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불턱

by 홍난영

나는 왜 해녀가 그리 신비로운지 모르겠다. 바닷속에서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는 그들이 경이로워 그런 걸까? 적어도 내게 해녀는 TV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연예인이었다.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은 그런 존재. 그래서 제주로 여행을 올 때 해녀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쪼오~끔 공부를 해서 알게된 것이 ‘불턱’이었다. 지금은 불턱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탈의실’을 이용하지만, 예전엔 불턱에 모여 물질 준비를 했고, 바다에 다녀온 후엔 몸을 녹이고 잡아 온 해산물을 손질했다고 한다. 말은 그렇지만 실상은 해녀들의 희로애락이 가득한 공간이다. 만삭이 되도록 물질을 하다 불턱에서 아이를 낳기도 했다니 말 다했다.


보고 싶은 불턱이었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사실 달리 방법도 없었기에 내비게이션에 무턱대고 ‘불턱’을 검색해보았다. 앗. 그런데 나오는 거다. 그땐 얼떨결에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갔지만, 지금은 거기가 어딘 줄 안다. 그곳은 평대해녀촌식당 바로 앞에 있는 불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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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턱은 생각보다 컸다. 하기사 해녀 여러 명이 모여 앉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터였다. 그들은 저 작은 화로에 불을 피웠으리라. 내 마음속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진짜 버킷리스트는 ‘해녀 만나기’였지만 그녀들의 흔적 앞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사실 제주여행을 오기 전까지 나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적도, 실행해나간 적도 없다. 하지만 새마음(?)으로 한 번 작성해본 건데 생각보다 그 영향력이 컸다. 작은 하나라도 이뤄보니 굉장히 뿌듯했다. 그래, 거창하지 않아도 되리라. 작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해나간다는 게 중요하니까. 나는 그저 불턱에 왔을 뿐이다.


해녀에 관한 버킷리스트는 이렇게 포문이 열렸다. 그 후 해녀박물관에도 갔고 탈의실 너머로 보이는 널려있는 해녀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우도에서 (멀리서나마) 해녀들을 만났다. 그뿐인가, 그로부터 2년 뒤엔 해녀분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까지 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해녀 이야기는 종종 해보겠다.


마음에 품고 있으면 때가 되면 이루어질 수도 있나 보다. 안되는 걸 억지로 하려는 게 아니라 조금씩 관심을 갖고 움직이면 말이다. 물론 안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연연해 하지 않기로 한다. 세상일이 어찌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하면 된다’를 믿지 않는다. ‘하면 된다’는 자칫 잘못하면 나도, 상대도 망가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되면 한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생각이 여태까지는 내 머릿속의 철학으로만 존재했다면 불턱을 만나고서는 진정한 ‘되면 한다’가 되었다(사실 제대로 움직여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제주는 나에게 열린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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