭고 벅찬 도시였지만 16년간 나를 키워준 곳이니까. 서울에서 수많은 소중한 기회와 인연을 만났으니까. 나를 물리적으로 키운 곳은 부산이지만, 내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은 서울이야.


같은 이유로 이제는 언제든 서울을 떠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훨씬 건조해진 마음으로 말이야.


다시 커다란 배 위에 올라탄 에일리스는 또 다른 여자 이민자에게 말해.


“향수병이 걸리면 죽고 싶겠지만 견디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어요. 하지만 지나갈 거예요. 죽지는 않아요.”


에일리스가 훌쩍 큰 것처럼 그동안 나도 서울에서 많이 자랐으니까. 스물한 살 그때보다 덜 울 수 있지 않을까. 새롭게 떠나갈 그곳이 어디일지는 몰라도 말이야.



-8월 17일, 계곡에 발 담그고 답장을 마무리하는 현진



현진, 주영 두 여자가 쓰는 교환일기 [엄마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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