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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Sep 21. 2020

캠핑 시작하고 사람 된 썰. ssul

[주영에게] 캠핑이 좋은 세 가지 이유

주린아, 반가워. 나 캠린이야. 주식투자와 캠핑. 코로나 이후 급속도로 증가한 ○린이 양대산맥쯤 되려나. 우리가 이렇게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이었다니.


지난 주말에는 강화도에 캠핑을 다녀왔어. 폭우랑 코로나 때문에 한 달 만에 다녀온 캠핑이었어. 캠핑장에서도 마스크를 꼭 챙겨 다녔어. 오랜만에 캠핑하니 역시 좋더라.


남편에게 떠밀려 캠핑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내가 캠핑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어. 네가 주식을 하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화장실, 잠자리에 엄청 민감하고 벌레도 싫어하고.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 스타일로 따지자면 호캉스족이었어. 남이 치워준 깨끗한 숙소에서 남이 해준 맛있는 밥 먹으며 편히 쉬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했지.


남편이 처음 캠핑 용품 사들일 때만 해도 헛돈 쓰는 게 아닐까 걱정됐어. 한번 쓰고 고스란히 당근마켓으로 직행하면 어쩌지. 그래도 캠핑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 우리 가족은 욜로 족이라(재테크는 진작에 포기...) 차곡차곡 적금 모아서 1년에 두 번씩 해외여행 가는 게 큰 즐거움이었어.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해외는 못 가고 호텔도 괜히 찜찜하니까 야외로 나가기로 한 거지. 아마 우리처럼 캠핑 시작한 사람이 많을 거야.


캠핑장 옆 모텔에서 숙박할 각오까지 하고 떠났는데 웬걸. 첫 캠핑부터 너무 좋은 거야. 캠핑을 시작한 게 지난 6월이었는데 그 후 2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캠핑을 가고 있어. 캠핑이 왜 좋을까. 나도 너처럼 3가지로 정리해볼게.

 


1. 기대치가 낮다


캠핑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모든 시름이 사라져 @홍밀밀


기대치가 낮으면 만족도가 높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 호텔 갈 때는 가격대에 따라 기대하는 수준이 있고 다른 호텔과 비교하게 되는데 캠핑 갈 때는 기본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화장실이나 샤워장이 엉망일 수도 있고, 옆 텐트에 있는 캠퍼(캠핑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더라)가 진상일 수도 있고, 벌레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고.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캠핑은 밖에서 먹고 자는 거잖아. 편하려고 가는 게 아니라 고생하러 가는 거니까. 기본적으로 마음가짐이 다른 것 같아.


하룻밤 사이에 평생 본 것보다 더 많은 송충이를 목격하고, 한여름 바닷가 캠핑장인데 코로나 때문에 샤워장이 폐쇄되고, 옆 텐트에서 밤새 술 먹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도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고. 어차피 길어봤자 2박 3일이잖아. 적응하게 되더라고. 캠핑은 원래 이런 거니까.

 


2. 머리보다는 몸


레고 조립 n년차@홍밀밀


인스타그램에 아침에 퉁퉁 부어서 캠핑 의자에 앉아 책 읽고 있는 사진을 올렸는데 친구가 댓글을 달았더라. “캠핑장에서 홈웨어?”


캠핑 패션의 기준은 딱 하나야. 편한 옷. 진짜 편한 옷. 몇 년째 입어서 후줄근하게 늘어난 티에 붙지도 조이지도 않는 가볍고 헐렁한 바지. 캠핑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뭘 입었는지, 내가 뭘 입었는지 신경 안 쓰게 돼.

  

캠핑 다녀오면 사람 사진은 거의 없고 하늘 사진, 나무 사진, 꽃 사진이 대부분이야(나이 들어간다는 증거...) 남 혹은 나에게 고정된 시선을 자연으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맑아져. 늘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도 최대한 저리 치워놓으려 해.

 

대신 몸을 많이 쓰게 돼. 화장실 갈 때도, 상추 씻으러 갈 때도, 설거지하러 갈 때도 적어도 3분 정도는 걸어가야 하거든(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아주 곤란).


한 번은 폭우 때문에 텐트를 아예 못 치고 캠핑장에 있는 방갈로에서 지낸 적 있어. 밥 먹고 자려는데 속이 너무 더부룩하고 잠이 안 오는 거야. 생각해 보니 캠핑장에서는 텐트 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밥 먹을 준비하러 왔다 갔다 하고 밥 먹고 나서 또 치우느라 왔다 갔다 하고 자기 전에 텐트 정리 정돈하고. 소화가 당연히 잘 될 수밖에 없더라고.


홀로 텐트 치는 남편 @홍밀밀


처음 캠핑 갔을 때는 완전 남편 독박 캠핑이었어. 우리 집은 남편이 주방 담당이잖아. 집 안에서는 음식 이외에도 다른 집안일이 많으니까 분담이 되는데 캠핑에서는 캠핑 준비부터 시작해서 텐트 치고 음식 준비하는 것까지 다 남편이 하게 되는 거야.


남들은 남편이 다 하니까 편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무임승차하는 게 영 불편하더라고. 땀을 홍수처럼 흘리다 지쳐 쓰러져 자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했고, 요즘 들어 ‘여자는, 남자는’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5살 아이한테 엄마가 무능력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어.


몸 쓰고 힘쓰는 건 나와 거리가 먼 일이라 생각했던 마음을 고쳐 먹었어.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텐트 치는 법, 캠핑 용품 사용하는 법을 남편에게 배우고 연습하니까 요령도 생기더라. 이번에 캠핑 갔을 때는 남편과 손발이 척척 잘 맞아서 텐트 치고 정리하는 데 드는 시간이 훨씬 단축됐어. 남편은 내가 캠핑하면서 사람이 됐다고 하더라. 원래는 양반이었다고.


분명히 돕는 중 @홍밀밀


신기한 건 나뿐만 아니라 아이도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해. 차에서 텐트까지 짐 옮기고, 캠핑 용품 꺼내서 조립하고, 망치 들고 다니면서 팩 같이 박고, 설거지할 때도 고사리 손을 보태고. 너무 많이 함께 하려 해서 힘든 상황이랄까(이 느낌 알지?). 역시 효능감을 원하는 건 본성인가. 아님 인정 중독 애미애비를 닮아서… 어쨌든 캠핑장에 가면 아이랑 뭐 하고 놀지 걱정 안 해도 돼서 좋아. 먹이 옮기는 개미만 쳐다보고 있어도 놀이가 돼.



3.무념무욕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홍밀밀


캠핑을 가기 위해 짐을 싸고 또 정리하다 보면 우리 세 가족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 물론 캠핑 장비 사는 데 많은 돈이 들었지만(캠핑 필수품 왤케 많아), 남들 다 사는 불멍용 화로대, 알전구까지 다 구비했지만... 그래도 차 한 대에 필요한 짐이 다 있어.


우리 가족이 비 피하고 밥 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들고, 텐트 공간이 한정돼있으니까 끊임없이 정리하고 관리하고, 바삐 움직이면서 삼시 세끼 해 먹으면 하루가 금방 가. 몸이 고돼서 그런지 잠도 잘 오고.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 생활이 단순해져.


우리가 함께 쓴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를 출판하고 나서 네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잖아. 엄마가 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남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캠핑을 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 의식주.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 여백은 자연이 채워주는 거야. 캠핑을 다니다 보니까 국내에 이렇게 좋은 곳이 많은데 왜 그렇게 해외여행만 다녔나 싶더라고.


인생 뭐 있냐@홍밀밀


또 하나. 지난번 편지에도 썼듯이 이제는 꼭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어디서 사느냐보다 중요한 건 우리 세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이가 좀 더 자연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 나 역시 책상에 앉아 컴퓨터 보는 것 말고 몸 쓰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해. 코로나가 정말 많은 걸 바꿨지?


언젠가 우리 텐트에 너희 가족도 초대할 날이 오면 좋겠다. 고기 굽기 장인 남편과 기다리고 있을게. 와서 설거지만 좀 하고 가.



-9월 21일. 가을 캠핑을 기대하는 현진.

 


현진, 주영 두 여자가 쓰는 교환일기 [엄마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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