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한담

나와 제주

by 홍난영

대학 졸업여행을 제주로 갔던 것 같다. ‘같다’고 쓴 이유는 졸업여행에 나는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동아리(문학회)를 졸업한 것과 같은 처지여서 과에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그들과 같이 여행을 간들 뭐가 재미있겠는가. 그래서 졸업여행비를 ‘삥땅’ 쳐서 동아리 친구들과 놀았던 것 같다. 역시 ‘같다’다. 뭐 하나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다. 그런데 동아리 친구들은 대부분 ‘삥땅’을 쳤으니 나 역시 ‘아마도’ 그랬을 거다.


그러다 90년대 말에 제주도에 처음 갔다. 비행기도 그때 처음 타봤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처럼 저가항공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가장 싼 것도 몇만 원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아침 6~7시에 김포공항에 도착해야 하는데 강북에 있던 우리 집에서 그 시간에 김포공항에 갈 방법이 없었다. 대중교통은 없었지만 방법이 있긴 있었다. 바로 김포에 사는 사촌 언니네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촌 언니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그때 사촌 언니는 결혼해서 3~4살 정도 되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런 마당에 사촌 동생이 친구와 함께 들이닥친다 하니 청소도 하는 등 꽤 분주했을 거다. 게다가 언니는 나에게 여행경비에 보태라고 몇만 원을 손에 쥐여줬다. 그 역시 부담스러웠을 텐데. 만약 나였다면 심각하게 고민했을 거다. 자주 보지도 못하는 친척 동생을 재워주고 돈까지 줘야 한다니. 그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아직도 후회스럽다.


어쨌든 그렇게 제주에 갔고 처음 보는 야자수 나무에 ‘제주는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야자수는 공항에만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사실 첫 제주여행의 기억이 거의 없다. 무슨 생각으로 다녀왔던 걸까.


그나마 기억이 나는 제주여행은 두 번째였다. 2천 년 초반. 중문 쪽이었는데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같이 간 친구 모두 운전면허가 없었다는 거다. 공항에서 펜션까지는 펜션 사장님의 차량 지원으로 해결했지만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사실 굳이 그 펜션을 예약했던 이유는 여행 시 ‘차량 지원’을 해준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다에 나갈 때 차량 지원을 부탁드렸는데 얼굴에 짜증이 만땅이셨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짜증이 났다. 차라리 차량 지원 서비스를 한다는 말을 하지 말던가. 칫. 그래서 우리는 그다음부터 무작정 걸어 다녔다. 때는 여름이었고 햇빛은 작렬했다. 20대 청춘들의 몸부림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걸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천제연폭포, 여미지 식물원 등등. 물론 다녀오면 초주검이 되었다. 땡볕에 온종일 걸어 다녔으니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밤이 되면 우리는 피어났다. 술도 많이 마셨고 노래방도 내내 다녔다. 왜 그랬을까? 서울에서도 갈 수 있는 노래방을.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겠지만. 어쨌든 그러다 보니 여행비용이 50만 원이나 초과됐다. 미친. 그 돈으로 차라리 택시를 타고 다니면 될 것을.


세 번째 제주여행은 2011년이었다. 이젠 운전도 할 줄 알았다. 한 번은 제주에 배 타고 가보고 싶었다. 어차피 차도 가져갈 거라 전남 장흥 쪽으로 내려가 ‘오렌지호’를 탔다. 오렌지 호는 쾌속선으로 약 2시간이면 제주에 도착할 수 있다.


DSC00369.JPG


그날은 파도가 좀 셌다. 배를 타고 5분쯤 갔을까? 롤러코스터처럼 배가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파도를 타고 배가 올라가면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오오오~~’를 외쳤다. 그러나 10분이 지나자 지옥문이 열렸다. 배를 타본 게 고작 한강 유람선이나 인천의 가까운 섬에 갈 때뿐이었던 나는 뱃멀미가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장난 아니었다. 도착할 때까지 오바이트 행진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옆, 뒤, 앞, 거의 모든 사람이 비닐봉지를 부여잡고… 더 이상은 더러워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제주에선 열심히 돌아다녔다. 몇 년 전 ‘걸어’ 다니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한을 풀려고 했던 걸까? 한 번쯤은 잠수함을 타야 한다며 새연교 근처에서 잠수함도 탔다. 우도도 그때 처음 갔는데 우도봉의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뿅 가고 에메랄드빛의 사빈백사에도 반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박물관, 소인국테마파크, 오설록, 허브 동산, 김영갑 갤러리와 같은 유명한 곳들을 중심으로 다녔다.


그땐 그게 제주여행인 줄 알았다.


하지만 네 번째 여행, 즉 제주 국수 여행에서 깨달았다.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현재 내가 생각하는 여행도 그것만이 다는 아닐 거다. 나보다 더 많이 여행을 다닌 사람들은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껍질을 한 꺼풀 벗을 수 있었다는 데 의의를 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